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룽지 하나 제대로 못 삼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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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룽지 하나 제대로 못 삼키니..."
  • 김인자
  • 승인 2018.04.17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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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119로 실려간 엄니

"엄니, 오늘 하루 사랑터가지말고 집에서 쉬시는게 어때?"
"쉬라고? 어제도 셨고 그저께도 셨고 굉일이라고 실컷 셨는데 뭘 또 쉬라냐?"
"엄니 아프시잖여."
"아프긴 머시 아파? 이제 안 아파."
"안아프기는? 엄니,이제 누룽지 드시지마여."
"많이 놀랬냐? 미안허다. 내가 얼릉 죽어야 니가 좀 편할턴데.
늙으믄 얼릉 지갈길들 가야는데... 맘대로 가지도 못하고 이렇게 주접을 떨고 있으니."
"엄마아!?"


지난 토요일 저녁. 심계옥엄니가 부대찌개가 드시고 싶다셔서 대파 많이 넣고 좋아하시는 햄도 많이 넣어서 맵지도 짜지도 않게 맛있게 끓여서 드렸다. 저녁 잘 잡숫고 치매센터엘 가지 않으니 하루가 참 지루하고 길다시며 주무신다고 들어가시길래 잠자리 봐드리고 나도 늦은 저녁밥을 먹으려고 막 밥 한 숟갈 입에 넣으려는데 심계옥엄니 방에서 쿵하는 소리가 났다.
너무 놀라 엄니방으로 뛰어가보니 엄니가 방문앞에 쓰러져 계셨다.
분명히 자리에 누우신거 봤고 침대맡에 자리끼 갖다 놓고 안녕히 주무시라고 인사까지 하고 나왔는데... 방문앞에 쓰러져 계신 엄니를 보는 순간 온 몸이 덜덜덜 떨렸다.
어떻게 119를 불렀는지 엄니를 어떻게 119로 모셨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난다.
어지럽게 웽웽거리며 빨간 불을 내뿜는 119 불빛과 눈이 똥그래져서 놀라서 경비실에서 뛰어나오신 경비반장할아버지의 걱정어린 눈빛이 지금에서야 생각이 난다. 119안에서 엄마, 엄마를 얼마나 불렀는지 모른다. 이대로 끝일까봐 다시는 우리 엄마를 못 보게 될까봐 너무 무서워서 아래턱이 덜덜 떨렸다. 그러나 아무리 엄마, 엄마 불러도 눈도 뜨지 못한 채로 으응? 만 하시는 엄니를 보니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뻐근하게 아파왔다. 다행히 심계옥엄니는 병원에 도착하기전 119차 안에서 의식이 돌아오셨다.


침대에 누운 채로 심계옥엄니가 검사실로 들어가시고 그제서야 난 신발도 못신고 맨발로 왔다는 걸 알았다. 지하 매점에 내려가 슬리퍼를 사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발을 닦으며 소리를 죽여가며 울었다. 이런 일 한 두 번 겪는 것도 아닌데 이제는 내성이 생길 만도 한데 여전히 난 울엄니가 쓰러지실 때마다 머리속이 하애진다.
무섭고 슬프고 눈물나고 뭘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다.


"할무니, 여기가 어딘지 아세요?"
응급실 과장님이 엄니에게 물으신다.
"예..." 심계옥엄니가 조그마한 소리로 대답하신다.
"여기가 어디에요? 할무니?"
"병원이여."
"예, 할무니. 왜 쓰러지셨는지도 아세요?"
"그거슨 내가 모르지요."하며 심계옥엄니가 고개를 도리도리 하신다.


"할무니, 저녁 때 뭐 잡수셨어요?"
"밥먹었지요. 누룽지."
"누룽지?"
옆에서 듣고 있던 나는 깜짝 놀랐다.
누룽지라니?
새로 뜨신 밥해서 부대찌개랑 드렸는데 무슨 누룽지를 드셨다는거지?
"의사선생님, 늙으믄 목구녁도 늙는가요? 목구멍이라고 으째 바늘구녕 맹키로 좁아터져가지고 누룽지 하나 제대로 못 삼키니 이렇게 살아서 모합니까? 죽은 목숨이지요."
"할무니, 앞으로는 딱딱한 누룽지 같은거 드시믄 안되세요. 연세가 있으시니까 부드러운 음식으로 골라서 잘 드셔야해요."
그래도 엄니가 의사선생님 말씀에 짧게라도 대답하시는걸 보니 안심이 되었다. 몇 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지셨을 때는 저리 말씀도 못하셨는데.


늘 그렇듯 병원에 오면 심계옥엄니는 빨리 집에 가자고 성화를 하신다.
주사 좀 맞고 안정이 되면 그때 천천히 가시자해도 "모하러 내 집 놔두고 병원에 있냐? 나는 내자리에 가서 누울란다." 하시며 하두 성화를 하셔서 할 수 없이 금방 집에 모시고 온다.


"만약에 말이다. 내가 죽을라고 숨이 꼴깍꼴깍 넘어가믄 병원에 두지말고 집으로 데리고 와라. 그리고 말야. 더이상 어쩔 수 없다고 하믄 괜히 살린다고 이거저거 하지마라. 그냥 곱게 죽게 해줘."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
심계옥엄니가 내 손을 잡으며 말씀하셨다.
"그 얘길 지금 왜 해 엄마."
"사람일 어찌 될지 모르니까 생각난 김에 얘기해두는거다."
"그러니까 그 얘길 지금 왜 하냐구요."
엄마가 야속했다. 눈물이 자꾸만 흘렀다.
"울긴 왜 울어. 누가 지금 죽는대냐? 에구 나일 이만큼 먹었어도 당최 내가 맘이 안 놓이니. 내가 죽으믄 눈이라도 제대로 감을랑가 모르것다."


못들은 척 아니 안들리는 척 눈을 감고 잠자는 체했다.
눈물이 자꾸자꾸 흘렀다.
아직은 아니다. 울 심계옥엄니 돌아가실 때 되믄 나도 기꺼이 기쁘게 보내드릴거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엄니, 우리 어디가서 국수 한 그릇씩 먹고 들어가까?"
"왜? 배고프냐? 아이구 그르고 보니 나땜에 니가 아직 저녁도 못 먹었구나"
"배고파서가 아니구 엄니랑 국수가 먹구싶네."
"겨우 그래 국수가 먹구싶냐? 머 맛있는거 먹어라. 엄마가 사주께."
"그래여. 엄니가 쏴~~~~나 비싼 국수 먹어야지."
"그래라, 비싼거 먹어. 국수가 비싸봐야 얼마나 비싸겄냐?"
울 심계옥엄니가 빙그레 웃으신다.
울엄니가 웃으시니 비로소 팽팽했던 온몸의 긴장이 풀렸다. 울엄니의 저 환한 웃음 가까이에서 오래오래 지켜드리고 싶다. 가끔씩 심장이 툭 떨어질 정도로 놀랄 일이 생기더라도 신새벽에 울엄니 팔짱 끼고 국수 먹으러 가련다. 물론 엄니가 시원하게 쏘시는~~~~~비싼 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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