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불모지' 기획자 추헌민·김재은 작가
메마름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사막일 것이다. 식물이 자라지 못하는 거칠고 메마른 땅. 어떠한 사물이나 현상이 발달하여 있지 않은 곳. 우리는 이를 ‘불모지’라 한다. 연수구는 규모에 비해 실험공간이 부족한 지역이다. 송도국제도시가 생기면서 모든 마천루들이 간척된 땅 위로 옮겨졌고 그들 사이로 굵직한 문화공간들이 들어섰지만 갓 창작을 시작하거나 실험을 도모하는 이들에게는 조금 멀게 느껴졌다. 게다가 송도가 아닌 연수의 다른 지역에선 그마저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말 그대로 불모지였던 것이다.
그런 불모지에 새로운 생동이 자라나고 있다. 작년, 연수구의 한 상업지구에 개관한 공간 ‘불모지’는 인천에서 나고 자란 두 명의 기획자가 지역에 새로이 심은 씨앗이다. 모래 먼지가 이는 그곳에 씨앗을 심고 새싹을 키워내어 생동을 가지고 오는 일. 불가능에 가까운 그런 일을 해내고자 하는 추헌민, 김재은 기획자를 만나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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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에 작업실을 같이 쓰면서 대화를 많이 나눴었어요. ‘공간’을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때는 둘 다 학생이고 작업하느라 생각만 하고 행동하진 못했어요. 이게 그냥 생각만 가지고 진행하기엔 힘든 일이잖아요.”
추헌민, 김재은 기획자는 같은 동네에서 성장했다. 어린 날, 미술학원에서 티격태격하던 두 기획자는 같은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부터 바라보는 지향점이 같아 고민을 나누던 사이가 되었다. 대학 졸업 후에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돈을 벌겠다며 김재은은 학원을, 추헌민은 디자인 회사인 ‘빠밤 스튜디오’를 개업하여 일을 하기 시작했다.
“디자인 스튜디오를 하면서 주로 재단과 일을 많이 했어요. 평소 전시 관련 일을 하면서 재단 담당자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관에 묶여서 못하는 것들도 많고 답답한 상황들이 더러 있더라고요. 큰 규모의 사업은 못해도 자유로운 건 우리가 해야겠다고 결심했죠”
그렇게 6여 년 각자의 자리에서 꿈을 키워나간 두 기획자는 지난해 계획해두었던 공간을 오픈하기 위해 지역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고자 하는 방향성이 조금 달랐어요. 저는 이왕 할 거면 한 번에 크게 시작하자는 입장이었고, 김재은 기획자는 작게 시작해서 경험을 쌓고 점점 키워나가자는 입장이었어요. 때문에 공간을 알아보는 게 쉽지만은 않더라고요”
그런 그들에게 인천문화재단에서 진행한 ‘청년문화 축제 지원 사업’은 해결책이 되었다. 두 기획자의 ‘유휴 공간 전시 프로젝트 <나빌레라:Link on>’사업이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프로젝트를 위해 디자인 스튜디오가 위치한 건물 지하에서 전시를 진행한 게 ‘불모지’의 시발점이 되었다. 개관은 2022년 12월 31일. 개관전 '수면호흡'을 개관일로부터 시작해 1월13일까지 열였다.
“여기가 8년 정도 비워져 있던 지하실이어서 굉장히 상태가 안 좋았어요. 전시를 할만한 여건이 아니었는데 기획한 콘셉트에 맞춰서 전시를 진행했었거든요. 어두운 공간에 관람객들이 플래시만 가지고 들어가서 탐험을 하는 식으로 연출을 했는데, 열흘 정도 진행된 전시에 굉장히 많은 분들이 와주셨어요.”
