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신도시의 자동차 경주, 그리고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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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신도시의 자동차 경주, 그리고 욕망
  • 양진채
  • 승인 2017.08.18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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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단편소설 <서킷이 열리면> / 신미송

<사진 = 이노션 월드와이드 제공>


송도신도시는 내게는 여전히 먼 공간이다. 나는 아직도 소위 텔레비전에 나오는 고층빌딩과 배를 타고 노는 수로를 가보지 못했다. 몇 번 송도신도시에 일이 있어 갔을 때에는 택시를 잡을 수 없어 한참을 발을 동동 굴러야 했던 기억이 앞선다. 넓고 깨끗하게 뻗은 큰 길에 서서 뭔가 비현실적인 황량함과 삭막함을 날렵한 선 사이로 봤다면 과장일까. 그 송도신도시에 자동차 경기장이 있다.

현대자동차와 인천도시공사는 송도국제업무지구에서 ‘코리아 스피드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이는 국내 유일의 도심 자동차 경주로 현대차는 도심 자동차 경주를 위해 이곳에 55억 원의 비용을 들여 도심 서킷(circuit) 시설을 갖추고, 2014년부터 매년 박진감 넘치는 레이싱과 함께 문화행사를 겸한 종합 모터쇼를 열어 볼거리를 제공해 왔던 것이다.

소설 <서킷이 열리면>은 그 자동차 경기장에서 레이서로 발돋움하려는 나에 대한 욕망을 그린 소설이다. <서킷이 열리면>은 인천 여성작가 6인이 쓴 [인천, 소설을 낳다]에 실린 단편소설이다.
 
소설 속 여주인공은 우연히 ‘당신’의 고양이를 돌보게 되면서 카레이서를 후원하는 ‘당신’을 통해 레이서로서의 삶을 새롭게 설계한다. ‘나’에게 송도는 어떤 곳이었을까.
 

당신이 사는 아파트는 외관이 독특했다. 푸른 물길을 연상시켰다.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공중부양을 한 것 같은 공중 도시에 내렸다. 귀가 울렸다. 높은 산에 올라갔을 때 같은 귀 울림이다. 부실했든 열악했든 내 몸에 익어 익숙한 상황을 벗어나면 거부반응이 일어난다.

 
처음 나는 그가 살고 있는 공간에 대해 불편해 한다. 나는 주류로서의 삶을 살아보지 못했다. 그런 내가 ‘당신’의 아파트에서 고양이를 돌보게 되면서 아파트 창을 통해 송도 신도시를 본다. 그때까지도 나는 ‘욕망’과 ‘자연질서의 균형’ 어느 쪽에도 편입되지 않는다.

 
인천대교, G타워 건물, 트라이 볼, 센트럴파크 공원 일부가 파노라마로 내려다보인다. 바다를 가로질러 자연을 정복한 다리와 녹색기후기금의 사무국이 들어와 있는 G타워는 욕망과 자연 질서의 균형 유지라는 모순의 조합이다. 상반된 욕구는 갈등을 불러올 텐데 나는 어느 쪽에 가까운 것일까. 생각에 잠겨 한참을 내려다 봤다.
 
그러나 송도신도시는 엄밀히 말하면 ‘욕망과 자연 질서의 균형 유지라는 모순의 조합’이라고 볼 수 없다. 송도신도시는 갯벌을 매립해 새운 도시고, 자연 역시 인공으로 조성된 곳이다. 자연을 갈아엎고, 그 위에 자연을 다시 만든 것이다. 그렇게 만든 고층 아파트에서 송도신도시를 내려다보는, 한 번도 주류사회에 편입해본 적이 없는, 다른 사람과 차단막을 치고 살았던 나의 감회는 어떤 것이었을까.
 
나는 내 욕망을 들여다본 당신으로 인해 카레이서의 길을 걷게 된다. ‘새벽부터 야간 잔업까지 꼬박 여름방학을 투자해 공장 알바 일을’ 하고 ‘운전학원 등록비를 벌’어 딴, 잠자던 운전면허증을 꺼내 든 것이다. 지독한 연습 끝에 질주의 본능을 느끼며 오기로라도 훈련에 매진한다.

