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력이라는 이름의 기억회로, 주안사거리에서
상태바
활력이라는 이름의 기억회로, 주안사거리에서
  • 유광식
  • 승인 2023.09.04 10: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천유람일기]
(111) 미추홀구 주안사거리 일대 - 유광식/ 시각예술 작가

 

제일시장 중앙홀(재정비 사업을 앞두고 있다), 2023ⓒ유광식
제일시장 중앙홀(재정비 사업을 앞두고 있다), 2023ⓒ유광식

 

가을 기온이 살짝씩 손끝을 간질인다. 오래전 바람이 잘못 노크를 했는지 싸늘한 한줄기 인생을 느끼게도 된다. 무엇보다도 일본의 오염수 방류로 인한 바다 생태계 파괴가 싸늘하다면 싸늘한 소식이었다. 내리는 빗줄기조차 낭만으로 읽히지 않는 환경 속에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자꾸만 되묻게 된다. 분명 현세대 모두의 반성과 노력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답답한 마음에 무작정 달렸더니 어느새 도화 나들목에 다다랐다. 인근 주안사거리 일대를 거닐어 본다. 

 

주안2동 골목에서, 2023ⓒ유광식
주안2동 골목에서, 2023ⓒ유광식
도화1동 KT 앞 상점(천천히 걸어 온 삶의 드로잉), 2023ⓒ유광식
도화1동 KT 앞 상점(천천히 걸어 온 삶의 드로잉), 2023ⓒ유광식

 

주안사거리(삼거리 같기도 함)는 도화동 제일시장(제일로)과 주안시민지하도상가(경인로)가 맞닿는 곳이다. 근방에는 미추홀구 기관 모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굵직한 기관, 시설이 이곳저곳 숨어 있다. 옛 미추홀구청이 있기도 했거니와 인근의 주택 재건축∙재개발로 놀라우리만치 더 빼곡해졌다. 전봇대 옆에 주차하고 감이 떨어진 좁은 골목을 지나 주안우체국을 들른 후 건너편 제일시장으로 향했다. 시장 이름도 제일이라서 제일일 것으로 생각했는데(그런 시절도 있었고) 50년도 넘은 정취와 더불어 허름해진 모양은 어쩔 수가 없다. 시장 옆 빌딩명이 롯데월드타워다. 누가 보면 인천에도 롯데월드가 있는 건 아닌지 내기라도 걸 기세다. 그 옆 건물명은 신세계다. 

 

제일시장 주변(천막이 낯빛에 붉게 익는다), 2023ⓒ유광식
제일시장 주변(천막이 낯빛에 붉게 익는다), 2023ⓒ유광식
제일시장 주변(양산도 수리, 우엉과 돼지감자는 북한산?), 2023ⓒ유광식
제일시장 주변(양산도 수리, 우엉과 돼지감자는 북한산?), 2023ⓒ유광식

 

제일시장은 특히 곱창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동안 판매된 곱창의 길이를 합하면 지구를 몇 바퀴나 감쌀 수 있을까? 시장 바깥 둘레로 포진한 가게들은 아직도 영업 중이고 시장 중앙홀은 짐 더미와 고양이들의 놀이방으로 쓰이고 있다. 힘겹게 붙어 있는 간판을 보며 제일을 외치며 삶을 꾸렸을 시끌벅적한 장면을 연신 상상해 보았다. 작년 초쯤 이사한 육개장 맛집 풍전식당이 시장과는 조금 더 멀어진 사이가 됐다. 

 

고향 이름을 걸고 장사하는 곱창집들(새끼 고양이와 눈 맞았다), 2023ⓒ유광식
고향 이름을 걸고 장사하는 곱창집들(새끼 고양이와 눈 맞았다), 2023ⓒ유광식
제일시장 중앙홀(떡집도 많고 요리에 필요한 채소를 파는 집도 많다), 2023ⓒ유광식
제일시장 중앙홀(떡집도 많고 요리에 필요한 채소를 파는 집도 많다), 2023ⓒ유광식

 

