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와 드로잉으로 삶을 재구성하다 - 홍도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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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와 드로잉으로 삶을 재구성하다 - 홍도연 작가
  • 박이슬
  • 승인 2022.11.07 15: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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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설계하는 인천 문화](7)
[인터뷰] 당신은 몰랐던 인천 작가(2) - 홍도연
글 = 박이슬 / 임시공간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인천in은 9월부터 11월까지 ‘청년이 설계하는 인천 문화’를 주제로 인천 문화예술 청년 8명의 인터뷰, 기고, 기사, 리뷰 등 다양한 글들을 싣습니다. 청년의 눈으로 인천문화의 현재, 가치, 정체성, 발전방향 등에 대해 알아보고 제언합니다. 이번 글은 박이슬 큐레이터의 2번째 인터뷰 기사로 지난 10월 31일 홍도연 작가를 인터뷰했습니다.
홍도연 작가
 홍도연 작가 ⓒ사진 고정균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릴께요.

안녕하세요. 저는 드로잉이란 무엇인지 연구하고 그 가능성을 실행하는 시각예술가 홍도연입니다. 제가 발 딛는 장소와 풍경에 주목하고 드로잉으로 나타낼 방법을 모색합니다.

 

‘인천’이라는 지역과 어떤 인연이 있으신가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말까지 인천에서 살며 청소년기를 지냈습니다. 서구 가정동과 미추홀구 주안동 등지에 거주하며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고 20대 초반을 보냈습니다.

Mapping, Walking, Drawing Installation, space imsi, 2022 ⓒ사진 박기덕
Mapping, Walking, Drawing Installation, space imsi, 2022 ⓒ사진 박기덕

 

올해 9월 인천 중구에 위치한 임시공간에서 열린 개인전 《푸른 낮의 필사 Mapping, Walking, Drawing》(2022)에 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푸른 낮의 필사 Mapping, Walking, Drawing》는 ‘걷기’와 ‘드로잉’을 연결하는 상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걸으며 바라본 풍경을 드로잉으로 그릴 뿐 아니라, 땅 위를 걷는 두 발과 종이 위에서 이동하는 연필 선의 관계를 생각해보고자 했습니다. 전시는 1호선 레일을 따라 설치된 방음벽 주변을 걸으며 관찰한 풍경, 인천역에서 ‘임시공간’을 경유해 동인천 골목까지의 보행에 관한 드로잉과 지도 만들기, 사진으로 구성됩니다. A4 크기의 종이 드로잉 연작과 전시장 벽 드로잉, 시아노타입 기법을 활용한 아코디언 북 등을 제작했습니다.

 

올해 4월부터 꽤나 긴 시간동안 인천역-전시장-동인천역을 잇는 길을 따라 걸으셨어요. 이러한 걷기를 촉발한 계기, 그 과정에서 떠오른 생각들이 궁금합니다.

작년 여름에 ‘임시공간’이 주최한 ‘2022 작가공모’ 지원을 준비하면서 전시 공간 주변을 걷고 그 경험을 드로잉으로 나타내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올해 봄부터 주기적으로 전시장에 방문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꼴로 1호선 구로역에서부터 부천을 지나 인천을 가로지르는 여정은 제가 태어나고 자란 장소와 겹쳐, 지난 기억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떠올리며 동시에 미술학원에서 고등학생들과 만나는 저의 직업에 관해 생각했습니다. ‘임시공간’을 향하는 1호선 열차 안에서 저의 십 대 시기와 현재 제가 마주하는 청소년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저의 위치를 고민했습니다.

Moving on paper Installation, Bukguart Studio, 2021 ⓒ사진제공 울산 북구예술창작소
Moving on paper Installation, Bukguart Studio, 2021 ⓒ사진제공 울산 북구예술창작소
Moving on paper Installation, Bukguart Studio, 2021 ⓒ사진제공 울산 북구예술창작소
Moving on paper Installation, Bukguart Studio, 2021 ⓒ사진제공 울산 북구예술창작소

이렇게 떠오른 생각을 전시장에 옮겨오기까지 여러 고민이 있었을 것 같아요. 작년 북구예술창작소 입주작가 결과보고전 《종이 위에서 움직이기 Moving on paper》(2021)에서는 레지던시 근처 아산로를 따라 걸었던 길과 그 안의 경험을 벽을 타고 오르내리는 드로잉 풍경으로 설치하셨죠. 이번 전시에서는 준비 기간동안 전시장을 반복해 걸으며 흰 벽에 연필 선을 그었는데, 이런 방법을 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2021년 2월에 울산 북구예술창작소에 입주한 후 근처 ‘아산로’를 걸으며 자동차 선적장에 정박한 선박에 주목했습니다. 고유의 이름을 지닌 배들이 떠나고 되돌아오는 모습을 보며 그 이동 경로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여러 선박 중에서 네 개의 선박을 본 날짜부터 입주작가 결과보고전시 《종이 위에서 움직이기 Moving on Paper》를 개최하는 10월 초까지 누적된 이들의 항로를 검색한 후, 1:16 km 축척의 길이를 A4 종이에 따라 그었습니다. 한 선박당 150-60 장이 소요되었고, 전시장의 벽과 바닥에 총 600여 장의 드로잉의 연필선을 따라 연결했습니다.