 
첫 한 달 레이싱 연습은 장대한 서사 기록이다. 폐차 상태로 부셔먹은 차가 여러 대다. 그러니 가드레일 충돌 정도는 얌전한 사고다. 코스 이탈이 잦고 스핀도 빈번해 원인이 무엇 인지 드라이빙 분석을 했다. 마음만 급했다. 레이싱 카에 나를 적응해 한 몸이 되어야 하는데 일체까지 시간이 걸렸다. 기어 변속 연습도 수 백 수 천 번 끝에 감각을 익혔다. 드라이빙 복을 벗으면 안전벨트로 생긴 멍이 상체를 감고 있었다. 충돌 시 내 몸을 잡아준 흔적들이다. 샤워하다 푸르죽죽한 멍자국을 볼 때면 오기가 승천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당신’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나는 단단하게 지어진 건물들처럼 ‘당신’과의 관계가 든든해지길 바란다. ‘당신은 마지막 랩이다. 이기고 싶다. 아니 완주라도 하고 싶다. 당신과 대등한 사람으로 달리고 싶다.’고 욕망한다.

 
곡면 건물 내부에 받쳐주는 기둥이 없어도 서로를 의지해 서로의 힘이 맞물려 서로를 지탱해주는 트라이 볼 건물처럼 우리 관계도 역셀공법으로 든든해 졌어요. 한 공간으로 트여 시야를 가리지도 않고 소리를 차단하지도 않아요. 내가 멀리 있어도 보이지요. 당신이 멀리 있어도 당신 목소리 잘 들려요.
 


그리고 레이싱에 도전한다. 잠재되었던 질주본능을 깨우며, 나는 온 몸을 휘감는 짜릿함을 즐기며 레이싱 도전에 나선다. 욕망으로 편입하는 것이다.

 
당신 아파트다. 당신이 사는 동 항공장애표시등을 따라 헤어핀 코스를 돌았다. 액셀러레이터를 깊게 밟아 기분 좋은 상승으로 스피드를 올리고 군더더기 없는 코너링으로 유연하게 표시등을 돌아 급 하강 직선 코스의 스릴을 즐겼다. 지상으로 내려와 센트럴 파크 공원 물길 따라 곡선 트랙을 유영하고 아파트 지하 주차장 라인으로 진입해 주차 구역에 정확하게 안착했다. 멋진 드라이빙 코스다. 잘 달렸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다. 주인공은 무사히 레이싱을 마쳤다. 사고가 속출하고 포기자가 속출하는 광포한 레이싱 경기장에서 살아남은 것이다. 이제 그녀가 어떤 길을 가게 될지는 자명한 것 같다.

소설은 내가 어떻게 카레이서가 되는지, 실감나는 자동차 경주 연습, 대회 등을 엮으면서 ‘당신’으로 상징되는 신도시로의 편입을 꿈꾼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레이서로 서게 됐는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당신’의 전폭적인 지원과 응원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당신’은 욕망으로 대변되는 송도신도시 그 자체이다. 레이서가 되는 과정이 그의 도움으로 가능했다면 진정한 레이서를 발돋움하는 건 이제 자신의 몫이다.

자동차 경기장이 있던 자리는 오랫동안 매각이 진행되지 않았던 자리를 활용했던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최근 그 지역은 모두 매각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갯벌을 덮고 세워졌던 송도신도시의 레이싱 경기장도 조만간 다시 덮여 사라질지 모르겠다. 송도의 갯벌이 매립되면서 남루하던 삶들이 묻혔다. 더불어 추억도 묻혔다. 어떤 장소는 이제 흔적도 없이 변모해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할 장소가 되어버렸다.

감춰졌던 질주본능을 깨우고 스스로 스피드 전쟁터에 나를 보낸 ‘나’. 그녀가 어떻게든 살아남길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비단 나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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