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흥궁 마루에 걸터앉아, 김민기의 묵직한 저음과 시간여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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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흥궁 마루에 걸터앉아, 김민기의 묵직한 저음과 시간여행을
  • 고진현
  • 승인 2024.06.25 1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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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따라 음악따라]
(11) 용흥궁 공원 안에서 - BGM ‘그사이’(김민기)

 

여름의 시작이다. 주말이 되면 알록달록 관광버스들이 줄지어 강화로 들어온다. 산과 바다를 모두 볼 수 있는 강화는 자연도 풍부하지만 역사가 깃든 문화유산도 중요한 볼거리 중 하나다. 강화읍내만 해도 하루 종일 탐방할 거리가 많다. 한옥으로 지어진 성공회성당의 전경이 보이는 용흥궁 공원 주차장이 북적인다. 주말 나들이객에게는 평일의 피로를 환기하는 장소로, 동네 주민에게는 늘 오가는 익숙한 장소이다.

 

 

용흥궁 공원에는 넓은 잔디마당이 있다. 강화도 문화재 야행이 열리기도 하고 가볍게 걷거나 쉬어가는 사람들도 많다. 하교 시간에는 주변 학교 학생들이 공원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소란스럽다. 작년 여름비 내리는 밤에 친구들과 풀밭에서 앞구르기 하며 깔깔대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성공회성당으로 들어가는 입구 맞은편에 용흥궁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 용흥궁은 조선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거처했던 곳으로 강화유수 정기세가 철종 4년에 지금과 같은 건물을 짓고 ‘용흥궁’이라고 하였다 한다. 창덕궁의 연경당, 낙선재와 같은 살림집 형식으로 지어져 소박한 분위기를 풍긴다. 실제로 궁 안으로 들어서면 따스한 햇살처럼 편안한 기분이 든다. 날 좋을 때 신발을 벗고 마루 위에 누워 낮잠을 자면 옛 조선시대의 정취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문 사이로 새어 들어 오는 볕이 찬란하다. 부드러운 곡선의 기와가 겹겹이 쌓인 모습이 꼭 바다 위에서 출렁이는 파도 같아 보인다. 그 사이로 빗어 나오는 현시대 건물들도 크게 이질감이 들지 않는다. 세월 속에서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풍경처럼. 강화 읍내는 골목마다 숨어있는 매력이 있다. 용흥궁 공원에서 용흥궁으로 이어지는 골목은 동네 주민들이 늘상 이용하는 지름길이다. 여러 식당도 즐비해 있고 자전거와 오토바이, 커다란 트럭도 왔다 갔다 하는 길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김민기의 ‘그사이’를 추천하려 한다.

 

‘해저무는 들녘 하늘가 외딴 곳에

호롱불 밝히어둔 오두막 있어

노을 저 건너의 별들의 노래소리

밤새도록 들리는 그곳에 가려네

이리로 또 저리로 비켜가는 그 사이에

열릴 듯 스쳐가는 그 사이따라’

- 그사이 노래 가사 중

 

낮과 밤이 교차하는 그 사이에 용흥궁을 걸으며 음악에 귀 기울여 본다.

1970~80년대 청년 문화의 원형을 만든 인물이자 노래와 연극, 문학을 아우르며 한국 문화의 새 지평을 연 르네상스적 인간이라 불리는 김민기는 필자가 한때 좋아했던 예술가 중 한 사람이다. 그 중 ‘봉우리’, ‘그 사이’ 노래를 특히나 좋아한다.

이 시대를 살아보진 못했지만 담백하고 투박한 가사와 김민기 님의 묵직한 저음은 음악에 푹 빠져 시간여행을 떠나는 듯하다. 음악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문 같다.

용흥궁 마루에 걸터앉아 음악이 데려다주는 곳으로 몸을 맡겨 쉬어 가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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