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코알라와 앵무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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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코알라와 앵무새다!
  • 서진완
  • 승인 2017.05.10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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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해안선을 따라 하는 여행

서진완 인천대 교수(행정학)는 지난 2013년 1월 3일부터 2014년 1월 2일까지. 365일 간의 세계 일주를 하고 돌아왔다. 중·고등학생이던 두 아이와 아내까지. 온 가족이 함께 1년이란 시간을 붙어 있었다. '24시간 365일'을 꼬박 함께 여행하며 경험하고 느꼈던 감정들의 기록을 <인천in>의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여유로운 여행은 참 좋은데!


해안가에서 소라 채취하기! ⓒ 서진완

아이들과 해변으로 나갔다. 바람이 불어서 파도는 거세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파도가 발에 닿는 기분은 좋다. 바위가 있는 해변 끝지점으로 걸었다. 바위는 꽤 큰 규모로 자리 잡고 있었는데, 고동도 많고 성게도 눈에 보였다. “여기 소라가 있어요!” 바위 틈 사이 여기저기 소라가 보였다. 큰 게와 성게도 보였다. “집게가 있다면...” 도구가 있다면 마음껏 잡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빠, 여기에도 있어요!” 여기저기 소라를 찾아 바위를 뒤지고, 또 찾았다. 어느새 저녁을 준비해야할 시간이 되어 캠핑장으로 돌아가야 했다. 돌아가는 해변가에 한 무리의 캥거루를 만났다. 경계하는 듯 쳐다보았지만 우리가 지나가도 그냥 그대로 서 있다. 캠프밴 옆에 놀고 있는 캥거루는 우리와 함께 있는 것에 익숙한 것 같다. 이런 캠핑장은 호주에서만 가능할 것 이다. 


캠핑장에서의 여유로운 시간은 이번 호주 여행을 더욱 즐겁게 했다. ⓒ 서진완

저녁은 된장찌개에다 우리가 바닷가에서 직접 잡은 소라를 삶아서 초고추장과 함께 먹었다. 좋아 보이는 곳에서 멈추고 쉴 수 있는 이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것은 이번 호주여행에서 우리가 기대했던 것이기도 하다. 아이들도 여유로운 캠핑장에서의 생활이 좋다고 한다. 앞으로도 무리하지 않고 마음껏 즐기자고 했다. "그런데 똥이 너무 많아요!" 작은아이의 지적에 다함께 웃는다. “조심히 다녀라!” 이런 불편함은 감수할 만하다. 

“무슨 일이예요?” 내비게이션이 고장났다. 오는 길에 몇차례 길을 제대로 찾지 못했는데, 어느 순간 내비게이션이 아예 작동하지 않는다. 종이지도를 보면서 뉴사우스웨일즈주를 지나 빅토리아(Victoria)주로 들어섰다. 옛날에는 내비게이션 없이 이렇게 지도만으로도 길을 찾는데 어려움이 없었는데, 이제는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불안이 가중되고 바보가 되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운전을 하면서 긴장할 수밖에 없다. 

내비게이션을 교환하기로 한 멜버른(Melbourne)까지 지도에 의지해서 가야 한다. 작은아이는 내 옆 좌석에 앉아서 지도도 봐주고, 내 말 벗이 되어주었다. “속도를 줄이세요!” 제한속도를 넘기면 어김없이 잔소리를 한다. “알았어요!” 이런 잔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규정 속도를 지키는 수밖에 없다. 빅토리아주로 들어와서 첫 번째 만난 마을 안내센터에 이 지역 지도와 캠핑장 정보를 구했다. 

