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연수구 청학동 일대 - 유광식/ 시각예술 작가
삼복더위를 무사히 버텨냈다. 아직 대기 줄에 선 태풍이 있어 앞으로도 조심해야겠지만, 자연 못지않은 이 사회의 태풍급 이슈에도 방어력을 키워야 할 것 같다. 뭐만 했다 하면 뭐가 되어버리는 이 시국이 염려스러운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나쁜 짓을 하면 천벌을 받는다고 하지만, 이는 시대착오적인 이야기인지 천벌은커녕 재산만 느는 것 같다. 답답함을 나누던 중 한 지인은 강화 함허동천이 너무 좋아 사람들과 두 번이나 다녀왔다고 했다. 이름만 들어도 시원한데, 계곡까지는 못가더라도 문학산 아래 골짜기, 청학동으로 피서 아닌 피서를 다녀왔다.
문학산 남쪽에 자리 잡은 청학동은 문학터널 옆 동네로, 늘 지나치는 공간이었다. 청학동을 떠올리면 청학풀장과 협궤열차의 풍경, 연수역 인근의 근린공원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다. 우선 청학사거리 기준으로 북서쪽, 풀장이 있던 마을로 향했다. 높은 벽돌 굴뚝의 청학탕을 지나 골목 끄트머리까지 올라가면 지금은 사라진 물놀이장이 있다. 청학풀장이라 불리며 인천의 대표적인 여름 피서지 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고기도 구워 먹고 온종일 수영하다 보면 여름방학이 곧 수영장 기억이 되는 그런 곳 말이다. 기억은 어떻게든 남고 지금은 청설모의 근거지라도 될법한 청솔공원으로 바뀌어 있다.
따사로운 볕이 마을을 말리는 오후가 좋다. 앞쪽에는 청량산이 자리하고 있어 겨울의 차가운 바닷바람을 막아 줄 것이다. 오래전 능이 있었다고는 하나 그 위치를 가늠할 수는 없다고 한다. 청학동을 중앙으로 관통하는 수인분당선으로 인해 마을의 교통은 한결 좋아졌다. 대로에 차량이 꽤 많은데, 아래 송도 방향으로 오가는 차량으로 보인다. 연수문화원이 사거리 옆 청학문화센터로 이사한 지는 5년이 넘었다. 특히 마을 안쪽에 도시재생어울림센터 및 창작플랫폼이 내년 목표로 건립 중이다.
비류대로 아래로 오래된 아파트가 보인다. 마흔 살 영남아파트도 시대적 소임을 다한 후 재건축 시장에 놓였다. 바로 옆 청학도서관 뒤로는 향나무 어린이공원이 있다. 향나무를 찾아보았으나 공원 안이 아닌 길옆에 위치해 보호수 팻말이 아니었으면 지나쳤을 수도 있었다. 향나무는 500년이 넘는 수령으로, 덧댄 지팡이 수가 많은 걸 보니 보호가 쉬워 보이지 않는다. 잘 버텨 주기만을 바랄 따름이다.
미추홀대로를 건너 용담근린공원 쪽으로 향했다. 연수보건소(1997년 이전해 옴)도 있고, 용담아파트도 있고, 바이오과학고도 있고, 30년 된 시대아파트도 보인다. 오래된 공원에 분위기가 크게 자랐다. 땅에 붙어 무더위에 쉬고 있는 비둘기, 축구장에서 공놀이 중인 아이들, 평상을 전세 낸 아주머니들, 기사식당 거리에서 식사하는 택시 운전사 아저씨, 잠자리채를 휘두르며 아이 앞에서 능력을 보이려 애쓰는 아빠, 운동기구를 구워삶는 부부, 올해 유행이라는 크롭티 패션을 하고 강아지와 산책하는 젊은 여성 등 거리 풍경이 오밀조밀 다채롭다. 용담근린공원 중앙 연못이 어떤 시대적 다정함을 자아내고 있는 가운데, 얼마 후에는 먼 길 떠나야 하는 매미들의 떼창이 다소 처절하다.
조금 내려가 청학근린공원도 가본다. 나무숲 사이로 펼쳐지는 널찍한 광장에서는 어렸을 적 아빠와 함께 어린이날에 온 기억이 있다는 어떤 이의 사연도 비둘기 우체부에게 전해들을 수 있었다. 비둘기들이 잠시 오후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이, 저녁 밥 때가 되어 가는지 어디선가 맛있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집에 돌아가야 할 때라며 차를 세워둔 연수역으로 향했다. 연수역 공영주차장(서측)에는 2년 후 보훈회관과 연수소방서가 들어선다고 한다.
연수구 원도심 청학동이 아래로 흘러 키워낸 시대가 커 보인다. 풀장의 기억, 시원한 계곡물이 소방수가 되어 무더운 이 여름을 식히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묵묵히 변화를 지켜볼 뿐이다. 곧 처서(23일)인데 선선한 바람이 기적을 울리며 도착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