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장미를 갖춘 노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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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장미를 갖춘 노인으로
  • 송정로 기자
  • 승인 2022.03.28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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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범상, 유해숙 공저 『선배시민 – 시민으로 당당하게 늙어가기』 출간

 

선배시민이란? – 시민으로서의 삶을 먼저 산 존재로, 빵과 장미(인간의 품위)로 상징되는 시민권을 누리고 요구하며 실천하는 노인을 말한다. 선배시민은 후배시민과 소통하며 학습하며 시민권이 보장된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 간다.

유범상(한국방송통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유해숙(인천시사회서비스원 초대 원장) 남매가 『선배시민 – 시민으로 당당하게 늙어가기』를 출간했다. 고령화 시대에 노인에 대한 사회적 의미를 ‘선배시민’이라는 용어로 압축하고, 노인 상대 빈곤율이 43.4%(2018년 기준)에 이르는 한국에서 노인문제를 고찰하고 본질적인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세계노인의 해인 1999년, 한국사회복지협의회는 노인이라는 용어를 대체할 이름으로 ‘어르신’을 채택했다. 그러나 어르신은 지혜와 존경, 현자의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살려면 체면을 지켜야 하고 감정과 욕구를 자제해야 한다. 신비화된 존재인 것이다. 노인에게는 부담스러운 호칭일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늙은이’는 빈곤하고 무능하며 체념하고 사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다. 성공한 노인으로 취미, 여가생활을 즐기며 왕성한 활동력을 자랑하는 이른바 ‘액티브 시니어’는 조건을 갖춘 소수의 노인만이 해당하며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 사회적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제 우리는 나이든 보통 사람들의 사회를 총체성으로 들여다 보아야 한다. 노인은 단일한 특징을 갖는 동일한 개체군이 아니라 복합적인 요인으로 다양한 계급, 성, 마을, 사회, 국가의 구성원으로 존재한다. 노인은 각자가 개성을 갖고 사회에서 살아가는 보통사람, 시민들이다.

문제는 대부분 노인은 은퇴를 하기 때문에 경제적인 문제에 직면하기 십상인 현실이다. 우리 정부의 정책적 지원은 제한적이여서 상당수 노인들의 연금은 ‘용돈연금’이라고 할만큼 낮고 정부가 제공하는 노인 일자리의 임금도 마찬가지다. 2015년 세계노인복지지표에 따르면 한국 노인의 사회적·경제적 복지수준은 세계 96개국 중 60위며 특히 노인의 소득보장 순위는 82위로 기본적 인권보장이 매우 열악하다.

『선배시민』은 바로 이 한국사회에 새로운 노인상을 제시하는 개론서다. 노인들이 빵과 장미를 갖춘 시민으로 당당하게 늙어가는 방향과 구체적인 실천방법을 제시한다. 노인들이 시민으로서 자신의 가치와 역할을 재정립하고 사회적으로도 노인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이를 통해 2025년 초고령사회가 되는 한국이 소수의 성공한 노인만이 아니라 보통노인들도 시민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저자들은 노인이 시민이라는데 주목한다. 나이 든 시민, 즉 선배시민은 자신들의 소리를 효과적으로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선배시민은 시민권을 주장하며 국가와 지역 일에 주체적으로 참여해야 하고,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 여러모로 취약해지는 노년에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요구해야 한다. 빵을 권리로 자각하고 요구하며, 자신과 이웃을 넘어 국가공동체 시민의 삶에 관심을 갖고 사회를 비판하며, 지혜를 발휘하며, 책임을 다하려는 존재가 선배시민인 것이다.

헬렌 켈러와 나이팅게일은 이 본질을 보고 투쟁했다. 장애를 극복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 헬렌 켈러는 사실 88세를 산 진보적 사회운동가였다. 20대 이후 여성 참정권과 반전운동, 인종차별 반대 운동 등을 하며 차별과 억압, 불평등과 맞서 싸웠다.

90세를 살다 간 나이팅케일은 ‘백의의 천사’로 익숙하지만 자신은 이것을 비판적으로 생각했다. 자신은 ‘고뇌하는 사람’을 위해 싸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이팅게일은 죽어가는 병사들을 위해 ‘죽음의 통계’를 내고 당국의 무관심과 비협조 속에 위생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물자를 찾아 나섰다. 그 결과 한 때 45%에 이르던 부상자 사망률이 5%로 낮아졌으며, 전쟁 이후에도 조사와 통계를 기반하여 정책을 수립하는 방법론을 제시해 이 분야의 선구자가 됐다.

저자들은 1942년 영국에서 발표된 ‘베버리지 보고서’를 인용해 교육, 의료, 주택 등 사람들에게 필수적인 것을 탈상품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국가는 모든 시민을 돌봐야 할 의무가 있고 모든 시민은 이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노인 돌봄은 가족이 아니라 국가의 몫임을 환기시킨다.

‘베버리지 보고서’는 이와 관련해 다섯 개의 악 - 소득결핍, 무지, 질병, 불결, 나태라는 바이러스를 지목했는데, 선배시민은 개인과 가족의 노력을 넘어 공동체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악의 거인을 막는 일에 앞장설 것을 주문한다.

선배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대화를 해야한다. 대화를 통해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를 드러내 배우는 태도, 습관을 통해 성찰하는 한편 공동체를 통해 시민권을 조직하고 시민교육을 통해 시민권을 길러야 한다.

『선배시민』은 은퇴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점을 새삼 강조한다. 퇴직에 대한 새로운 규정이 필요하다. 우물쭈물하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을 시작해야 한다. 키케로는 ‘노인이 오히려 더 바쁘고 더 많은 가능성을 지난 존재’라고 주장했다.

‘호서대 설립자인 강석규 박사가 쓴 『어느 95세 어른의 수기』는 우물쭈물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잘 보여준다. 65세 정년퇴직하면서 그냥 건강이나 잘 지키면서 살면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95세가 되었다. 그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30년을 더 살 줄 알았다면 이렇게 살지 않았을 텐데'라며 '이제 나는 다시 시작하려합니다'라고 했다. 그때부터 그는 103세까지 살 때까지 활발하게 활동했다.’(『선배시민』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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