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춘 / 대한주택관리사협회 인천시회 회장
필자는 시골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는 시골에서 보냈고 그 이후 지금까지 도시에서 생활 해오고 있다. 시골과 도시의 경험이 공존하고 있고 주택관리사로 살아온 27년이라는 시간을 통해 체득한 경험으로 대한주택관리사협회 인천시협회장을 맡게 되어 공동주택 관리문화의 전문가로서의 관리자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주택관리사로서의 경험과 마을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를 요청하기에 수락했지만 글 쓰는 재주가 없어 고민이 많았다. 그동안의 경험 속에 마을과 아파트라는 공동주택이 일맥상통하는 게 있나 고민도 되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은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 마을이라고 판단되기에 마을의 범위를 확장해 보고자 몇 가지 경험담을 나누려 한다.
내가 태어난 곳은 전라남도 승주군 해룡면(현재 행정구역 개편으로 순천시로 편입)에서 4남 1여의 장남으로 태어나 초등학교 6학년까지 순천의 조그마한 시골에서 생활했다. 걸어서 1시간 정도 가면 남해가 보이는 정겨운 시골 마을이다. 동네 가구 수가 10가구 남짓한 전형적인 시골의 모습이다.
시골 마을 대부분이 그렇듯 집마다 수저가 몇 개인지 다 아는 사이였다. 그렇기에 사람이 죽거나 동네잔치가 있으면 모든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같이 행사를 치르곤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도시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80년대 후반 지금처럼 거대하고 화려한 도시는 아니었지만, 시골과 비교해서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 당시 도시에서도 경제적으로 가난했던 지역은 내가 어린 시절 자랐던 시골처럼 생활 방식이 비슷하였고, 도시였지만 그 속에 마을이 있었다고 회상한다. 그렇게 나의 도시 생활은 서울에서 7년 인천에서 현재 28년 차에 접어들고 있다.
그렇게 도시 생활에 적응해가며 대학교를 졸업하자 모두가 힘들었던 IMF라는 경제위기가 찾아왔다.
하루하루 실업자가 늘어났고 취업은 어려운 상황 속에 우연히 EBS 교육 방송에서 주택관리사란 자격증에 대한 설명이 나오고 있었다. 앞으로 대한민국은 아파트 공화국이 될 것이며 유망 자격증이 될 것이란 홍보를 보았고 그 이후 자격증을 취득 후 지금까지 공동주택 전문 관리자로서 생활하였다.
시골에서 10가구, 100가구, 200가구 규모의 마을 풍경과 도시의 마을 규모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일을 시작한 초창기(90년대 초)에는 저층이며 세대수가 적었지만 30년이 지난 지금은 고층에서 초고층으로 소규모(300~500세대) 단지에서 대규모 단지(1000~5000세대)로 많은 변화를 하였다.
이전의 상황으로 비교해본다면 시골의 10가구 정도의 마을들이 지금은 300배 500배 규모로 커져 마을을 이루는 것이다. 어떨 때는 이러한 변화가 번개보다 빠른 속도로 느껴진다.
아파트 공화국이란 이야기를 들어보았는가? 최근에 우리나라에 붙은 수식어다. 나는 이 단어를 듣고 한때 제일 가난했지만 놀랍도록 빠른 성장을 해온 우리나라에 달린 훈장의 느낌을 받는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장점 뒤에는 분명한 단점도 존재하기에 아파트 공화국인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문제들도 여럿 있다.
여러분들이 현재 사는 주거 형태는 무엇인가? 우리나라의 주거 형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는데, 단독주택과 공동주택이 있다.
국토 면적이 워낙 좁고 인구가 도시로 모이다 보니 땅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건물이 끝없이 수직으로 계속 올라간다.
이러다 지나가는 비행기와 만날 거 같은 상상을 하게 될 정도이다. 공동주택에 거주하면서 거대한 마을을 형성하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고 각자의 생활 방식과 모든 것들이 달라 거기서 발생하는 좋지 않은 사건들이 언론을 통해 노출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마을(아파트)에 살면서 느끼는 대표적인 주민 간 분쟁의 이유는 층간소음, 흡연, 반려동물 등이 있을 수 있다. 첫 번째로 층간소음이다. 모두가 인지하고 있지만 실제로 개선되기까지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위에서 서술했듯이 인구밀도가 높아짐에 따라 계속해서 수직으로 상승하는 아파트의 형태로 인해 발생하는 고질적인 문제점이다. 이 부분에 대하여 나는 조금 더 '마을'이란 키워드를 살리면 어떨까 싶다.
