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 르네, 하이눈…” 40년 전 ‘미스박’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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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 르네, 하이눈…” 40년 전 ‘미스박’은 지금
  • 이재은
  • 승인 2016.12.12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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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지못하는사람들] (7회) 동구 금곡동 '박 의상실'

스물여섯, ‘미스박’을 간판으로 달고 의상실을 시작했다. 결혼하지 않고 ‘내 일’을 하면서 자유롭게, 재미있게 살아보리라. 한 번도 배다리를 떠나지 않았다. 신포동에 가게를 차렸다면 지금보다 벌이가 좋았을까? 박 의상실은 내년 5월이면 만으로 40년이 된다.

“기술이 있어서 그랬는지 이 자리를 떠나지 못했어요. 신포동에 차렸으면 지금보다 인지도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하지만 내 인생이니까. 어떻게 보면 바보스럽지만 한 가지 일을 끈덕지게 이끌어왔다는 생각도 들고…. 그치만 뭐, 잘 살았어요.”

박태순(65) 님이 건넨 따듯하고 붉은 오미자차에는 잣 일곱 개가 동동, 앙증맞게 떠 있었다.


의상실 벽에 걸려 있는 옷 사진들 ⓒ이재은


“70년대 중앙시장에는 양장점, 양복점이 굉장했어요. 골든, 르네, 정 의상실… 백합, 장미, 미파, 하이눈, 엘리제… 제네바, 월계수 양복점도 있었고요. 요즘은 가게 차리는 데 돈이 많이 들지만 그때는 월세 얻은 집에 또 월세를 얻어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어요. 저는 이본느 화장품하고 가게를 같이 썼죠.”

바느질 솜씨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한때 미싱사, 옷 제작자, 시아개 시다, 감침질 시다 등 네 명을 직원으로 둔 적도 있다. 그때는 돈 있는 사람이든 조금 없는 사람이든 거의 다 옷을 맞춰 입었다. 명절이 가장 바쁘고, 그 다음은 계절이 바뀔 때였다. 

밤 새워서 바느질 한 적도 부지기수였다. 한 겨울과 한 여름은 ‘시마철’로 잠깐 쉬어간다. 당시 흔히 쓰던 표현으로 ‘시마난다’는 한가하다는 의미다. 생활 곳곳에 일본어가 스며들어있던 시절이었다.

“어느 여름인데, 어느 여름이 아니라 2006년 여름에 사람들이 측량을 하는 거예요. 무슨 측량이냐고 물어보니 도로를 만든다는 거야. 무슨 용도로? 마을을 없애고 산업도로가 뚫릴 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어요. 시에 편지를 써서 민원을 넣었죠. 답장이 왔는데 도로를 만드는 게 맞다는 거예요. 아벨서점 형님, 스페이스빔 대표, 당시 진보당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위원회를 구성했어요. 작은 힘이 모아지니까 큰 힘이 되더라고요. 사람 사는 일에 관해서는 함부로 하면 안 되잖아요. 나 하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모아서 머리를 맞대면 분명히 길이 생겨요. 이 안에서 바느질만 한 내가 뭘 알겠어요. 그런데 집회도 열고…. 내가 집시법 위반으로 경찰서에도 가고, 법원에서 판사 앞에도 섰다니까요. 경찰이 나한테 뭘 묻는데 요즘 애들 말로 ‘쫄아서’ 그렇게 기침이 나더라고.”

감사원에서 부적합으로 판결이 나 불허로 마무리 됐지만 주민들이 똘똘 뭉쳐서 사회적 환기와 감시를 이끌어낸 힘이 컸다. 


40년간 배다리에서 의상실을 운영해온 박태순 님 ⓒ이재은


“답답한 인사여서 시대에 따라가는 스타일이 못 돼요. 주어진 일을 하면서 그날 그날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여길 못 떠나는 것 같아요. 떠난 사람들은 돈도 많이 벌었어요. 그것도 좋긴 좋죠. 조그만 가게나마 내 일, 여기가 나의 터전이라고 생각해서 못 떠났을 거예요. 배짱이 없었던 걸 수도 있고. 가게를 번듯하게 차렸다면 잘 됐을까? 그보다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 좋았고 신경이 쓰였어요. 인간관계를 중요시하는 사람이 있고, 이성적인 판단이 먼저인 사람이 있는데 나는 감성 쪽인가 봐요. 이익을 따라가기보다 그냥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 좋다….”

결혼을 하고, ‘박 의상실’로 간판을 바꿔단 후에도 그는 오랫동안 ‘미스박’으로 불렸다. 따르릉 따르릉, 맑으나 흐리나 즐거운 동네 한 바퀴. 여전히 그 동네에 살면서 그를 알고, 그가 아는 사람들과 오래 전부터 주고받았던 안부를 물으며 지내고 있다. 

낮에도 대체로 조용하고 밤에는 조금 더 캄캄한 배다리 마을. 번쩍번쩍한 동네와는 다른 이곳에서 그는 얻은 게 많다고 생각한다. 마음속으로만 품었던 또 다른 배움과 가르침을 병행하며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겉으로 보면 한가한데 한 집 한 집 들여다보면 다 바쁘게 살아요. 그러면 괜찮은 거 아닌가? 한미서점도 변화가 있어서 좋고, 삼성도 깔끔하게 바뀌었고, 아벨서점은 또 공간을 늘렸고.” 

동산서점, 광명서점, 인창서림, 국제서림…. 집현전은 옛날 항동서점에서 바뀐 이름이다. 의상실 제목에 이어 그는 배다리 헌책방 거리의 옛 간판을 줄줄줄 읊는다. 한미서점은 아버지가 했던 걸 아들이 물려받았어요. 정명서점, 삼성서림도 있었고….

“배다리에 책방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청산이 여기를 부지런히 알리잖아요. 꾸준히 지키고, 살리려고 애쓰잖아요. 지난 가을에 배다리 마을학교 프로그램 ‘되살림 강좌-드륵드륵 열리다’를 개설해준 것도 너무 좋았어요. 고맙고.”

돈 벌려고 시작했던 일이 친구가 됐다. 옷 만드는 기술이 없었다면 무료해서 어떻게 살았을까? 그는 요즘 수선(리폼)에 관심이 많다. 옛것을 개성대로 고쳐 입을 수 있게 주위에 수선법을 많이 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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