작은 아이에게 내비게이션을 다시 켜보게 했더니 작동이 되는 듯하더니, 다시 멈췄다. “그냥 제가 지도보고 알려드릴게요!” 결국 아이는 지도를 다시 보았고, 내비게이션 없이 운전을 해야 했다. 아이가 심심했는지 내비게이션을 만졌더니, 다시 작동했다. 물론 오래가지 않아 작동을 멈췄다. 이후에도 몇차례 작은아이 손에만 가면 내비게이션이 작동하곤 했다. 지도에 표시해준 캠핑장을 찾지 못하고, 대신 근처에 보이는 캠핑장으로 들어갔다. 무료 인터넷에 무료 샤워시설을 갖춘 데다 가격도 다른 곳보다 훨씬 저렴했다. 전국적인 체인망을 갖춘 캠핑장보다 더 좋다. 잔디밭 위에 주차를 하고, 의자를 꺼내 앉았다. 바람도 그치고 햇살까지 좋다. “내일도 제가 지도를 봐드릴게요!”
 


계속 먹통이 되는 네비게이션 때문에, 우린 결국 차를 바꿔야 했다. 좋은건가? ⓒ 서진완

내비게이션을 다시 켰다. 여전히 먹통이다. 멜버른 근처에 가서 다시 시도해보기로 하고 꺼버렸다. 멜버른까지 가는 큰 도로를 머리에 담고, 작은아이에게 지도를 봐달라고 했다. 멜버른 근처까지는 이정표만 보고 가면 된다. 그런데 멜버른으로 가까워질수록 도로가 넓어지고 복잡해지는데, 차량까지 많아져 긴장하면서 운전을 해야만 했다. 멜버른 권역으로 들어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작은아이에게 내비게이션을 다시 한 번 작동시키도록 했다. 

"아빠! 되요!" 캠프밴 서비스센터까지 30Km 정도를 남겨두고 이제부터는 고속도로에서 출구를 빠져나가야할 시점인데 정말 다행이다. 작은아이는 내비게이션을 손에 들고 마치 애완동물을 다루듯 말을 잘 들으라고 한다. “제 말을 잘 듣네요!” 이번에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작동이 멈추지 않았다. 멜버른 사무소에서 내비게이션은 물론 냉장고 상태와 그동안 불편하게 느꼈던 부분을 모두 설명했더니 아예 다른 차량으로 교체 해주었다. 멜버른에서 새 차량으로 새롭게 출발한다. 전화위복인 셈인가!


여행 중 가장 많이 만난 ‘독일 사람들’ 

여행을 하면서 많은 외국인을 만났지만, 그 중에서 독일인이 가장 많았다. 우리가 주차한 캠프밴 옆에 소형차를 몰고 텐트를 치는 사람과 인사를 나누었다. 역시 독일인 부부다.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공구를 만드는 장인으로 지난 11개월 동안 호주에서만 머물렀고, 한 달 후 독일로 돌아간다고 한다. 호주가 좋아서 지난 10년동안 여행비용을 모았고, 여기에서 자동차와 텐트를 사서 여행을 했다고 한다. 자신이 사용하던 여분의 텐트가 있다며, 사용하라고 하나 주었다. 일단 고맙게 받았다. 

"저기도 독일에서 왔다고 하던데요!" 부엌에 다녀온 큰아이가 말했다. 부엌에 모여 있던 여러 명의 학생들도 역시 독일에서 왔다고 했다. 뉴질랜드에서 만난 Michell부부도 미국인이지만 독일계였고, 오늘 인사한 부부도 독일인이고 큰아이가 본 학생들도 독일인들이다. 남미에서 도움을 받았던 세자매 또한 독일인이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우연치곤 너무나 많은 독일인들을 만났다. 

독일이라는 나라가 강한 이유는 국제화된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일 것 같다. 지금까지 여행 중에 영어를 못하는 독일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이렇게 긴 시간을 여행하면서 느끼는 것은 급하게 쫓기듯 여행했던 우리들의 모습을 그들에게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한 결 같이 긴 호흡을 갖고 여유롭게 다닌다. 그런 모습이 참 부럽고 보기 좋다. 

