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무니? 저 청년한테 박스 사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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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무니? 저 청년한테 박스 사셨어요?"
  • 김인자
  • 승인 2017.02.10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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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3천원의 행복

심계옥엄니 사랑터에서 돌아오시는 시간이 새해가 되면서 4시에서 4시 36분으로 36분 뒤로 늦춰졌다.
아파트정문에 가보니 4시 31분인데 벌써 사랑터차가 아파트정문에 와있다.
 
"나 무서워서 죽는줄 알았어여~"
문이 열리고 심계옥엄니 차에서 내리자마자 운전하시는 요양사선생님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시다.
"왜요? 선생님?"
"뒤에서 어떤 남자가 차문을 열고 소리를 빽빽 질렀어요."
"소리를요? 왜요?"
"나보고 차 빨리 출발 안 시킨다고요."
"아니 옆으로 돌아가면 되지. 그 분이 왜그러셨을까요.길이 여기만 있는 것도 아닌데."
"그니까요. 창문 열고 삿대질을 막 하더라구요. 욕하믄서요."
"에구 그 분 부부싸움 하셨나보다. 선생님 많이 놀래셨겠어요.
울할무니들두요."
그러고 보니 순재할무니가 안보이신다.
바른말하기대장 순재할무니가 계셨으면 그 남자분께 뭐라고 하셨을까.
"순재할무니는요?"
"속이 아프셔서 병원 다녀오신다고... 봐서 오신다고 하셨는데. 안오셨어요.이순재어르신이 계셨으면 호통을 쳐주셨을텐데."
"그러게요..선생님 놀라셨겠어요. 맘가라앉히시고.. 조심운전 하셔요 선생님. 제가 다음엔 더 일찍 나올께요."
"아니에요, 오늘 우리가 다른 날보다 좀 일찍 왔어여.어르신들이 많이 결석하셔서여?."
에구 잔뜩 겁먹은 눈으로 차를 출발하시는 요양사선생님을 바라보자니 맘이 짠하다.하루종일 치매할무니들 보살피시는 것도 힘드실텐데 바깥에서 맘까지 상하시니. 내가
좀 더 일찍 나가 있을걸. 요며칠 감기 때문에 좀 힘든데다 오늘은 또 병원서 링거까지 맞느라 시간을 지체해서 심계옥엄니 마중시간에 바투나왔더니 이런 사단이 났다.





죄송스런 마음에 맘불편해서 들어오는데 청소할머니가 주차장에서 종이박스를 챙기고 계셨다. 할머니 옆에는 물류센터 차가 서있고 마음씨 좋아보이는 청년이 차안에서 많은 양의 박스를 꺼내 할머니 리어카에 실어주고 있었다.
할머니~~~를 부르며
가까이 다가가보니 할머니가 나를 보자마자 엄마는? 하시며 심계옥엄니부터 찾으신다.
엄마는 저기에 하고 저만치 걸어가시는 심계옥엄니를 가리키니
어르신~~하고 할머니가 심계옥엄니를 부르니 심계옥엄니! 잘 못들으신다.
그러자 청소부할머니가 하던일을 멈추고 심계옥엄니에게 달려가셔서 심계옥엄니 두손을 얼싸 잡으시며 반가와하신다.
에구 건강하셔서 내가 다 좋네. 하시며 많이 좋아라하시는 청소할머니.
심계옥엄니 뇌경색으로 쓰러지셔서 꼼짝도 못하시는 것부터 재활치료받으시며 조금씩 걷는 것까지 그 일련의 과정을 모두 지켜보셨던 청소할머니.
지금은 아파트청소를 하지않으시지만 워낙 바지런하시고 선하셔서 관리소에서 밥을 하고 계신다.
청소할머니가 심계옥엄니와 만나 반가운 인사를 나누는 동안 나도 택배아저씨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아저씨"
"뭘요?"
"우리 할머니 오늘 운수좋은 날로 만들어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악하지도 선하지도 않다. 그저 다를뿐...
감사한 분께는 감사하고 서운한분께는 그러려니 하자. 사람들이 어떠한 행동을 할 때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하고 이해를 하자.
울할무니들이 늘 하시는 말씀처럼.
"모다 선하믄 그것이 사람이간? 신이지."
서운하믄 서운해한 대로 좋으믄 좋은 대로 그리 살믄 되는것이지? 이리 말씀하셨던 울 할무니들처럼 그리 생각하자.
그런 생각을 하며 청소할머니가 박스챙기는걸 쳐다보고있는데 심계옥엄니가 한 말씀 하신다.
"참 고맙네."
"그러게 젊은사람이."
"삼천원주고 샀대."
"거저주는거 아니고? 그걸 또 뭘 받냐?"
삼천원주고 박스를 팔았다고? 하는 내말에 심계옥엄니 빙그레 웃으신다.
"그 할머니한텐 삼천 원도 큰데...
돈주고 팔았겠냐?"
심계옥엄니가 그런게 아니다 하시며 말씀을 이어가신다.
"내 물어보진 않았지만 모르긴 몰라도 할머니가 거저받기 미안하니까 삼천원이라도 주셨을거야."
 
"저짝 살때 내가 물쓰레기 버리면 쫒아와서 자기가 버리겠다고 달라고?
박스 손질하다가... 쫒아오는거 봐..
아구... 사람이 아주.. 친절해...첨봤네...
은젠가... 한번 보고.. 오늘 ... 첨 봤네...
내가 나가질 않으니까 많이 말랐네.. 건강은 헌가봐... 다행이지... 그래도... 저 무건걸... 끌고 다니지...
내일도 그렇게 허기... 힘들겠다 건성으로 적당히 하지... 왠힘을 다해서 저리 하는고..."
 
"할무니? 저 청년한테 박스 사셨어요?"
"사기는 뭘 사...담배값도 안되는걸... 새해 들어 수지 맞았지 뭐야 이 많은걸 단돈 삼천원에..."
"그니까요... 울할무니 올해 좋은 일 많이 생기시겠어여~"
 
사람은 제각기 제 양대로 제 성정대로 산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조금씩만 다른 사람들을 위해 따뜻한 마음 한 조각만 나눠주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해본다. 많이도 말고 아주 쪼꼼만. 삼천 원의 행복. 누구는 그깐 박스 거저줘도 되겠구만. 할 수도 있겠으나 청소할머니의 성정상 거저받으시는건 부담스러워하시니 조금이라도 성의표시를 하시고 싶으셨을거다.
 
"할무니~"
"응? 왜?~"
"추워요~ 팔 내리고 하세요."
"나는 더워. 얼릉 들어가. 아주 감기가 꽉 들었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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