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월미산 일대 - 유광식/ 시각예술 작가
새벽 찬 기운에 이불을 좀 더 끌어당기며 하루를 계획해 본다. 그런데 혼탁해지는 사회 이슈들로 가을 기분이 다치지는 않을지 걱정부터 앞선다. 멀쩡한 흉상을 철거한다고 하고, 바다에 제대로 빨대 꽂은 오염수는 어찌 설칠지 알 수 없다. 또한 우리가 학대와 폭력이 난무하는 이 사회를 그저 어쩔 수 없다는 경험으로만 여기지 않기를 바란다. 추석 명절을 앞둔 시기다. 맛있게 먹던 당근과 애호박이 조금 비싸진 느낌이다. 새콤달콤한 향이 일품인 포도의 가격을 저울질하며 한 상자 구매할 날을 기다리고도 있다. 날도 마음도 흐려 잠시 밖으로 나가 본다.
월미도에 닿았다. 가는 길에 만석우회고가 도로가 있었던지 내 기억을 의심케 한다. 전면 철거가 된 모양으로, 도로는 좀 더 말끔해졌다. 월미도는 인천에 와본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찾을 만큼 유명한 곳이다. 또한 숱한 역사와 이야기가 중첩되고 병합된 곳이기도 하다. 월미산은 자주 올랐건만 매번 스쳐 지나가기만 했던 월미문화관에 처음으로 들어가 보았다. 시설 앞 광장에는 바다를 두고 일렁이던 역사의 기념탑과 기념비가 전진 배치되었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월미공원사업소가 있는 월미문화관은 외관부터 무게감이 강했다. 1층 로비에 들어서서 월미도의 기초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작은 전시로 입가심한다. 궁중문화 전시와 한식 체험장(지하)도 운영하고 있었는데 독특하게 느껴졌다. 맛있는 궁중음식들을 모형으로 재현해 두어 눈요기를 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인근에 전통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조선시대 행궁의 역사도 전해진다. 궁중음식도 궁중음식이지만 바로 옆에는 모 대기업들의 곡물 공장이 현대 백성들의 입맛을 책임지고 있다.
군사요충지답게 월미산은 전쟁 이후 반백 년 동안 군사지역으로 통제되어 있었다. 2001년 해군사령부가 평택으로 이전하면서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 두 번째 해방을 맞이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전쟁과 연관되지 않은 게 없을 정도로 많은 슬픔이 깃들어 있는 장소다. 전쟁의 아픔을 딛고 평화의 공원으로 발돋움하고자 2002년부터는 월미평화축제가 개최되었다. 지금은 월미도를 넘어 매년 시민과 함께 이슈를 모아 여러 곳을 항해하며 축제를 진행한다. 올해도 9월 초, 22회 인천평화축제에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하였다.
요즘 환경과 생태, 평화가 사회적 이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지 못한 사회 분위기라서 좀 더 부르짖는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우리 사회와 내 주변에 진정 평화는 존재하는지, 평화가 가능한지에 대한 생각이 어느 한날 뚝딱 실현되는 게 아니라, 전통이 되도록 이어가는 실천이 필요하다. 매 월미도를 찾는 이유라면 이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는 해가 짧았던 관계로 월미산 정상까지 오르지 못해 아쉬웠다.
한편, 가정이 무너지는 사건・사고를 많이 접한다. 울타리라는 것이 쉽게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도 한번 무너지면 절망의 악순환이라는 염려에 머리카락이 쭈뼛 서기도 한다. 인천의 한 가정인 월미도에도 조금씩이지만 평화가 높고 넓어지고 있다. 궁중음식을 눈으로만 먹어서인지 조금 출출해졌다. 인근 카페로 자리를 옮겨 맛있는 단팥빵을 먹었다. 공연장도 마련된 법인 기업이 운영하는 베이커리 카페였다. 우리에게 맛있는 음식만큼 효과 좋은 평화는 없다고 생각한다. 공영주차장이 마치 카페 주차장을 연상케 하는 가운데, 주차장 끝 커다란 미루나무 가지 따라 평화의 마음이 살랑살랑 파도를 탄다.
카페에서 나와 박물관역 쪽으로 향했다. 방파제 끝 등대를 가고자 했으나 아뿔싸! 육중한 공사 건물로 인해 진입 통제가 되어 있었다. 국립인천해양박물관 건립 공사로, 내년(2024년) 완공 예정이라고 한다. 국립해양박물관은 부산에도 있다. 박물관이 개청하면 인근 한국이민사박물관과 함께 인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시설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월미도는 관광지였다. 인천의 고운 얼굴이었는데 전쟁 이후 정체가 모호해졌다. 2000년대부터 이런저런 개발 관련 마찰이 끊이지 않았다. 공원이 평화의 의미로 자리매김하면서는 탄약고가 예술고가 되고 정상에서 그리는 풍경은 우리의 미래가 되어 간다. 한때 포탄으로 일그러졌던 월미산이 빵이 부풀 듯 복원되고 온전한 평화가 머물며, 지역과 사회를 감싸는 따듯한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족과 함께 먹고 싶었던 자장면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맛있다! 평화가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