상상을 해보자, 내가 이전에 살았던 시골의 경우 집마다 수저가 몇 개인지도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건 서로가 관심이 있고 주기적인 교류로 인한 라포(신뢰 관계)가 형성되어 가능했다. 이런 마을에서의 관계가 공동주택에서도 가능할 거라 생각한다.
핵가족화와 1인 가구들이 늘고 있지만, 그들이 전부 관계를 형성하는걸. 부정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의제를 가지고 직접 주민들을 만나서 그들의 생활 방식 등을 공유하고 공동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이야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 행동 속에서 자연스레 입주자들 간의 라포가 형성되고 그 작은 관계들이 모여 공동주택 속 마을이 된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흡연 문제를 들 수 있다. 마을 단위(아파트)별로 일정 구역을 정해 정부나 보건소에서 흡연 구역을 정해 위반 시 일정 범위 내에서 과태료를 부과하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흡연자들의 비협조로 인해 아직도 여기저기에서 담배꽁초를 볼 수 있다. 건강상 미관상 커다란 피해를 주고 있으며, 심한 경우엔 세대 안 또는 계단에서 흡연으로 인한 사건 사고들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이전 필자도 흡연자였기에 양쪽의 입장을 다 이해할 수 있다. 다만 흡연자들의 흡연을 중지시키기만 한다면 또 다른 형태의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방적인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의 무언가가 필요해지는 시점이다. 지속적인 공감대 형성을 위한 캠페인과 주민들이 함께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여 서로의 고충을 이해하는 시간을 갖는것도 의미가 있겠다.
최근 여러 지역에서 플로깅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걸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런 활동들을 마을 주민들과 함께 시작해보는 건 어떤가? 물론 시작부터 크게 갈 수는 없다. 그렇기에 작게 내가 사는 아파트 동부터 시작하여 이웃들과 조금씩 영역을 넓혀 보자. 그러면 자연스레 함께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고 어느새 활동 범위 또한 넓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노출시켜 흡연자들에게 담배꽁초 무단투기 등의 행위를 인지하고 개선되는 여지가 마련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반려동물에 관한 문제가 있다. 핵가족, 1인 가구 등이 늘어남에 따라 반려동물을 키우는 세대가 확연히 늘어난 것이 보인다. 누구에게는 가족이자 누군가에겐 친구나 다름없는 반려동물들, 하지만 빈번히 발생하는 관리 소홀, 배설물 관리 등의 문제로 입주민들 사이에서 늘 빠지지 않는 갈등 상황이다.
이 부분을 마을에서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사실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하기 어려운 부분 중 하나이고, 필자도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숙제처럼 남아있다. 주택관리사로서 27년간 살아왔지만 전부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렇기에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필요하고 마을이 필요하다.
반려동물 관련하여 내 개인적인 견해를 조심스레 적어보면 반려동물을 키우는 입주자들끼리의 모임을 만들어 정기적인 산책 또는 만남을 제안하고 그들에게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하여 여러 의견을 모아보는 작업이 필요할 거 같다. 그 속에서 다양한 대안들이 나올 것이고 가령 관리 소홀로 인한 안전사고의 경우 목줄 및 하네스 필수 착용과 중형견 이상의 동물은 입마개를 착용하는 등 선제적인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주민들에게 듣는 이야기는 어쩌면 단순한 훈수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직접 반려동물을 키우는 주민들이 나서서 갈등의 이유와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해 나가는 것이 필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해결방안이라 생각한다.
마을이라는 단어는 시골과 도시를 접한 나에겐 여전히 친근한 이미지로 남아있다. 그러나 도시에서 오랫동안 생활해서인지 최근엔 아파트 혹은 공동주택이란 단어가 친숙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아마 내 기준에서 마을과 공동주택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앞서 이야기한 세 가지를 제외하고도 아직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동주택에선 여러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한 문제들을 혼자 해결하기엔 부족하지만, 내가 사는 마을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는 사람들이 조금씩 모여 함께 해결하고자 한다면 그때야 비로소 공동주택이 아닌 건강한 마을의 모습이 될 것이고 나 또한 그 모습을 항상 꿈꾸며 함께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