당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비치해놓았던 설문지에도 긍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지하인데다 홍보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음에도 상가가 많은 동네의 특성상 유동인구가 많은 점이 이점이 됐다. 연수동이라는 입지 자체가 문화공간이 전혀 없기도 한데다 디자인 스튜디오의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으니 관리하기도 조금 더 쉬울 것만 같았다. 그렇게 아트스페이스 ‘불모지’는 연수동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인천에서 활동하는 청년 예술가들이랑 재미난 것들을 해보자 해서 만들어진 공간이에요. 자유롭게 찾아주셔서 전시, 공연, 축제 등 제한을 두지 않고 어떤 형식으로도 창작을 시도해 볼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김재은 기획자의 말처럼 ‘아트 스페이스 <불모지>‘는 개관 이래 전시뿐만 아니라 커뮤니티 모임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지역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해내기 위해 기획에 있어서도 의미있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개관전 이후 인천의 세 미술대학 졸업전시 다시보기란 부제로 전시 ’Keep Gonign’전을 기획하기도 하였다. 졸업전은 1차전 1월 30일~2월10일, 2차전 2월13일~24일까지 계속됐다. '라라랜드 재즈 파티 <City of Stars>'도 3월 18일 개최했다.
“인천에 미술대학이 세 군데(인천대, 인하대, 가톨릭대)가 있는데 정작 인천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은 많지 않아요. 그들 사이에 교류도 전혀 없고요. 게다가 인천에서 나고 자라고 대학까지 인천에서 나온 작가들, 혹은 타 지역에서 성장했지만 대학 진학을 하며 인천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 작가들 모두 졸업 후에 타 지역으로 가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심지어 졸업전시도 서울에서 공간을 빌려서 하더라고요.”
세 대학들 사이 교류의 다리를 놓아주며 지역 외부에서 진행했던 졸업전시를 내부에서 다시 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에 진행한 프로젝트였다. 생각보다 반응도 좋았고 인천 내에서도 충분히 공간이 있고 전시가 가능하다는 걸 인식시키기 위해서 매년 하게 될 것 같다고 김재은 기획자는 밝혔다.
공간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가장 어려운 점은 ‘홍보’라며 두 기획자는 입을 모았다. 많은 분들이 방문하고 작품을 감상하였으면 하지만 워낙에 문화 예술 관련 행사가 없던 지역이라 두려워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바꾸고자 많이 노력하는데 쉽지가 않아요. 워낙 낯선 곳에 개관한 공간이라 익숙하지도 않고요. 또 생긴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지역 작가들도 잘 모르시더라고요. 원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싶은데 할 수 있는 곳이 없어서 힘든 분들 혹은 인천에서 뭘 해보려고 하는데 기회가 별로 없었던 분들이 자유롭게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는데 아직은 시간이 많이 필요한 것 같아요.”
단순히 공간을 빌려주는 것이 아닌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실험을 확장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며 덧붙이기도 했다.
“일단 1년 동안은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프로젝트들을 실험해 볼 예정이에요.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누군가가 자유롭게 자유롭게 찾아오려면 어느 정도 인지도가 쌓여야 한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뭔가 재미난 것들이 생각나면 서로 이야기하면서 그런 것들을 좀 실현해 나가는 게 올해 목표예요”
시간이 지난 후에는 인천에 청년 예술가들을 유치시키는 공간이 되는 게 목표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저희가 지역 내에 다양한 역할을 해서 많은 분들이 연결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인천도 충분히 문화 예술 활동을 하면서 여러 사람들과 같이 재밌는 것들을 할 수 있는 도시구나 라는걸 느낄 수 있었으면 해요”
‘아트스페이스 <불모지>’는 신생 공간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벌써부터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새로운 시도로 활동을 확장해 가는 이들을 보고 벌써부터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기획자들이 하나 둘 모이고 있다.
“연수에 저희를 거점으로 많은 공간들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저희 하나로 바뀔만한 동네는 아니고 중구처럼 공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재미난것들을 도모할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해요. 오신다고만 하면 물심양면 도와드리겠습니다.(웃음)”
불모지를 숲으로 바꾸려면 더 많은 씨앗이 필요하다. 두 기획자의 바람처럼 언젠가는 커다란 나무들이 즐비해 생동하는 지역이 되길 고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