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미안했다. 그리고 고마웠다.
막연히 그럴 거라고 가늠하면서 무수한 속사정을 나름 헤아리는 체했었다는 부끄러움에 더 그랬다.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이 오늘 밤엔 어떤 몸으로 잠이 드는지, 잠에 들기는 하는지 걱정이 앞선다.
육아의 ‘감옥에 갇혀버린’ 여섯 명의 엄마 작가들이 절규하듯 드러낸 글에서 남자(작가)로서는 겪지 못한, 겪을 수 없는 고통스러운 감정들을 마주하면서 그동안 나는 얼마나 안온함 속에서 지내왔는가를 새삼 확인한다.
소설을 쓰는 두 작가와 시를 쓰는 네 작가의 이야기를 묶은 책 <쓰지 못한 몸으로 잠이 들었다>(다람)는 글을 쓰는 ‘엄마 작가’가 겪어내는 기록이다. 그들에겐 하루하루가 아이, 아이들, 혹은 남편이나 다른 가족들과 치르는 전쟁터 속의 삶이다. 출퇴근을 따로 정할 수 없고 별도의 작업실은 고사하고 노트북을 펼칠 공간조차 특정해서 갖기 어렵다.
글을 쓰는 작가가 아니더라도, 출퇴근이 정해져 있다고 해도, 별도의 작업실이 있다고 해도 모든 엄마는 비슷지 않을까? 우유병만 떼면, 걷기만 하면, 유치원만 가면, 학교만 가면, 확연하게 나아질 거라는 기대나 희망은 아이가 커가면서 그 나름의 새로운 전쟁이 늘 벌어지지 않는가 싶다.
엄마로 산다는 건 말야 ‘천국을 등에 업고 지옥 불을 건너는 거야.’ 내 이름을 갖고 싶었다. 미치도록 그랬다. 누구의 며느리도, 누구의 아내도, 누구의 엄마도 아닌 그냥 나.(백은선 작가)
“아주 두꺼운 이불을 덮고, 컴컴한 방에서, 사흘쯤 푹 자고 싶어요.” 읽고 쓰는 사람이었던 나는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이 되었다.’ 세상에 수마처럼 힘센 것은 없다.(김미월 작가)
수많은 육아 선배 작가들은 어떻게 육아와 글쓰기를 병행할 수 있었을까? 그 노하우를 전수받고 싶고, (혹은) 어떻게 노하우 없이 지금의 시간을 겪고 있는지 알고 싶다. 정말 간절하게.(안미옥 작가)
벌이는 부족하고 몸은 쉽게 축나며 정신은 한없이 피폐해지는, 아이라도 낳게 되면 자신을 갈아 넣어야만 간신히 유지되는 직업이니까. 비록 나는 한다만, 차마 남에게 권할 수는 없다. 하물며 자식에게 어찌 권하겠는가.(김이설 작가)
저마다 숨구멍이 좀 필요하다. 엄마가 엄마 노릇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애써 알려주어야 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엄마가 좋아하는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이근화 시인)
오늘도 쓰지 못한 몸으로 잠이 들었다. 내가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이런 하루도 괜찮았을까? 아프고 망가진 몸으로 쓴다. 나에게도 내가 필요해서, 나는 나를 데리고 가는 중이다.(조혜은 작가)
엄마 작가들의 간절함을 듬성듬성 솎아낸 문장 몇 개로 온전히 전할 수는 없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엄마인 ‘나’도 태어난다.”는 김나영 평론가의 말처럼 처음인 세계를 마주하고 대처해야 하는 엄마(작가)들이지만 때때로 아이가 보내는 뜨거운 사랑 앞에서나마 응어리를 풀어내길 바란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오늘만이라도 편히 잠드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