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손녀딸이 입혀줬어요. 그래서 입었지?"
상태바
"우리 손녀딸이 입혀줬어요. 그래서 입었지?"
  • 김인자
  • 승인 2017.05.09 07: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43) 엄니의 묻지마 팻션
 
"이거 어때?"
엄마~~~~~
 
긴 연휴 끝나고 심계옥엄니 오랜만에 사랑터 가시는 날 아침.
똑딱시계인 우리 심계옥엄니. 네시 반에 목욕시켜드리면 꽃단장 분단장하시고 아침 드시는 7시30분까지 새잠 드셔서 조금 더 주무시는데 오늘은 꽃단장 분단장이 끝나시고도 잠을 안 주무시던 심계옥엄니가 오늘 아침엔 사랑터 가실 시간까지 방안서 꼼짝을 안하신다. 주무시는거 같지는 않은데...
그리고 시간이 흘러 사랑터 가실 시간이 되어 심계옥엄니가 거실로 나오셨는데...
 
으아아~
울 심계옥엄니 입으신 옷이 저게 뭐야아?
어버이날 선물로 백화점 가서 연한 분홍색으로다가 디자인도 이뿌고 때깔도 참한 분홍색 니트옷을 사다 드렸는데... 내 분명히 어제밤에 낼 아침 사랑터 가실때 꼭 입고 가시라고 모자까지 세트로 챙겨서 머리맡에 걸어 두었는데... 오늘아침 심계옥엄니가 입고 나오신 옷은 내가 사준 이쁜 분홍색 니트옷이 아닌 사계절 옷을 겹겹히 껴입으신 묻지마패션.
울 심계옥엄니가 오늘 아침 오랜 시간 공들여 차려입고 나오신 옷은 색깔도 좋고 품이 낭낙해서 맘에 든다시며 봄이 시작될 때 부터 매일 사랑터에 입고 다니시던 빨간 체크 난방을 속에 입으시고 겉에는 분홍색 니트를 입으셨다. 모자는 한겨울에도 계속 쓰고 싶어하셨던, 내 친구 성아가 짜준 여름모자를 쓰셨다. 그런데 속에 입으신 빨간 난방은 길이가 겉에 입으신 니트보다 길어서 분홍니트 밖으로 보기싫게 길게 나왔고 바지는 겹바지를 입으셨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옷을 죄다 갖춰 입으신 심계옥엄니.
 
식탁에서 밥먹던 나와 큰놈은 동시에 얼굴을 마주보고 얼음이 되었다.
"엄마, 내가 사준 분홍색 조끼 니트는? 이 분홍 니트랑 세트라서 그걸 속에 입고 이걸 겉에 입어야 되는데..."
"세트가 뭐야? 나는 싫다.이 빨간 옷이 좋아. 품도 넉넉하니 크고... 입고 벗기도 좋고."
아이고 울엄니 싫다 소리 나오셨네. 심계옥엄니 아무리 말씀드려도 오늘은 저러고 사랑터에 가시겠구나.
"엄마! 옷 다시 입자."하며 일어서는 나를 큰 놈이 조용히 내손을 끌어다 앉힌다.
가만히 있으란 무언의 압력이다.
그러더니 큰놈은 할머니에게 다가가 봄햇볕처럼 따뜻하게 방실방실 웃으며 할머니 두손을 맞잡고 즈이 할머니에게 다정스레 말을 건넨다.
"할무니, 할무니, 우리 이쁜 할무니, 내가 한번 보까아~ 아이구 우리 할무니 이쁘게도 입으셨네."
"이뻐어?"
"응, 이뻐 할머니.근데 할무니 오늘은 더워서 이렇게 속에 긴 옷을 두개 꼅쳐 입으면 땀이 많이 날거 같은데 울 할무니 짧은 옷하고 같이 입어보까아?"
"싫다. 이 할미는 짧은 팔 안 입어."
"그치 우리 할무니는 짧은 팔 싫어하시지.
그러니까 겉에는 할무니가 좋아하는 긴팔옷 입고 속에는 민정이가 좋아하는 짧은 팔 입자. 어때 할무니?"
"우리 민정이가 좋아하는 거?"
"응 민정이가 좋아하는 거"
"우리 민정이가 짧은 걸 좋아해?"
"응, 할머니. 민정이는 할머니가 속에는 짧은 옷 입는거 좋아해."
 