《종이 위에서 움직이기》가 종이라는 공간에 기록한 선박의 항로를 전시 공간에 펼쳐 놓는 시도였다면, 《푸른 낮의 필사》는 제가 이동한 경로를 전시 공간에서 다시 한 번 겪으며 자국을 남기는 일이었습니다. 이는 약 15일 동안 전시장에 머무를 수 있었던 조건을 발판으로, 4개월간 보행의 분기점이자 그 기록을 전시할 현장인 ‘임시공간’에 가능한 궤적을 남기고 관객이 저의 여정에 동참하게끔 만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임시공간’에서 동인천 골목까지 걷기〉, 2022, 벽 위에 연필, 벽 둘레: 2,431cm ⓒ사진 박기덕
<‘임시공간’에서 동인천 골목까지 걷기〉, 2022, 벽 위에 연필, 벽 둘레: 2,431cm ⓒ사진 박기덕
〈1호선 방음벽 연작〉, 2022, 종이에 연필, 색연필, 수성 연필, 수채 물감, 펜,
23×477.8cm ⓒ사진 박기덕

작가님에게 드로잉이라는 방법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가요.

우리가 드로잉에서 종결이나 완성을 구하지 않고, 선을 긋는 과정에서 생성하는 감각에 주목한다는 점은 언제나 제게 용기를 줍니다. 그 용기는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릴 때 선이 나아갈 수 있도록 뒷받침해줄 뿐 아니라 종이 바깥, 즉 생활인으로서 삶의 경험에서도 유효합니다. ‘드로잉’은 명사이자 동사로서 드로잉 작품의 고정된 이미지와 드로잉을 하는 순간을 아우릅니다. 종이 위에 손으로 선을 그을 수도, 땅 위를 걸어서 선으로 된 길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미술 바깥에서 드로잉을 찾음으로써 ‘드로잉’을 더 이해하고 싶습니다.

 

이번 개인전의 영문 제목인 ‘Mapping, Walking, Drawing’에는 작가가 주목하고 있는 것들이 정교하게 나열되어있는 것 같아요. 어쩌다 맞닥뜨리게 된 장소와 그 주위 환경을 이해하는 방식으로써의 걷기(Walking)와 매체와 몸이 만나 발생하는 드로잉(Drawing)에 대한 질문을 드렸다면, 이렇게 발생한 것들을 엮어내는 방식인 매핑(Mapping)도 궁금해집니다. 흔히 우리가 객관적이라고 생각하는 지도를 예술의 방법론으로 재구성하는 일에는 어떤 고민의 흔적들이 담겨있었는지 말씀해주세요.

‘임시공간’이 위치한 동네 일대를 걷다 보면 종종 관광 안내 지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요 지형지물을 바탕으로 차이나타운과 여러 근대문화전시장 등을 소개한 그림지도입니다. 여기에는 이곳에서 일부러 길을 잃고 틈새를 발견하거나 또 다른 장소에 닿고 싶은 사람을 위한 여지는 없습니다. 이 지도를 제작한 주체는 이 장소를 방문해서 지도를 볼 법한 사람을 구경꾼으로 설정했기 때문입니다. 지도는 제작자의 의도를 드러내는 임의적인 도구이고, 파편적인 정보를 전달합니다.

인천역에서부터 ‘임시공간’을 분기점으로 동인천 골목까지 걸었던 경험을 시각화할 때, 보행 경로를 선으로 나타내는 작업을 통해 드로잉이자 제가 걸은 장소를 다르게 보도록 만드는 대안적인 지도 제작을 계획했습니다. 이 장소에서 유흥과 관광지만을 바라보고 다른 가능성과 이야기를 간과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동인천 골목까지 다다르는 여러 갈래의 길을 지도 드로잉으로 제작했습니다. 트레이싱지에 각각 다른 날짜의 보행 경로를 낱장마다 표시해서 포개어 놓고, 전시장 벽에 흑연 가루를 바른 후 지우개로 중첩된 이동의 궤적을 지워서 선을 만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술가로서 바라보는 인천이라는 지역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제게 인천이라는 도시는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고 싶은 고향이라거나, 돌아가고 싶은 추억의 장소라고 단정할 수 없는 곳입니다. 성인이 되어 서울로 이사한 후, ‘임시공간’이 주최한 ‘2022 작가공모’에 선정되어 우연에 가깝게 다시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1990년대 후반 인천에서 보냈던 가난한 청소년기와 당시 벌어졌던 참혹한 사건, 참사를 둘러싼 어른들의 가혹한 말들이 자주 떠올랐습니다. 아침에 불 꺼진 유흥가를 지나 등교하고, 화려하지만 공허한 저녁 시내를 거쳐 하교하던 길의 풍경은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올해 봄부터 늦여름까지, 청소년 시기에 신뢰할 수 없었던 어른들의 나이가 되었다는 자각과 예술가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동인천역 주변 골목을 자주 배회했습니다. 반복해서 이 동네를 걸으면 왜 인현동 화재 참사가 되풀이해서 떠오르는지, 그 기억이 지금 어른이 된 나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게 이 동네를 걷는 일은 나른한 사색이나 도시를 표류하는 유희가 아니라 스스로를 향한 질문의 시간이었습니다.

드로잉이 제작 과정에서 그리는 사람의 태도를 투명하게 드러낸다고 할 때, 저의 작업에서 생활인으로서 저의 경험을 분리할 수 없습니다. 제가 앞으로 드로잉을 연구하고 제작하는 한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홍도연 개인전 《푸른 낮의 필사 Mapping, Walking, Drawing》

기간: 2022년 9월 20일 - 10월 8일

장소: 임시공간 (인천광역시 중구 신포로23번길 48)

후원: (재)인천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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