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을 적절히 통제하는 지혜"
상태바
"탐욕을 적절히 통제하는 지혜"
  • 최원영
  • 승인 2017.02.20 06: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1) 뼈다귀를 던져보면


 

풍경 #37. “뼈다귀를 던져라!”

 

인간의 욕망은 어디까지일까요? 이곳저곳에서 나라 안 상황을 두고 제각각 주장하는 바는 다르지만, 한 가지 같은 점은 ‘국민을 위해서’입니다. 때로는 무엇이 옳은 것인지 혼란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그들이 내세우는 명분이란 늘 ‘국민을 위한 것’이었지만, 세월이 지나서 돌아보면 거기엔 어김없이 그들의 ‘탐욕’이 드러나곤 했으니 말입니다.


진나라 소양왕이 책사인 범저에게 의견을 구했습니다.

“천하의 인재들이 합종을 꾀하고 있다고 하오. 지금 조나라에서 전국 각지에서 모인 인재들이 우리를 공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소이까?”


범저는 태연히 말합니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그들의 합종을 깰 묘책이 있으니까요. 사실 우리나라가 그들에게 원한을 산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조나라 편에 선 것은 저희들이 잘못을 해서가 아니라, 그들 모두가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위해 조나라에 모인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요, 자세히 말씀해 보시구려.”

“개들이 마당에 있을 때를 보시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어느 놈은 누워 있기도 하고, 어느 녀석은 이러 저리 뛰어다니기도 할 겁니다. 그러나 그곳에 뼈다귀 하나를 던져보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평화롭게 쉬고 있던 녀석들은 뼈다귀를 차지하기 위해 큰 싸움을 벌이게 됩니다. 바로 자신만이 그것을 먹겠다는 탐욕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뼈다귀를 던져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소양왕은 범저에게 금 5천 냥을 주고, 무안이라는 곳에서 큰 연회를 열게 했습니다. 그리고 조나라의 합종에 참가한 인재들을 그곳에 초대하고, 금을 뿌렸습니다. 그러자 3천 냥도 채 뿌리지 않았는데도, 서로 갖겠다고 싸우기 시작했고, 그 결과 합종은 깨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지혜로운 사람들은 탐욕이 없어서가 아니라 수시로 올라오는 탐욕을 적절하게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38. “얘는 내 아들이야!”

 

몇 해 전에 방송에서 재밌는 실험을 본 적이 있습니다. 동남아 청년이 길을 묻는데, 영어를 모르는 시민들은 손을 저으며 그냥 지나쳤지만, 백인 청년이 물었을 때는 손짓발짓으로 도와주려고 했던 장면이었습니다. 이 실험은 바로 우리의 ‘편견’에 대한 실험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요? 우리 자신들은 편견이 없다고 말은 하지만, 어쩌면 우리도 의식하지 못한 채 우리가 갖고 있던 편견이 조종하는 대로 행동하고 있지는 않았을까요?


어느 심리학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야간에 벌어진 야구경기를 보고, 귀가하던 중에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고, 아들은 중상을 입어 수술실에 누워 있습니다. 잠시 후 외과의사가 들어오더니, 아들의 차트를 보면서 말합니다. ‘난, 이 환자 수술을 못하겠어. 얘는 내 아들이야.’”


사람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했을까요? ‘아버지가 둘인가?’라고 여길 지도 모르겠습니다. 피를 흘리며 심각한 부상을 입은 중환자의 수술을 하는 의사는 ‘남자이어야 한다’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러나 사실은 그 아들의 ‘어머니’가 외과 의사였던 것은 아닐까요?


이렇게 편견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곤 합니다. 비슷한 이야기가 또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대학의 수학과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합니다. 중간고사를 보기 직전에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내가 이 대학에서 온 이래로 3번 문제는 어느 학생도 풀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채점을 하면서 교수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3번 문제를 푼 학생이 한 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유를 알아보니까 그 학생은 시험 때 지각을 해서 교수님의 그 이야기를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편견은 이렇게도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또는 세상을 판단할 때에는 수시로 ‘혹시 이
것은 나의 편견은 아닐까?’라고 생각해보는 것이 분열과 갈등이 아닌 조화로운 관계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