주안시민지하도상가로 내려갔다. 비 피하기도 좋고 쇼핑도 하면서 인천2호선 시민회관역까지 안정적으로 걸을 수 있다. 시설 리모델링 효과인지 무척 쾌적했다. 무엇보다도 시민문화 활동을 지원하는 장소(아트 애비뉴 27)가 있다. 지하도상가 이용객들은 연세가 좀 있어 보였다. 건강의료기기 홍보관은 만원이다. 댄스 의상을 취급하는 상점도 많다. 간판의 색이 바랜 미용실, 찻집, 음식점 등은 글자가 하나씩 떨어져 나가 세월을 짐작케 한다. 현대적인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검정과 하얀색으로만 치장한 배달음식점 간판이 간혹 돌출되어 보이는데, 어떤 자본의 가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복집의 은은한 빛깔을 원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주안시민지하도상가의 쾌적한 분위기, 2023ⓒ김주혜
주안시민지하도상가의 쾌적한 분위기, 2023ⓒ김주혜
시민들의 문화 휴식처 ‘아트 애비뉴 27’ 입구, 2023ⓒ유광식
시민들의 문화 휴식처 ‘아트 애비뉴 27’ 입구, 2023ⓒ유광식

 

지하도상가를 나와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주안자유시장으로 향한다. 시장의 기능을 상실한 채 한때를 증언하고 있었다. 맛있는 닭강정 향이 시장의 명령처럼 발걸음을 잡아끌기도 한다. 시장 중앙은 비둘기가 지키고 있는 고추 건조장이다. 이번 겨울이면 김장이나 각종 음식에 뿌릴 빨간 마법인 고춧가루를 만들기 위한 사전 풍경이다. 시장은 전반적으로 주눅이 들었다. 허름한 장소를 볼 때마다 한 시절이 단정하게 접히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시민회관사거리에서 이사한 주안초등학교를 거쳐 다시 제일시장 쪽으로 걸어 나왔다. 인근의 재건축을 위해 설치한 안전펜스와 사악한 이유가 깃든 빨간 스프레이 글씨, 마음마저 까만 건 아닌지 모를 배달 오토바이와 검정 차들이 이 장소의 검은 점박이처럼 곳곳에 배어 있다. 

 

주안2동 주안자유시장 입구(반대편 간판에는 ‘주’자가 도망갔다), 2023ⓒ유광식
주안2동 주안자유시장 입구(반대편 간판에는 ‘주’자가 도망갔다), 2023ⓒ유광식
주안자유시장 중앙은 최적의 건조장(비둘기가 보초를 서고 있다), 2023ⓒ유광식
주안자유시장 중앙은 최적의 건조장(비둘기가 보초를 서고 있다), 2023ⓒ유광식

 

수산물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 가운데, 경인로 앞 해주물텀벙과 용인정은 바람 앞에 위태로운 고비와도 같은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상황이 아니길 바란다. 시민지하도상가 18번 출입구 앞에서 오래도록 스위트한 빵과 피자를 만드는 스위트과자점과 그 건너편 골목의 싸늘해지는 날씨에 딱 맞는 용동칼국수 집이 욕심 같지만, 다음번 왔을 적에도 발견되면 좋겠다. 아직은 빵집 아주머니의 표정이 스윗(sweet)한 걸 보면 걱정 붙들어 매도 좋을 것 같다. 

 

어느 어르신의 한복집(동네 모임 장소), 2023ⓒ김주혜
어느 어르신의 한복집(동네 모임 장소), 2023ⓒ김주혜
주안시민지하도상가(경인로) 위 도로변, 2023ⓒ유광식
주안시민지하도상가(경인로) 위 도로변, 2023ⓒ유광식

 

 
주안사거리는 구 경인고속도로 도화IC로 드나드는 길목이어서 차를 타고 쉽게 지나칠 법한 곳이지만, 반백 년의 시간이 담긴 장소가 곳곳에 있어 눈여겨보고 지켜가야 할 곳들도 많다. 초대형 초고층 빌딩 형식으로 덮여 가는 분위기가 삭막도 하나, 적응해야 할 과제로도 비친다. 장소는 나이 들었어도 오가는 어르신들의 모습에서 활력을 감지한다. 함께 젊어지는 느낌이다. 이게 제일이다~!

 

제일시장의 밤, 2020ⓒ유광식
제일시장의 밤, 2020ⓒ유광식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