(12) 김홍섭 / 인천대 명예교수
역사는 인류 삶의 궁극을 결정한다. 강자가 힘에 의해 악행을 저질러도 말 못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정권이 등장해 과거를 다시 평가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해도, 어떤 강권과 힘으로 진실을 감추고 가리려 해도 진실과 진리는 그리고 정의는 마침내 승리한다는 믿음이 인류를 진보시켰다. 히틀러의 폭정과 유대인의 학살, 일본 천황제와 군부에 의한 식민지배와 대동아전쟁시의 만행은 일제와 그 후손들이 흑역사를 감추려 해도 점차 진실이 드러나고 역사의 햇빛 아래 들춰지고 세계에 진실이 밝혀지고 있다.
이런 인간 본연의 가치인 자유와 인권, 정의와 평등 그리고 민주주의의 가치는 오랜 인류의 투쟁의 결과로 우리가 오늘 그것을 누리고 있다. 물론 아직도 해결해야 할 많은 과제와 여러 국가들의 비인간적 조건과 삶이 존재하고 있지만 점차 개선되어 오고 있다. 인류가 배운 역사 발전의 가장 중요한 원리는 ‘진실과 정의가 궁극에는 승리한다’란 역사의 원칙, 역사로부터의 교훈이라 할 것이다. 유명한 역사가들은 역사의 중요성과 과거 역사로부터의 교훈과 개혁이 인류 진보를 견인해 온 중요 요인으로 평가한다.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독일의 역사학자 랑케(L. von Ranke, 1795~1886)는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주창하며, 사료에 대한 고증을 통해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것이 역사가의 몫이라고 주장했다. 현대 역사학의 명저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카(Edward H. Carr, 1892~1982)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 했으며, ‘역사 해석은 과거와 현재의 소통이다’고 했다. 그는 과거에 대한 이해는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고양시킨다고 믿었고, 회의와 절망의 시대일수록 현재에 대한 그 자신의 이해와 미래에 대한 전망을 검토하여 제시하는 것이 한 사람의 역사가로서의 자신에게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지금 인천의 민주화와 노동운동의 한 상징인 교회의 존치의 필연성을 주장하는 시민들과 해당 지역 재개발로 경제적 이익을 누리려는 사람들과의 의견 불일치를 경험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인천노동운동의 상징인 인천도시산업선교회(현 미문의 일꾼교회)가 ‘동구 화수·화평 주택재개발정비사업’ 구역에 포함돼 철거 위기에 놓였다. 많은 시민들과 뜻있는 지역 전문가들과 운동가들이 단식투쟁을 두 달여 진행해 오고 있으며, 중앙과 지방의 많은 언론과 운동단체, 종교기관, 노동운동단체들이 그 존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1961년 설립된 인천도시산업선교회는 1978년 쟁의 중인 노조 조합원들에게 반대파가 똥물을 뿌린 이른바 ‘동일방직 사건’ 때 여성노동자들이 피신하는 등 우리나라 산업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설립의 주체였던 조지 오글(George E. Ogle, 1929~2020) 목사는 1974년 고문으로 조작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진실을 국제사회에 폭로하여 세계에 알리는 등 반독재 투쟁을 벌이다 독재정권에 의해 추방되었다. 이후 그는 2002년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민주화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인권상을, 2019년에는 유공포상 국민포장을 받았다
인천도시산업선교회는 1970년대에는 동일방직, 삼원섬유, 한국기계, 대성목재, 반도상사 등에서 민주노조가 건설되는데 산파 역할을 했고, 조화순, 황영환, 김근태, 최영희, 인재근, 김지선 등 수많은 노동운동가, 민주화 인사들을 배출했으며, 이들은 한국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민주화와 노농운동의 큰 맥(脈)이 되었다. 이후 조화순 목사 김정택 목사, 김도진 목사 등으로 이어 온 선교회의 사역은 시대의 요구에 맞추어 지속적 역할을 해오고 있다.
지금 야기된 이 문제의 발단은, 도시재개발 시 고려되어야 할 현 상황과 문제점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이해 당사자에 대한 이해나 대안제시 등의 선행조치와 충분한 논의과정을 갖추지 못하고 정책이 진행된 데 있다. 이 논의는 “인천산선 존치로 산업유산 존치”와 “원도심 재개발 불가피”라는 과제를 원만하게 사전 조정하는 절차와 문제 발생 이후 이해당사자간의 충분한 대화와 조정이 수행되지 못한 데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한 논의 및 해결 방향으로 첫째, 인천도시산업선교회가 갖는 노동운동의 현장으로서의 가치와 민주화와 독재투쟁의 현장성과 역사성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하며 공간을 존치해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오래된 도시지역의 재개발과 정주여건의 개선은 해당 주민들의 중요한 기회며 권리이기도 하다.
셋째, 위 두 가지는 양립불가하지 않으며 동시에 공생과 공존의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점이다. 오늘날 발달되고 선진화된 도시계획 이론과 기법 및 거의 세계 최고 수준에 달하는 건축기술 등으로 이 공존과 공생의 정책과 대안 모색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넷째, 이해당사자인 재개발조합 측과 인천도시산업선교회와 시민사회는 쌍방에 대한 이해와 양보 및 공생에 대한 필요성과 가치를 더 중요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사업자로 예상되는 현대건설도 전향적이고 대승적 차원에서의 결단이 요청되며, 최종 행정책임자인 인천시와 동구청은 기존 안만을 고집하기보다 통합적이고 문제 해결적인 접근이 요청된다.
다섯째, 이 지역이 갖는 미래발전과 가능성에 대한 더 높은 이해와 자긍심을 모두 갖는 것이 필요하다. 동구 일대의 많은 산업유산들은 한국의 근현대사 특히 노동발전과 민주화의 값진 자산이며 숨겨진 보물이다. 동구의 산업유산들은 해방 이전 식민지의 기형적 산업화의 흔적과 해방 이후 우리 산업의 발전 과정과 민주노조운동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살아있는 유물이다. 한국사회의 변화, 도시화 및 산업화를 압축해 보여주는 대표적 보호 필요 지역이다. 일제 강점기 식민지 예속 경제의 실상을 증언해 주는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1920년대 후반 세계경제대공황 타개책으로 착취 수준의 저임금을 찾아 온 ‘동양방적’의 후신인 동일방직이 있고 일제의 침략전쟁을 뒷받침했던 ‘조선기계제작소’의 후신인 한국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와 ‘도쿄시바우라전기’의 후신인 일진전기 폐공장 등이 그대로 남아 있어 근대 산업화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크다. 또한 조선말의 화수동 쌍우물가 전설과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은 쌍우물이 잘 보존되어 있어 이들을 아우르는 문화, 산업유산 공원(단지) 등으로의 개발이 가능한 곳이기도 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 미래는 없다’ 말과 같이 오늘 우리는 역사의 현장을 보존하고 이해하며 새로 해석하여 현재와 미래 발전의 중요한 철학과 원리를 깨달아 알고 배우고, 이를 후대에 가르쳐 실천하는 것은 중요하며 우리는 바로 이 시점에 와 있다. 여기서는 서로 다른 이해와 관점이 있더라도 더 근원적인 인류의 가치인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상생과 공존의 가치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