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후 통증 관리까지 - 마취과를 핵심 의학분야로 끌어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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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후 통증 관리까지 - 마취과를 핵심 의학분야로 끌어올리다
  • 김용범
  • 승인 2024.07.15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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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중제고 사람들]
(46) 김성덕 중앙대의료원 교육협력 현대병원 의료원장
- 김용범 / 푸른아시아 전문위원
김성덕 중앙대의료원 교육협력 현대병원 의료원장

 

개인주의가 극대화되면서 가족이 붕괴되는 요즈음 할아버지 말을 듣는 손주가 몇이나 될까. 가족이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여도 생각은 제각각이다. 가정이 기본적인 문화를 습득하게 하는 사회화 기능이 상실되고 있는 요즈음, 할아버지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평생을 노력해온 사람이 있다.

김성덕 중앙대의료원 교육협력 현대병원(이하 현대병원) 의료원장. 그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바랐던 의사가 되었고, 당시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마취과 의사를 선택했다. 서울대병원 마취과장 시절 우리나라 최초로 마취과 외래 진료를 시작하는 등 자신의 책임을 다했다. 그리고 중앙대의료원과 현대병원 의료원장으로써 다정한 병원 경영인이 되어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

 

인천중학교로 전학온 축구 대표선수

김성덕 현대병원 의료원장은 수원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을 보냈다. 이때부터 축구를 잘해 초등학교 중학교 축구 대표선수였다. 스포츠 선수라고 하면 공부는 제쳐둘 것이란 선입관도 가질 수 있지만 그는 공부도 잘했다. 요즘으로 치면 5툴 플레이어(야구에서 야수가 가져야 하는 다섯 가지 능력을 갖춘 다재다능한 선수)였다.

연희전문을 졸업한 아버지가 당시 선생님이었는데, 아들이 축구 선수로 활동하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그러던 차에 아버지가 인천중학교로 전근을 왔다. 당시에는 인천이 경기도에 소속되어 있어서 선생님들의 이동이 가능했다. 인천중학교 교사로 아들을 전학시키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인천중학교에서 받아주지 않았다. 인천중학교는 인천의 명문이니 수원에서 다니던 학생의 전학을 쉽게 허용하기 않았던 것이다.

전학을 위한 학교와의 협상이 난항을 겪던 중 길영희 교장이 시험을 보자는 제안을 했다. 아버님의 소원이 간절했기 때문인지, 길 교장 덕분에 김성덕 원장은 중학교 3학년 초에 교장실에서 시험을 볼 수 있었고 전학이 허용됐다. 이후에 제물포고등학교(9회 졸업)를 거쳐 서울대학교 의대에 입학했다. 

김성덕 의료원장은 초등학교부터 축구만 잘한 것은 아니고 다양한 스포츠에 소질이 있었다. 제물포고에 입학해서는 축구도 잘했지만, 연식정구에 탁월한 소질을 보여 학교 대표로 나갈 정도였다. 그러나 그가 서울대 진학을 꿈꾸고 있었다는 것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서울대 의대를 가겠다는 학생이 고등학교 3학년 때 외부 시합에 나가겠다고 하니, 허용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당시의 담임은 시합에 나가겠다는 그를 교무실에서 무릎을 꿇려 놓았다. 경기장에 나가지 못하게 벌을 준 것이다. 시합에 나가려면 훈련을 열심히 해야 했지만, 교무실에서 무릎 꿇고 앉아 벌을 받았으니 결과가 좋을 리는 없었다. 결국 예선에서 떨어졌고 씁쓸히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1964년 고등학교 3학년 때 반 대항 축구대회에서 우승 후
1964년 고등학교 3학년 때 반 대항 축구대회에서 우승 후

 

이런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서울대에 진학한 후 그는 의대 연식 정구대회에서 우승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스포츠 관련 특기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연식정구 외에도 어려서부터 하던 축구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대학에 다니면서 단과대 축구대회에서의 일이다. 축구 결승전에서 의대와 체육교육학과가 주축인 사범대가 맞붙었는데 김성덕 원장이 두각을 나타낸 결과 의대가 우승했다.

의외의 결과였지만 덕분에 의대생이 서울대 축구 대표선수로 발탁되었다. 당시 결승전 장면을 보고 있던 축구 감독이 나중에 김성덕 의대생을 선택한 것이다. 김 원장은 선수로 발탁된 후 연습에 몇 번 참가했으나 의대에서 요구하는 학업량에 지속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축구 선수로 활약하던 대학시설(오른쪽에서 두 번째)

 

할아버지의 꿈을 이루다.

김성덕 의료원장이 의대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할아버지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김성덕 원장의 아버지가 의대에 가기를 희망했다고 한다. 그러나 상업고등학교에 다니던 아버지는 의대에 진학하지 않았다. 

아들에게 걸었던 할아버지의 바람은 손주인 김성덕 의료원장 대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꿈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의대를 진학하게 된다. 그리고 서울대 의대에 진학한 후 축구로 선수까지 뽑힐 정도로 운동에 탁월했지만, 결국 의대생으로서 남아 최선을 다해야 했다. 그리고 졸업 후에 갈 곳을 고민하다 마취과를 선택한다.