이러믄서 즈이 할무니 옷을 벗기는 큰 놈
"아야, 아야"
"이런, 할무니 팔 아파?"
"응, 팔이 아파. 그래서 나는 품이 넓은게 좋아."
"엄마 들었지? 할무니는 품이 넓은게 좋으시대."
살랑살랑 즈이 할무니 비위를 맞추며 큰 놈이 니트옷을 벗기고 빨간 난방을 벗기니 초록색 니트가 속에서 또 나온다.
덥다고 땀을 흘리시면서 세상에나 옷을 몇 개를 입으신거야...
"할무니 이것도 벗자. 니트가 분홍색이라서 흰 면티를 입고 입으셔야 이뻐."
"싫다. 팔 아파. 안 비쳐. 괜찮아. 그냥 입어. 이거 민정이가 사준거야."
작년 어버이날 큰딸 민정이가 어버이날 선물로 할머니에게 사다준 초록색 면티. 빨강색, 분홍색 옷이 아니면 입지 않으시는 심계옥엄니가 민정이가 사온거라고 처음으로 입으신 초록색 옷. 그 옷을 메리아스처럼 사계절 내내 입고 계시는 울 심계옥엄니.
초록색이 색깔이 강해서 연분홍 니트 밖으로 색이 비치는데도 그냥 입으시겠단다.
흰면티를 속에 입고 분홍니트를 입으심 색깔이 확 살텐데 하며 마뜩치않아 하는 내게 큰 놈이 또 눈을 꿈벅한다.
가만히 있으라는 두번째 신호다.
 
알았다, 알았어. 가만히 있을께.
뭐라고 뭐라고 귓속말로 즈이 할무니 귀에 속삭거리던 큰 놈이 방에 들어가 할머니 옷을 갈아입혀 나왔는데 큰놈 손에 초록색 티가 들려져 있다.
속에 하얀 메리야스 입고 분홍 니트조끼 입고 겉에 연분홍 니트 입고 모자는 꽃모자 쓰고 목에는 심계옥엄니가 좋아하는 딸기 스카프 두르고 심계옥엄니 기분 좋게 사랑터 차 타러 가셨다.
 
"우와 어르신, 이쁜 새옷 입으셨네요."
"이뻐요? 빨간색이 아닌데?"
"아우, 이뻐요 어르신. 우리 심계옥어르신 분홍색도 아주 잘 어울리시네요.
모자도 이뿌시고 스카프도 예뿌시고 옷이랑 모자랑 스카 프랑 세 개가 아주 잘 어울리세요."
"우리 손녀딸이 입혀줬어요. 내가 그래서 입었지..."
"하하 잘하셨어요"
"진짜로다 선생님들 보기에 괜찮아요?"
"아, 그럼요 어르신.좋아하시는 빨강색도 입으시고 이렇게 잘 어울리시는 분홍색도 입으시고 이거저거 고루고루 다 입으셔요. 심계옥어르신은 피부가 고우셔서 어떤 색이든 다 잘 어울리세요."
다 잘 어울린다는 요양사선생님들 말에 기분좋게 사랑터가신 심계옥엄니를 배웅하고 집에 들어와 큰놈에게 물었다.
 
"딸~ 할머니가 어떻게 초록색 옷을 벗으셨어? 니가 사준거라고 절대 안 벗으시는데..,"
"아 그거? 내가 할머니 사랑터 가 계시는 동안 할무니 보고 싶으니까 초록색 옷 오늘 하루만 내가 가지고 있겠다고 했지."
"그랬더니 할머니가 순순히 벗어주셔?"
"응, 벗어주시던데."
"햐 니가 나보다 낫다야."
"그러게 엄마...
해님과 바람 동화알지.."
"해님과 바람?"
"응 쌩쌩 세찬 바람으로 할머니 옷을 벗기려고 하믄 할무니가 옷을 벗으시겠어요?
따뜻한 햇님의 마음으로 살랑살랑 할머니 마음을 녹여야지~~~"
그냐 ...
"거품 많이 내서 할머니 옷 빨리 빨아서 말려 드려야겠다~ 햇살 참 좋다~~~~~~"
할머니 옷을 들고 욕실로 들어간 큰 놈 욕실안에서 큰 소리로 외친다.
"기분이다~ 엄마옷도 하나줘. 내가 특별히 손빨래 해주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