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사곶해안, 사곶마을의 생태계 그리고 생활사
매우 고운 규암 가루로 이루어진 사곶 해안
대청도를 출발한 여객선이 백령도에 다가갈수록 길다란 모래 해안이 점점 눈에 들어온다. 사곶 해안이다. 백령도의 남동쪽에 위치한 사곶 해안은 썰물 때 길이 3km 정도, 폭 200m 정도로 길게 형성된 사빈 해안으로 천연기념물 제391호로 지정된 ‘사곶사빈(천연비행장)이다. 해안을 따라 곰솔로 이루어진 해안 방풍림이 잘 형성되어 있고 배후지역에 사곶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사곶 해안의 모래는 언뜻 보면 평범한 모래처럼 보이지만 다른 해안의 모래와 다르다. 이 곳은 매우 고운 규암 가루가 쌓여 다져진 지역인데, 그 규암 가루의 크기가 평균 0.278∼0.245㎜로서 세립과 중립의 모래 크기 경계 정도라고 한다. 입자간의 공극(孔隙)이 작기 때문에 다짐작용이 매우 큰 편이며, 이런 모래가 사곶 해안 전체 모래의 75∼95%를 차지하고 있다. 해변이 이렇게 단단하니 천연비행장으로 사용이 가능했던 것이다.
해송 묘목 키워 해안 방풍림 조성의 기반을 마련한 사곶초등학교
사곶 해안과 사곶 마을의 생태계와 생활사는 매우 고운 모래로 연결되어 있다. 사곶 해안의 미세한 모래는 바닷바람을 타고 배후지에 위치한 사곶 마을로 날아 든다. ‘사곶 모래 서말은 먹어야 시집을 간다’는 말이 있다. 마을의 명칭도 ‘沙乙串地(사을곶지)’, ‘沙串地洞(사곶지동)’, ‘沙串洞(사곶동)’(2021. 김석훈)처럼 모래와 연관되어 불려왔다. 바닷바람에 날려 오는 모래가 마을환경과 주민의 삶에 크게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이 문제를 개선하고 해결하고자 마을이 선택한 방법은 해안에 방풍림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먼저 나선 이들은 사곶초등학교 교직원과 재학생들이었다.
1964년, 사곶초등학교에 초대교장으로 부임해 온 김상희 교장은 빈약했던 학교를 자활학교로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해풍을 이겨낼 수 있고 학교 수입도 올릴 수 있는 것이 해송(곰솔)을 재배하는 것이라 판단했다. 그리하여 1964년 10월과 11월에 학생들을 동원하여 해송의 종자를 모으고, 10ha의 학교림 재배지역을 임대 계약하여 그곳에서 묘목을 키워냈다. 당시 사곶초등학교 학생이었던 김진수 씨(진촌5리 이장)도 그 때의 일을 의미있게 기억하고 있었다.
“사곶초등학교 개교할 때부터 다녔는데, 1~6회 때까지 해송 묘목을 키워서 사곶 해안에 심었지. 그 때 학생들은 오전에 수업하고 오후에는 주변으로 솔방울을 따러 갔는데, 솔방울을 따가지고 와서는 운동장에 깔아 놓고 책가방으로 눌러놔요. 그러면 솔방울이 마르면서 솔씨가 떨어지거든. 솔씨는 묘목을 위한 씨앗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솔방울은 겨울에 난로 난방용으로 사용했어요. 솔씨는 학교 앞의 모래밭이 있었는데 그곳을 묘목을 키우는 밭으로 만들어서 거기에 씨앗을 심고... 우리들이 매일 1~2시간씩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가 묘목을 키웠어요.”(2022.1.28.)
사곶초등학교의 해송 묘목 재배 이야기는 1975년 12월 5일자 일간스포츠의 기사에서도 자세히 소개했다.
‘사곶국민학교(교장 김상희)가 자활학교에로의 몸부림으로 시작한 해송재배가 이 학교를 자활학교로 기틀을 굳히게 했을 뿐 아니라 섬 주변을 해송숲으로 울창하게 만들고 있다. 이 학교가 지난 71년 4만 그루의 해송묘목을 옹진군에 처음 판매......(중략)올해의 16만 8천 그루 등 57만 8천 그루의 해송이 팔려.....(중략)학교측으로선 올해의 묘목수입만도 1백50여만원. 학교에서 해송묘목이 보급되자 부락청년회 4H 클럽 회원 등이 앞장서 묘목을 심고 뒤를 돌보며 가꾸었다. 지금은 방사방풍림으로 큰 구실을 하고 황폐했던 모래땅도 옥토로 변했다.’
