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작고 사소한 일에 정성을 다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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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작고 사소한 일에 정성을 다하는 일
  • 최원영
  • 승인 2018.03.18 1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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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말발굽과 앵두



풍경 #76. 말발굽과 앵두
 
『리더의 칼』이란 책에 예수와 베드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가 베드로와 함께 길을 가다가 우연히 길가에 떨어진 쇠 말굽을 발견했습니다. 베드로에게 주우라고 했지만 허리를 굽히기 싫은 베드로가 못 들은 체 그냥 걸어갔습니다. 예수는 아무런 말이 없이 그것을 주워 주머니에 넣고는, 대장간으로 가서 세 푼을 받고 팔았습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약간의 앵두를 샀습니다.
 
얼마 후 그들은 황야를 가로지르게 되었습니다. 한참을 걷다가 예수는, 베드로가 갈증이 무척 심할 거라고 짐작하고는 옷소매에 감춰둔 앵두 한 알을 슬쩍 떨어뜨렸습니다. 목이 몹시 탔던 베드로는 자존심을 다 버리고 허리를 굽혀 모래 위에 떨어진 앵두를 주워 먹었습니다. 또 한참을 가다가 앵두를 떨어뜨렸고, 그때마다 베드로는 주워 먹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예수는 껄껄껄 웃으며 말했습니다.
“네가 맨 처음에 허리를 한번 굽혔더라면 지금처럼 끝없이 굽실거릴 필요가 없지 않았겠느냐? 이렇게 작은 일을 하지 않으면 더 작은 일 때문에 고생하게 된다.”
 
그렇습니다. 행복한 삶이란 아주 작고 사소한 일에 정성을 다하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지금 우리들 눈앞에 보이는 사람, 지금 우리가 해야 하고 있는 일상의 무료한 일들, 그리고 지금 우리가 해결해야 할 온갖 고민거리들을 정성껏 마음을 내어주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지혜가 아닐까 싶습니다.
 
 

풍경 #77. 거꾸로 살자
 
지인이 문자로 긴 글을 보내주었습니다. ‘삶이란?’이란 제목의 글이었는데요. 참 흥미로웠습니다. 일리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신이 세상을 창조할 때의 일입니다.
첫째 날은 개를 만들어놓고는 이렇게 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내가 너에게 20년 동안의 삶을 줄 테니, 살아 있는 동안 사람들을 위해 대문 앞에서 온종일 짖어라.”라고요.
개는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20년 동안이나 짖어야 하는 자신의 삶이 무척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여기고는 자신이 받은 수명 중에서 10년을 신에게 반납해버렸습니다.
 
둘째 날은 원숭이를 만들어놓고는 그에게도 이런 명령을 내렸습니다.
“너에게도 20년을 줄 테니 너도 사람들을 위해 기쁨을 주고 또 묘기도 부려라.”
원숭이 역시도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사람들을 위한 삶은 의미가 없다고 여기고는 10년을 반납했습니다.
 
셋째 날은 젖소를 만들고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습니다.
“너에게는 60년을 줄 테니, 사람들을 위해 수고하고 새끼도 낳고, 또 매일 우유를 주거라.”
소 역시도 그렇게 힘든 삶을 60년씩이나 살기 싫다면서 40년을 반납했습니다.
 
마지막 날은 사람을 만들어놓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에겐 20년을 줄 테니, 먹고 자고 놀고 결혼하고 즐기기만 하여라.”
사람은 그렇게 살기에 20년은 너무 짧은 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신에게 개와 원숭이와 젖소가 반납한 시간까지 달라고 청했습니다. 신은 허락했지요.
 
이제 다른 동물들의 수명까지 거머쥔 사람들의 삶을 되짚어볼까요?
태어나 20년 동안은 신의 명령대로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고 재밌게 놀며 지냅니다. 모든 것을 부모님들이 챙겨주실 테니까요.
그러나 결혼 후 40년 동안의 삶은 젖소에게 갈 40년이었기에, 소처럼 힘든 삶을 살아갑니다. 아이들을 키우고, 직장생활에서 고된 하루하루를 보내면 말입니다.
이제 아이들도 가정을 꾸려서 떨어져나가고, 나이도 60이 된 부부는 명절이나 되어야 방문하는 어린 손자들의 웃음을 보려고 마치 원숭이가 재롱을 피우듯 손자들 앞에서 묘기를 부립니다.
나이가 70이 넘은 지금은 시도 때도 없이 아무에게나 고함을 칩니다. 개가 대문 앞에서 낯모를 사람들을 향해 소리치는 것처럼 말입니다.
 
왠지 웃음이 나오지만 씁쓸한 생각도 듭니다. 사는 게 뭔지, 라는 말이 툭 튀어나올 법도 합니다. 그러나 만약 삶이 이렇다면, 우리는 저 말과는 거꾸로 살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십대까지는 부모가 먹여주고 재워주더라도 자신의 미래를 위해 땀을 흘리며 준비하고, 그 이후의 40년은 자녀와 가족과 회사를 위해 일하는 것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면 어떨까요. 그 이후의 원숭이가 준 십년은 손자들에게 재롱을 떤다는 생각을 버리고, 오히려 손자들의 친구가 되어준다고 여기면 좋겠지요.
그리고 나머지 개가 준 10년 동안의 삶은 ‘너’를 향해, ‘세상’을 향해 비난하며 원망과 분노로 사는 대신에, 오히려 너와 세상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면서 살면 어떨까 싶습니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모든 것들과 벗이 되어 사는 삶, 비가 오면 내가 비가 되고, 눈이 오면 내가 눈이 되어 함박웃음을 지을 수 있는 삶, 이런 삶이 행복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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