오늘은 그런 점에서 마음에 드는 오후다. 의자에 앉아서 하늘도 보고 푸른 잔디도 보고, 그리고 책도 읽고 잠시 눈을 감기도 한다. 이러기 위해 여행을 시작했고, 그동안 여유롭게 다니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 보다 여전히 바쁘게만 다녔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렇게 앉아있는 내 자신에게 스스로 말해본다. “잘 하고 있어!” 


여행을 하는 이유

어제 밤 작은아이가 오빠 때문에 화가 많이 났는데, 다행히 둘이 화해를 한 모양이다. 이번에도 언제 싸웠나 싶게 둘은 없으면 안 되는 사이가 된다. 큰 소리를 내며 화를 삼키지 못하다 결국 울면서 나를 찾았는데 말이다. "오빠가 사과 한 마디만 하면 될 텐데…” 예민한 편이고, 남에 대한 배려를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은아이에게 오빠는 항상 놀리기만 하고 사과할 줄 모르는 존재다. 덕분에 작은아이랑 얘기하면서 캠프장을 한 바퀴 돌았다. 산책 아닌 산책이다. "지혜롭게 대해보렴!" 놀리는 오빠를 대하는 방식을 조금 바꿔 보도록 권한다. “네” 대답은 하지만, 작은 아이에게 그것이 쉽지 않다.


멜베른대학에서 열린 국제학회에 참석한 동료교수들(인천대)을 만났다. ⓒ 서진완
 
느긋하게 캠핑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멜버른 시내 구경에 나섰다. 시내 중심가는 고층빌딩이 들어서 있지만 거리는 깨끗했고, 고풍스런 건물들도 눈에 들어온다. 트램이 다니는 길을 따라 천천히 시내를 구경했다. 오후에는 멜베른대학에서 열린 국제학회에 참석한 동료교수들을 만났다. "정말 맛있는데요!" 작은아이는 런던에서 먹었던 Fish & Chips와 비교하면서 좋아한다. 남이 해준 요리를 오랜 만에 먹은 아내도 만족했다. 레스토랑을 나서자 바람이 심하게 불고 빗방울까지 떨어지기 시작했다. 동료교수들과 헤어졌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에서의 석양 ⓒ 서진완

멜버른을 떠나 남쪽으로 가면서 작은아이가 추천한 캠핑장을 찾았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Great Ocean Road)가 시작되는 이곳 캠핑장은 새소리가 요란하면서도 한적한 곳이다. 아이들은 캠프밴 지붕에 설치된 텐트로 올라갔다. 빗줄기가 세졌다. 비가 들이치면 빗물이 들어올 수도 있기에 걱정이 되어서 몇 차례 물어보았지만 큰아이는 괜찮다고 한다. “잘 자라~” “안녕히 주무세요!”

두두둑~~ 두두둑 ~~ 빗소리 때문에 새벽에 눈을 떴다. 화장실에 가려는 아내에게 줄 우산을 찾았다. 커튼을 치고 밖을 내다보니 굵은 빗줄기가 그칠 줄 모르고 내린다. 아내가 화장실을 간 사이에 커튼을 치고, 침구를 정리했다. 지붕에 설치된 침대에는 빗물이 스며들었다고 한다. 오늘 오후에도 계속 비가 온다면 캐빈을 빌리거나 여의치 않으면 비좁더라도 함께 실내에서 자야할 것 같다. 

캠핑장을 떠나면서 근처에 있는 몰에 들렀다. 큰아이가 신던 샌들은 밑창이 뚫어졌고, 아내의 샌들도 새것으로 교체해야만 했다. 먼저 샌들을 구입하고, 각자 관심 있는 코너에서 구경했다. 나는 캠핑코너에서 필요한 물건을 보았다. 한국에서라면 이것도 사고 싶고 저것도 사고 싶은데, 지금은 여의치 않다. "아빠!" 큰아이는 옆에서 내 팔을 끌며, 자제를 요청한다. 이 녀석은 이제 나보다 더 이성적으로 판단한다. “알았어, 안살거야!” 