우리나라의 근대적 마취는 한국전쟁 중 한국 군의관들이 미국 마취군의관들로부터 2주간 마취과 교육을 받은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광복 전후부터 한국전쟁 전까지 마취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외과 강의의 일부로 간략하게 있기는 했었다. 그러나 마취과는 과거엔 간호사나 의료기사가 하는 일이라고 하여 아무도 하지 않으려고 하던 영역이었다고 한다. 이에 한국 의료계에서 마취분야는 1970년대까지도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사정은 이러했지만 마취과는 분명히 필수적인 분야였다. 당시 인기가 있었던 분야도 아닌 마취과를 선택한 김성덕 원장은 자신의 분야에 매진했다. 하나의 생명이라도 안전하게, 더 살리기 위해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마취과 외래를 열었다. 수술 시 마취를 하는 마취과에서 외래가 소용이 없을 것 같지만 수술 전에 환자의 상태를 잘 살필 목적으로 필요했다.

뿐만이 아니라 국내 최초 개원한 대학병원부속 소아병원의 소아마취분과 분과장 및 소아수술실장을 역임하고, 대한소아마취연구회를 창립했다. 불모지를 옥토로 바꾸려는 줄기찬 노력 덕분에 마취과는 수술의 모든 과정에 관여하고, 수술 후 통증 관리까지 책임지는 핵심 의학 분야로서 매우 높은 경쟁률을 자랑한다. 현재는 마취과에서 마취통증의학과로 개명되었다.

 

국내 최초 마취과 외래개설 내용의 서울대병원 주보 기사

 

마취 분야의 성공은 그를 의료 행정가이자 병원 경영인으로 탈바꿈하게 했다. 김 원장은 대통령의료자문의(김대중 정부)를 거쳐,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서울특별시립 보라매 병원장을 역임했다. 그리고 2008년부터 수년간 충북대학교병원 이사가 되었으며,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제3기 대통령직속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장(이명박·박근혜 정부)을 지냈다.

 

중앙대의료원장이 되다

그는 의료계에서 국방부, 보건복지부 그리고 법무부와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의사국가시험 심의위원을 거쳐서 힌국보건의료인 국가시험원 이사를 지냈다. 국방부 의무자문관을 역임하며 의료체계도 개선했으며, 서울중앙지법 명예법관이 될 정도로 열심히 활동했다. 한국에서 최초로 소아마취과학회를 창립한 후 초대회장도 역임했다. 마취 분야에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를 잡아 갔다.

서울대 의대 교수로서 마취과 의사로 복무할 때 한 가지 제안이 왔다. 중앙대의료원장 제안이었다. 두산그룹이 중앙대를 인수한 후 중앙대의료원을 개혁하는데 적합한 사람으로 김성덕 교수를 선택한 것이다.

2009년 중앙대의료원장으로 부임한 김성덕 교수는 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그는 개혁을 위한 소신대로 소임을 밀고 나갔다. 2016년에는 한독학술경영대상을 수상했다. 한독경영대상은 국민보건의료 향상과 병원 경영에 이바지한 의료계 인사에게 주는 상이다. 2018년에는 대학의학회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었다.

그의 여정에 탄탄대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중앙대의료원에 새로 건물을 지으면서 의대 내 의사들의 반발에 직면한 적도 있다. 그렇지만 중앙대 병원 교수 국제 논문 실적을 25위권에서 5위의 대학병원으로 만들었고, 2020년 11월 그가 중대병원을 떠나고 현대병원으로 취임한 2021년 2월에 정부에서 실시한 입원환자 만족도 평가에서 전체 1위로 등극했다.

 

현대병원과 인연을 맺고 몽골로

경기 남양주시 소재의 현대병원은 올해 6월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 자병원인 몽골현대병원을 개원했다. 중앙대의료원 교육협력 병원인 현대병원이 해외에 의료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이 병원은 2009년부터 매년 몽골에서 의료봉사를 진행했다. 10년 동안 1만 명이 넘는 환자를 진료하고 무료 수술도 698명에 이른다.

김성덕 의료원장과 현대병원의 인연은 중앙대의료원장을 지내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 중앙대 의대 동문이었던 김부섭 원장이 김성덕 의료원장을 찾아왔고 협력병원을 제안했다. 김성덕 원장은 한국이라면 살았을 환자들이 몽골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가슴 아파했던 현대병원 원장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그의 요청을 받아들이고자 했으나 당시에 중앙대의료원과 협력병원은 많이 있었다. 따라서 단순한 협력병원을 뛰어넘는 좀 더 특별한 관계를 맺으려 했다.

궁리를 거듭한 끝에 2019년 두 의료기관은 상호 교육 협력 관계를 맺는다. 이에 따라 남양주 현대병원은 ‘중앙대의료원 교육협력 현대병원’으로 이름을 개칭했다. 그리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중앙대 의료원장을 그만둔 후 현대병원에 의료원장으로 2021년 1월에 부임했고, 현재까지 재직 중이다. 현대병원은 몽골에 이어 카자흐스탄에 진출할 예정이다.

 

긍정, 다정, 열정을 모토로

김성덕 원장은 대한의사협회장, 대학의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국가생명윤리정책원 및 의학 한림원 창설을 주도하는 등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 제 3기 대통령 직속 국가생명윤리위원회 위원장 시절에는 '연명의료법' 입법을 주도하기도 했다. 그는 늘 긍정, 다정, 그리고 열정을 모토로 살며 서울대병원, 그리고 중앙대의료원에서 성과를 얻었다. 현재는 현대병원의 의료원장으로써 기관의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국내 성취를 바탕으로 해외로까지 영역을 펼쳐가고 있다.

 

김성덕 의료원장의 가족 소개 기사

 

할아버지의 꿈을 위해 의사가 된 김 원장은 가족과 화목한 생활을 중요시한다. 그는 가족과 함께 다정한 모습이 기사로 나오기도 한다. 한 개인의 꿈이라도 진정성을 가지고 꾸준히 추구한다면 그것은 세대를 넘어 역사로 이어지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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