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아이로 기르려면 질문하고 토론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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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아이로 기르려면 질문하고 토론하게 하라!
  • 고보선
  • 승인 2017.02.12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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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논단] (2) 고보선/ 인천석남중학교장


2016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포럼에서 공개된 ‘일자리의 미래(The Future of jobs)'라는 보고서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앞으로 15개국에서 현재의 일자리 710만 개가 사라지는 대신 새로운 일자리 210만 개가 생겨날 것이며 향후 5년 내에 사무직 및 관리 직종의 475만900개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30년 후에는 무인자동차가 택시와 버스기사를 대신하여 승객을 실어 나르고 드론이 택배기사들을 대신하여 물건을 배달할 것이다. 3D 프린터는 기술자와 목수의 일을 대신할 것이며 구글의 번역기가 여러 나라의 언어를 동시통역할 것이다. 머지않아 세 살부터 시작되어 취업 후까지 계속된다는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영어학원의 순례를 떠나지 않아도 바벨탑이 가로막은 언어의 장벽이 무너져 내릴지 모른다.

4차 산업혁명의 징후는 이미 우리 눈앞에서 조금씩 시작되고 있다. 외출 시 스마트 폰으로 엘리베이터를 호출하면 기다릴 필요 없이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다. 일어나서 손을 뻗지 않아도 저절로 조명이 꺼지고 TV. 정수기 등 가전제품은 알아서 절전 모드로 전환한다. 양손 가득 장을 본 주부는 주차장에서 비밀 번호나 현관 키 없이 집 안까지 들어갈 수 있고 음성으로 집안 가전을 제어할 수 있다. 아파트가 집주인을 알아보고 현관문을 열어준다. 이른바 ‘지능형 스마트홈’이 보편화되어 우리 곁에 와 있 는 것이다.

이뿐인가. 무인 단속은 기본이 되었으며, 무인 민원발급기와 무인 전철, 자율 주행자동차까지 갑작스럽게 몰려온 4차 산업혁명의 물결에 야릇한 흥분과 경이로움, 불안과 충격이 교차한다. 산업은 물론이고 사회와 우리의 관행적 사고방식까지 기존의 견고한 것들이 인공지능 속에 녹아내리고 있다.

서울대학교 이정동 교수는 어느 저술에서 “어느 시대이건 인간은 살아가면서 언제나 생각의 가치와 윤리의 문제를 고민하기 마련이다. 기술이 바꿔 놓을 사회 지형의 변화를 둘러싸고 우리는 이것이 ‘좋은 사회인가’라는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인간 스스로가 만든 기술이 불평등을 심화시키면 이를 교정하고 자신의 경제적 운명을 피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통해 저항하거나, 기술을 후퇴시키거나 중단시킬 수 있는 지혜와 능력도 갖고 있다. 거북이도 생각보다 빨리 헤엄친다는 말이 있다. 인간과 사회는 새로운 기술 변화에 생각보다 잘 적응할 것이다. 사회는 정치적 역량을 발휘해 자본과 기계, 인간의 분배 몫을 공평하게 나누며 기계와 공존하는 방식을 찾아갈 것이다.”며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서 인간은 기계과 인간의 분배의 몫을 고민하여 잘 공존해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공존은 과연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는 지금부터 우리의 교육이 미래 사회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필요한 삶의 역량을 길러낼 때 가능한 것이다. 우리 교육이 인공지능과는 차별화되는 인간만의 감성능력 등을 길러내지 못하고 미래사회에 적합한 아이들의 삶의 역량을 길러주지 못한다면 우리 아이들은 미래 사회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공상과학영화로 치부하던 <아이로봇,2004>에서와 같이 로봇의 반란이 현실화될 수도 있는 일이다.

이제 우리 교육은 스마트 교육 등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에 힘입은 교육의 양적 확대만이 아니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 맞는 근본적인 교육의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루어내어야 한다. 더 이상 2차 산업혁명 시대, 영화 <모던타임즈>에서 컨베이어벨터의 나사를 조립하는 숙련노동자를 길러내기 위한 3RS와 반복, 암기 교육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또한 분업화 시스템에 적합한 교과와 교실로 고립된 교실도 4차 산업혁명에 걸 맞는 학교의 구조가 아이다.

이제 4차 산업혁명은 학교의 역할, 교사의 역할, 교육과정의 편성과 운영뿐만 아니라 교육 주체의 변화, 나아가 교육의 대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물결이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있는 지금, 현재의 교육정책과 학교교육의 혁신이 시급히 요청된다.


첫째, 민주적 교육(학교)문화로의 혁신이 필요하다.
촛불 정국에서 새로운 분야의 민주화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으며, 경제민주화, 정치민주화에 이어 교육 민주화가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교육민주화의 저변에 관료주의가 아직도 우리 학교현장 곳곳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학교경영 철학과 교육 목표는 슬로건으로 그치고 있으며, 학생 중심의 교육과정 운영과 학습에 대한 요구가 교육활동으로 구현되기보다는 공문과 지침에 의해 운영되는 시책성, 전시성 행사가 주를 이루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교사의 잡무로 이어지고 학교문화에 만연한 형식주의로 흐르게 되어 가르치는 교사가 아니라, 행정업무를 중시하는 학교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최우선이 되어야할 학습자의 배움이 뒤로 밀리는 수동적인 학교문화는 수업 기획력의 부재와 교육의 부실로 나타나고 있으며, 학교에서 배움이 떠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학교 문화의 폐쇄성은 교사의 전문성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미래 사회에서 요구하는 더불어 살아가는 시민 육성이라는 근본적 교육지표를 역행하게 된다. 미래를 지향하는 새로운 학교문화는 교사의 수업 우선의 자발성과 능동성을 부여하는 것이며, 급변하는 사회에 대처할 수 있는 창조적인 학습자 중심의 교육문화가 조성되어야 한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어서지 못한다고 하였다. 미래의 아이들을 길러내야 할 교사조직이 폐쇄적이고 수동적이고 형식적이라면, 학습전문가 조직으로 서지 못하고 행정업무조직으로 머물러 있다면 그 교육문화의 토양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결코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아이들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교육은 명시적이 아니고 암시적이다. 배움은 말이 아니라 공기와 바람, 냄새를 통부지불식간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래의 아이들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학교의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둘째, 수업을 변화시켜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는 융합의 시대이다. 사물인터넷, 로봇, 인공지능(AI), 빅 데이터 등의 기술이 나노기술(NT), 바이오기술(BT), 정보기술(IT), 인지과학(CS)의 융합기술이 생산을 주도하는 시대이다.