코알라와 앵무새의 천국에서 캠핑!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향하는 길에 해변에 들렀다. ⓒ 서진완

비가 세차게 내려서 가는 길 내내 걱정이 앞섰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로 접어들자, 멀리 해안선이 보이고 이어 절벽과 해변이 보인다. 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쉽게 걷힐 것 같지 않고 바다는 흐리게 보인다. 안내센터에 들러 그레이트 오션 로드에서 볼만한 곳을 소개받고 일기예보 정보를 알아보았다. “계속 비온데요!”

이번에도 작은아이에게 캠핑장 선택권을 주었다. 코알라가 많이 서식하는 곳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우리 모두 동의했다. 작은아이가 선택한 케넷강(Kennett River) 캠핑장은 해변도로 변에 있어서 찾기가 쉽다. 비가 오는데다 멋진 절경이 이어지는 해변도로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 가능한 천천히 달렸다. 점점 비가 그치면서 캠핑장 근처에 가까워지자 햇살까지 보인다. 

캠핑장에 차를 주차하자 더 이상 비가 오지 않을 만큼 하늘이 맑아졌다. 이곳에는 코알라는 물론 앵무새를 포함한 각종 새들이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고 다가온다고 했던 곳이다. “아빠, 이것 좀 보세요!” 차 문을 여는 순간 주변에 있던 새들이 우리에게 날아들었다. 



과자를 손에 쥐었더니 앵무새들이 우리에게 날아들었다. 작은아이는 내내 함박웃음이다. ⓒ 서진완

먹던 과자를 꺼내어 손에 들었더니 내 어깨 위에도, 작은아이의 머리와 어깨 위에도 날아들었다. 아내는 갑자기 덤벼드는 새들 때문에 놀라 기겁을 했지만 이곳 새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와 아이의 어깨와 손 위에 날아와 앉았다. 앵무새는 물론 이름 모를 새들이 서로 경쟁을 하면서 날아드는 모습에, 평소 앵무새를 키웠으면 했던 작은아이는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함박웃음을 보였다. 새들의 색깔 또한 너무나 화려하고 예쁘다. 이럴수가! 이곳은 정말 새들의 천국이다. 

주차한 캠핑장 주변은 유칼립투스 나무가 둘러싸고 있다. 이 나무 위에는 코알라가 있다고 했는데, 바로 눈앞에서 멧돼지 울음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내는 코알라가 나무 위에서 있다. 반갑고 또 반갑다. 제법 덩치가 크게 보이지만 무척이나 귀엽다. 사진에서 본 것과 똑같다. 

"여기도 있어요!" 우리 모두 코알라를 이렇게 캠핑장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하늘에서 햇살이 비치면서 주변이 따뜻해졌다. 캠프밴의 지붕을 활짝 열어 빗물에 젖은 시트를 말리고, 수건도 널었다. 그리고 짐들을 밖으로 꺼내 정리했다. 

캠핑장 앞에는 해변이 있다. 며칠 전 소라를 채취했던 기억 때문에 다시 바위가 있는 곳을 찾아 나섰다. 이번에는 소라 대신 바위에 붙어 있는 조가비를 많이 채취했다. 꽤 큰 것들이 많았지만 파도가 점점 세져서 작은아이를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말려야 했다. 

조가비는 된장국을 끓여 먹을 정도만 채취했다. 아내와 작은아이는 이렇게 바닷가에서 뭔가를 채취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파도가 높아지고 바닷물이 많이 들어와서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작은아이와 조가비를 다듬었다. 저녁은 된장국이다. 


유칼립투스나무에 앉아있는 코알라와 그런 코알라를 올려다보고 있는 아이들 ⓒ 서진완

새들이 캠프밴 주위에 가득 앉아있다. 아내는 가끔 아내 어깨 위에 앉는 앵무새들 때문에 다시 한 번 기겁을 했다. 파도소리와 새소리가 들리고, 코알라는 나무 위에, 새는 우리와 함께  이렇게 있다. 아내와 함께 주변을 산책하면서 코알라를 찾았다. 유칼립투스나무 마다 코알라가 있다. 코알라는 동작이 느리고 꼼짝하지 않고 있는 터라 움직이는 모습을 보려면 인내력이 필요하다. 더 이상 세는 것을 포기했다. 모두 높은 나무 위에 있어서 자세하게 얼굴을 확인할 수가 없다. 