이렇게 조성된 사곶 해안의 방풍림은 어느덧 50~55년이나 자란 해송들로 폭100∼200m의 울창한 숲을 이루었다. 태풍이나 해일 등의 재해로부터 마을의 가옥과 농경지를 보호하고 겨울철에는 건조한 북서풍으로 인한 경작지대의 토양 오염방지와 바람에 의해 생길 수 있는 비사나 염분을 방지하는 등 해안 방풍림의 기능과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주민들 스스로 해안림을 조성하고 지켜 온 사례들
1964년 당시의 사곶초등학교 교장의 판단과 학생들의 협력과 마을의 참여, 행정의 뒷받침이 모여 함께 이룬 성과였다. 사곶 해안 방풍림처럼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해안림(방풍림)을 조성한 사례는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많이 알려진 경남 남해시 삼동면물건리의 ‘어부림’(천연기념물 제150호)은 약 300년 전에 마을 사람들이 심어놓은 것이다. 어군(魚群)을 유도할 목적으로 나무를 심어 가꾸었으나 어업보다 마을의 주택과 농작물을 풍해에서 보호하는 방풍림의 구실을 하고 있다. 해안을 따라 길이 약 1,500m, 폭 30m의 숲을 이루고 있는 어부림은 19세기 말엽 이 숲의 일부를 벌채하였다가 그 해 폭풍을 만나 상당히 큰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 그 뒤로, 이 숲을 해치면 마을이 망한다고 생각하여 숲의 나무를 베는 사람은 벌금을 바치기로 약속하고 숲을 지켜왔다고 한다. 이처럼 지역사회에서 보전 필요성에 대한 인식수준이 높아 어부림의 관리상태가 양호하고 아름다워 남해군의 중요한 관광명소가 되었다.
일본의 아키타현에도 18세기부터 50여년 동안 지역주민들이 80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 조성한 해안림(비사방지보안림)이 있다. 태평양전쟁 이후에는 지자체와 주민이 함께 조직적인 해안림 조성사업을 추진하는 등 아키타현 전체 해안선의 95%이상 해안림으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특히 아키타현의 가장 대표적인 해안림인 200여년의 역사를 지닌 노시로시 ‘바람의송원(松園)’은 27km의 해안선을 따라 90만평 가량의 해송 숲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재철, 2003. 요약)
생태적 지혜를 키워가며
사곶 해안의 방풍림, 남해 물건리의 어부림, 일본 아키타현의 비사방지보안림 등의 사례에서 보여주듯이 이전의 세대가 열악한 자연환경 속에서도 공존의 방법으로 선택하고 조성했던 숲이 이어져 오늘의 우리들에게 쉼터, 녹지, 관광지, 자연방어물 등 더 확장된 기능과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하고 있다. 자연환경과 세대 간의 공존 관계와 방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경험에서 찾아 낸 생태적 지혜(Ecosophy, 신승철, 2019)를 활용하여 더 나아갈 수 있을 것 이다.
이제 사곶 해안의 방풍림에 대한 생태학적 관리와 보전을 위한 관심이 뒷받침 되어야 할 때다. 해수욕장과 공한지 주변지역 관리, 배후습지 복원 관리, 외래식물 분포 억제 관리, 생물종의 다양성과 서식지의 다양성 유지 관리, 곰솔림의 고령화와 병충 피해확산 예방 관리, 방치된 쓰레기 등 주변 환경 개선 등. 그리고 사곶 해안과 방풍림 이야기, 마을의 기록, 지역사회의 참여와 교육, 홍보를 할 수 있는 사곶 마을 에코뮤지엄이 마을에 있어도 좋을 것 하다.
<참고자료>
• 김석훈, 2021.11.11. 주민들의 의지로 일궈낸 진촌(3)리 사곶(沙串) 이야기
• 김재은, 홍성기, 2009, 해안사구생태계의 경관생태분석
• 김하송, 2008, 전남 진도군 관매도 해안 방풍림의 식생과 관리방안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유산검색_남해 물건리 방조어부림
• 박경문.김성우.안태선, 2016, 인천광역시 연안 해안사구 보전현황 평가 연구: 중구, 옹진군을 중심으로,
• 백령도 옛 사진 출처_백령도 천연활주로의 한국 공군 C-46 수송기(1965년), 유용원의 군사세계
• 산림청, 2006, 해안방재림 조성․보전․관리방안에 관한 연구
• 생태적지혜 https://ecosophialab.com/
• 서재철, 2003.10.15. 해안림-태풍 잡는 귀신!, 한겨레21
• 일간스포츠, 1975.12.5., 해송으로 탈바꿈. 백령도_사곶국교 김상희 교장
• 황해섬네트워크, 2021, 백령도 총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