3차 산업혁명 시기의 양적으로 많은 지식의 암기와 반복과 같은 수업방식은 더 이상 필요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카이스트의 정재승 교수는 ‘단순 지식을 활용한 낮은 수준의 분석은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수 있지만, 인간은 더 높은 수준의 창의성을 발휘한다. 그러려면 자신이 좋아하고 관심 있는 분야에 몰입해야 한다.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성패에 연연하지 않고 ‘실패 가능성이 있으나, 도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의 산업 사회는 신뢰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주어진 매뉴얼대로 빠르게 벤치마킹해 실수 없이 일을 해내면 눈에 보이는 결과를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다르다. 실패 가능성은 있으나 도전할 수 있는 용기는 정답만을 요구하는 사회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신뢰와 믿음은 공동체가 함께 해결하려는 기반위에서 이루어진다. 신뢰의 기반, 문제를 제기하고 오답을 제시해도 혼나지 않는다는 믿음에서부터 모든 지식은 축적되는 것이다.

분야의 융합, 지식의 융합, 협동의 융합이 필요하다. 함께 해결해야 하는 불확실하고 빛을 참아 더듬으며 가야하는 상황이다. 성취를 위해서는 각자가 지니고 있는 다양한 영역에서의 융합과 협력, 신뢰와 믿음을 주는 협력적 사회인을 양성해야 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세계경제포럼에서 클라우드 슈밥 회장은 2020년에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역량으로 타인과의 조정력과 사람관리, 감성 지능, 협상력, 인지적 유연성 등을 들고 있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 가장 시급한 교육의 과제는 수업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최고의 지성이라는 서울대학교 학생들조차도 교수의 강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 적고 시험에서 교수의 의견을 그대로 제시한다는 통계 결과가 있다. 이런 토양에서 창의성의 싹이 자라기를 바라는 것은 그야말로 황무지에서 아름드리나무가 자라기를 꿈꾸는 허상이 아닐까?

더디고 답답해 보이더라도 아이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서로의 토론을 통해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 창의력과 문제해결력은 그 속에서만 비로소 싹 트는 것이 아닐까? 급우들과 서로 토의하고 협력하며 지식을 융합하고 생각을 융합하고 마음을 모아보는 연습 없이 오직 교사의 말을 일방적으로 받아 적고 그를 금과옥조처럼 읊조리며 자란 아이들이 지금 눈앞에서 다소 좋은 성적을 받는다고 그것이 미래를 보장받은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라. 30년 후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지금 우리 부모들이 살아가는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그러므로 교사의 말을 일방적으로 받아 적고 강의식 수업, 암기 중심의 수업, 문제 풀이 식 수업에서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 주어진 과제를 공동으로 해결하려는 믿음의 마음과 더불어 해결하려는 신뢰의 마음이 결합되어 해결하는 배움 중심의 수업을 통해 융합적 해결력과 창의적 사고를 창출해 낼 수 있다.


셋째는 평가의 혁신이 필요하다.
정재승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은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꾸준히 시행착오를 해보도록 밀어주고 독려하는 쪽으로 사고방식과 사회 인프라가 함께 바뀌어야 가능하다. 이것이 축적의 시간을 통한 진화 방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성공 경험과 전문가의 조언만으로는 안 된다. 자꾸 변경을 더듬는 시도를 하고, 그 도전경험이 소실되지 않도록 꼼꼼히 축적해야 한다.”하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 동전을 놓고 그 위에 종이를 얹고 긁어 100원짜리인지, 500원짜리인지 알아가는 아이들의 놀이와 같이 많이 시도해본 사람일수록 더 빨리 변화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듯 꼭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어도 이런 저런 황당하고 이해되지 않은 시도도 해보는 수업 변화의 혁신이 절실하다. 그러나 우리 교육은 이런 시도와 시행착오를 용납하지 않는다. 단한번의 시험과 시도로 성공하면 높은 점수를, 실패하면 낮은 점수로 서열화 시키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이 근본적 원인은 진학을 우선시 하는 입시위주의 경쟁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것이 ‘4차 산업혁명, 한국은 없다’(정재승 교수)는 책에 쓰인 불안감의 정체인 것이다.

4차 산업 시대를 맞아 창의와 도전이 중요하다고 외치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실수 없이 빠르게 창의적이 되라고 요구한다. ‘마음의 감옥’처럼, 이 모순을 극복하는 것이 지금 우리 교육이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얼마 전 작고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한국을 위해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그의 고언이 떠오른다.

“한국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은 교육이 정반대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학생들은 하루 10시간 이상을 학교와 학원에서 자신들이 살아갈 미래에 필요하지도 않을 지식과 존재하지 않을 직업을 위해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우리의 자녀가 미래의 주인공으로 살기를 바란다면 3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사는 당신의 방식으로 반복하여 암기하고 계산하기를 강요하지 말고 생각하고 질문하고 토론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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