이번에는 낮은 가지위에 앉아있는 코알라를 발견했다. 바로 눈앞에서 얼굴을 마주했다. 얼굴은 온순하게 생겼는데, 발톱은 나무 위에서 지내기에 적합하게 날카롭다. 통통하게 생긴 코알라는 곰처럼 생겼지만 울음소리는 멧돼지 소리처럼 우렁차다. 캠핑장을 한바퀴 돌고 캠프밴으로 돌아왔다. 어둠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지붕 위로 올라가고 아내와 나는 의자를 걷고, 차안으로 들어갔다.  

불빛 속에서는 눈이 침침해져서 오랫동안 책을 읽을 수는 없다. 그러면 아내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다. 이렇게 여유가 있어서 좋다. 이렇게 하고 싶어서 여행을 한 것이기에, 이런 여행에 대한 그리움은 오래 남을 것 같다.


모기와의 전쟁!

빗소리에 잠을 깼다. 밖은 칠흙같이 어두운데, 빗소리만 크게 들렸다. 그리고 어디에선가 바람이 많이 들어오는 것 같기도 했다. 추울 것 같아서 아내에게 침낭을 꺼내주었는데, 아내는 계속 뒤척거렸다. 차 안에 들어온 모기가 많아서 어제 저녁 모두 소탕하고 나서야 잠을 청할 수 있었는데, 발끝 부분이 계속 가렵다. 손에도 여러 군데 물렸다. 그래서 결국 일어나고야 말았다. 

아내도 모기 때문에 잠을 자지 못했다. 새벽 2시 50분! 창틀에 둔 안경을 찾으면서 창문을 닫지 않고 잔 사실을 알았다. “이런!” 점심 때 식사를 하면서 열어두었는데, 지금까지 닫지 않고 있었다니, 그것도 비까지 내리는데 말이다. 서둘러 창문을 닫았다. 

이곳에는 모기가 유난히 많아 밤새 둘이서 차 안으로 들어오는 모기와 사투를 벌였던 것을 생각하니 우린 서로 얼굴을 보면서 황당해할 수밖에 없다. 한 번 깬 잠을 다시 자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아내는 컴퓨터를 꺼내 어제 저녁 졸음이 와서 못다 한 작업을 시작했다. 새벽인데다 비까지 내려 싸늘한 느낌이 든다. 차에 시동을 켰다. 그리고 온도를 높이고 히터를 틀었다. 


해안선을 따라 아름다운 경치를 만나다


12사도 해변 ⓒ 서진완

“신기해요!” 햇볕은 쨍쨍 내리쬐는데 비가 내린다. 해안선을 따라 천천히 달렸다. 뒤에 따라오는 차가 있으면 갓길에 차를 잠시 세워서 뒤차를 먼저 보내주기도 했다. 해안선을 따라 해변과 절벽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곳을 빠르게 달릴 이유가 없다. 이곳 해안선을 따라 벌써 4일째를 보내고 있다. 평상시의 여행패턴이라면 하루 만에 그레이트 오션 로드 전체를 쏜살같이 달려서 보고 돌아왔을 텐데 말이다. 여유가 있다는 것이 이래서 좋다. 아폴로만(Apollo Bay)을 지나 남쪽 등대까지 다녀왔다.

