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어린이명작무대Ⅱ: 도채비방쉬’ / 인천문화예술회관 기획
글 양은경 작가
지난 10월21, 22일 ‘어린이명작무대Ⅱ: 도채비방쉬’가 인천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열렸다.
도채비방쉬는 2015년에 기획된 인천문화예술회관의 브랜드공연으로 올해 두 번째 작품으로 ‘극단 분기탱천’이 진행했다.
연극 〈도채비방쉬〉
‘도채비’는 제주에서 도깨비를 이르는 말이다. 연극 〈도채비방쉬〉는 친숙한 제주의 이미지와 제주의 오랜 전통과 설화를 통해 주인공 지슬과 도채비의 우정을 보여준다. 이야기 속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제주칠머리당영등굿’에 나오는 신비로운 일곱 형제 설화와 정월대보름 액막이를 위한 풍습으로 사람을 대신하는 허수아비(허채비)를 만들어 삼거리나 바닷가에 방사(防邪)하던 ‘도채비방쉬’, 그리고 주인공 지슬이 사용하는 제주어 대사들과 도깨비를 도채비라고 부르는 등의 제주어를 자주 등장시키며 멀게만 느껴지는 제주의 이야기와 오래된 설화를 현재 우리 이야기로 가져온다.
제주의 풍경이 담긴 무대
인천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 들어서면 창호지로 만들어진 제주기메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인자한 얼굴을 한 할망들이 알록달록한 천으로 꾸며져 있고 그 아래 할망당에는 재물로 여러 개의 귤이 올려져 있다. 시선을 조금만 옮기면 오른쪽 구석에 무시무시한 얼굴을 한 도채비의 모습과 그 아래 잡초가 무성해 초라해보이는 도채비당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무대 위엔 원통형 스프링을 반으로 접어놓은 듯한 크고 작은 구조물들이 여러개 놓여있다.
잠시 후, 암전이 되고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소리와 함께 머리에 귤을 올려둔 세 명의 이야기꾼이 등장해 제주의 바다와 바람 돌이 있는 풍경과 할망들을 모시는 풍습을 설명한다. 이어서 제주의 커다란 한라산과 크고 작은 오름을 설명하며 무대 위에 놓여있는 구조물을 가리키고 제주를 가봤던 아이들은 관심을 보이며 작은 목소리로 반가워한다.
이야기꾼들의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할망당의 귤이 와르르 쏟아지면서 주인공 지슬이 등장해 귤을 허겁지겁 훔쳐갈 때 여태까지 오름이라고 생각했던 구조물 안에 있던 도채비도 함께 펄쩍!하고 튀어오른다. 귤을 훔친 지슬은 마을 사람들에게 쫓기고 도채비는 오름 속으로 지슬을 숨겨 준다. 지슬을 발견하지 못한 마을 사람들이 사라진 뒤, 도채비와 지슬은 서로를 마주한다. 도채비의 눈에는 귤 도둑 지슬이 보이고 지슬에게는 잡초가 무성하고 텅 비어있는 도채비당만이 보이지만 둘은 가까워지면서 서로의 다른 모습들을 보게된다. 도채비가 늘 배가 고프고 외로웠던 이유, 그리고 지슬이 어머니를 위해 귤을 훔쳐야 했던 이유들을 말이다.
이들의 우정은 처음부터 순탄치는 않았다. 하지만 용기내어 “고마워"라거나, “미안해"라는 마음 하나를 보여주고 마음 하나를 이해해가며 가까워지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지슬은 아픈 어머니를 위해 밤에 집에 가야하고 도채비는 밤새 지슬과 함께 놀고 싶다. 그때 지슬은 볏짚을 엮어 만들어 자신의 채취를 묻힌 허채비 인형을 선물한다. 얼마 후 지슬의 어머니가 무척 아팠던 밤, 지슬을 기다리던 도채비는 용기를 내어 마을로 내려가 지슬의 집에 찾아가고 둘은 밤하늘을 보며 서로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꺼내놓는다.
몇 백 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일곱 형들을 만나고 싶은 도채비를 위해 지슬은 용기를 낸다. 커다란 종이 배와 재물을 마련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다가가 도채비방쉬를 함께 하며 둘은 힘을 모아 형들을 설득해낸다. 그러나 그 결과 도채비는 형들에게, 지슬은 어머니께 돌아간다. 모든 것이 해결되었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지만 서로의 자리를 찾아간 둘의 모습이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언젠가 서로의 사정에 의해 멀어졌던 친구를 떠올렸기 때문아닐까. 이것은 우리의 오래된 어린 시절뿐만 아니라 얼마 전 친구와 다툰 사람에게도 같았나보다.
연극을 끝나며 나서는 어린 관객이 둘의 관계를 응원하는 이야기들을 들었다.
제주의 설화를 통해 따뜻한 이야기를 불러오다
서로 마음을 내주며 가까워지고 스스럼 없는 모습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 한 구석이 보드라워진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만들어준 허채비 인형은 또 다른 상징이 된다. 허채비 인형은 친구가 존재했다는 흔적이다. 우리는 사는 동안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길고 짧은 시간들을 함께 보낸다. 모든 것은 언젠가 사라질테지만 우리는 그 흔적을 보며 그때의 마음을 보드랍게 떠올린다. 그리고 이것은 곧 도깨비는 오래된 물건에 깃든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도깨비는 이런 오래된 기억을 가지고 떠올리는 존재를 상징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연극 〈도채비방쉬〉에서 지슬은 제주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고 이야기꾼들은 이야기 곳곳에서 제주어들을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그리고 리플렛에는 ‘제주 방언’이 아니라 ‘제주어’라고 말해 줄 것을 당부한다. 여전히 제주에서는 제주어를 배우고 있지만 사용되지 않는 언어와 이야기 그리고 그런 마음들은 사라진다. 자주 우정을 떠올리지 않으면 어떻게 우정을 맺었는지 사랑을 시작했었는지 그 순간들이 흐려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런 마음과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며 여기로 불러오는 연극과 이야기들을 듣고 있노라면 그 순간들이 다시 현재로 떠오른다.
시간이 흘러 흐려지는 전통과 설화와 함께하는 이 우정의 이야기는 어딘가 관계를 맺기 점점 어려워지는 요즈음의 이야기들과 어딘가 잘 맞아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에게 응원을 보내며 언젠가는 사라질테지만 기억을 붙들고 다시 불리워질 이야기와 이름들을 생각하며 공연장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