포트 캠벨(Port Campbell)에 있는 캠프장에서 이틀을 더 머물면서 12사도 바위(Twelve Apostles)를 찾았다. 이곳은 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백미라고 했는데 과연 엄청난 규모의 해안절벽과 깎아내린 듯한 암석이 서쪽으로 지는 태양에 반사되면서 해변의 백사장과 푸른 바닷물과 함께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바람이 세게 불어 모자가 날릴 정도였지만 절벽 아래로 연결된 계단을 따라 조심조심 해변까지 내려갔다. 이 거대한 바위들 전체를 볼 수 있는 곳에 이르자 이번에는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바람이 세졌다. 눈을 뜨고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의 바람이 불 때는 잠시 어딘가 잡고 있어야할 것 같다. 이런 기암괴석을 만든 것이 바로 이런 냉혹한 바다와 세찬 바람이었을 것이다. 바람이 잦아들지 않아 더 이상 그곳에서 머무르는 것은 불가능했다. 해변을 달리는 동안에도 차체가 흔들릴 정도로 바람이 계속 불었다. 

새벽에 다시 빗소리를 들었다. 지붕에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니 이번에는 폭우 수준인지라 아이들이 걱정되었다. 주위가 밝아지고, 빗줄기가 약해지기를 기다려 아이들을 깨웠다. 캠프밴 지붕 위에 있는 텐트 문을 열면, 바로 비가 들이쳐서 내부가 다 젖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깬 상태에서 비가 잠시 그치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내부는 생각만큼 많이 젖지 않았다. 


마스터만 ⓒ 서진완

포트 캠벨을 지나면 12사도 바위와 또 다른 멋진 절벽 해안을 볼 수 있는 마터스만(Bay of Martyrs)과 아일랜드만(Bay of Islands)을 연이어 만나게 된다. 바람이 어제보다 더 강하게 불어 먼 바다에서 넘실대는 파도가 보일 정도다. 절벽에 부딪혀 만드는 하얀 포말은 주변의 경치와 어울려 오히려 더 멋있게 보인다. 이곳 주변의 나무들이 낮고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을 보면 항상 이렇게 바람이 심한가 보다. 

"다녀오세요!" 큰아이는 경치가 좋다고 함께 가자는 엄마의 말에도 불구하고 차에서 내리기 싫어했다. 바람이 너무 부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그래도 이 좋은 절경을 놓치면 안 될 것 같아서 억지로 데리고 가야 한다. “보지 않았다면 후회했겠지?” 가장 많이 알려진 12사도 바위보다도 더 멋진 풍경이 곳곳에 널려있다. 


조금씩 더 조심해야 할 것들


Narang 캠핑장에서 본 석양. 긴 여행의 끝이 보이는 어느 날. 가족 모두가 조금씩 더 조심하고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서진완

창문을 열자 여전히 바람 소리가 심상찮게 들리고 하늘은 다시 비라도 내릴 기세로 흐려져 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짐정리를 한 다음 화장실을 갔다 왔는데, 아내가 잔뜩 화가 나 있다. 아이들이 서로 욕을 한 모양이다. 몇 차례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큰아이는 동생에게 함부로 대한 것 같고, 작은아이는 오빠 말을 의도적으로 모른 척 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내 또한 평소보다 아이들에 행동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엄마가 잠시 밖으로 나간 사이에 아이들을 불렀다. 그리고 야단을 쳤다. 그동안 몇 차례 비슷한 일이 있었지만 웃고 넘어갔는데, 오늘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아이는 동생을 놀리는 것도 그렇고, 이제는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제법 컸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말을 함부로 할 때가 있어서 따끔하게 그 점을 다시 지적할 필요가 있었다. 

아내 또한 한국으로 돌아가면 바로 다음 주에 병원 주치의를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심리적으로 불안했고 예민했던터라 평소보다 민감하게 아이들의 행동에 반응한 측면도 있다. 

조용히 짐을 정리했다. 그리고 캠핑장을 출발했다. 엄마도 아이들도 모두 아무말을 하지 않았다. 이럴 때는 나름대로 생각을 할 시간이 필요하다. 햇살이 가득 차안으로 들어와서 눈이 부셨다. 선바이저를 올렸다. 이젠 더 이상 비가 오진 않을 것 같다.

<정리 = 이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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