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넘은 노후 빌라(교대 주변), 20년 전 지구단위계획에 '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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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넘은 노후 빌라(교대 주변), 20년 전 지구단위계획에 '발목'
  • 최태용 기자
  • 승인 2024.09.02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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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권 침체된 경인교대 주변, 지구단위계획은 20년 전 그대로
1984년 준공한 노후빌라, 공동주택 재건축 사실상 불가
'신도시↑=원도심↓', 원도심 지구단위계획 근본적 변화 필요
지난 29일 인천 계양구의 경인교대 인천캠퍼스 정문 앞 모습. 사진=인천in
지난 29일 인천 계양구의 경인교대 인천캠퍼스 정문 앞 모습. 사진=인천in

 

지난 29일 오전 11시 30분. 2학기 개강 첫 주를 맞았지만 경인교대 인천캠퍼스 주변은 대학가가 맞나 싶을 정도로 한산하다.

학교 주변 식당을 찾는 학생은 찾기 어려운 반면, 빈 상가는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과거 학생들로 가득 찼던 원룸과 하숙, 고시원도 절반은 비었다.

경인교대 주변의 상권 침체는 예견된 일이었다.

2014년 인천캠퍼스 1·2학년, 경기캠퍼스 3·4학년으로 학생들을 분리한 뒤부터 꾸준히 내리막이었다.

3,000명이 넘던 재학생은 현재 1,300여명으로, 입학 정원도 598명으로 10년 이상을 유지하다가 내년부터 526명으로 72명(12%) 줄었다.

지역의 핵심 동력이었던 대학이 축소됨에 따라 도시계획에 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20년 전 정해진 지구단위계획이 발목을 잡는다.

원도심의 지구단위 계획을 근본적으로 다시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40년 '노후 건물' 손도 못 대게 하는 지구단위계획

왼쪽의 3층짜리 빨간벽돌 건물 두 채가 영신연립이다. 사진=인천in
왼쪽의 3층짜리 벽돌 건물 두 채가 인천 계양구 계산동에 있는 영신연립이다. 사진=인천in

 

인천 계양구에 있는 경인교대 인천캠 정문을 따라 200m 남짓 내려가면 눈에 띄는 건물이 두 채 있다.

외벽을 빨간 벽돌로 두른, 유난히 키가 작은 3층짜리 빌라 영신연립이다. 실제로도 건물 전체를 벽돌로 쌓아 만든 조적조 건물이다.

1984년 준공한 이 건물은 2개 동 전체 36세대 가운데 2개 세대가 상가, 34개 세대가 가정집이다. 이 가운데 3층의 가정집 한 곳이 비었는데, 비가 많이 새 집 주인이 수리를 포기해 비워놓고 있다.

비가 새는 문제는 특정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곳 주민들은 올해 여름이 오기 전 돈을 모아 양쪽 건물 전체 방수공사를 했다. 건물과 지면 사이 벌어진 틈부터 옥상과 벽면 등 빗물이 새어들어올만한 곳은 모두 시멘트로 막았다. 덕분에 이번 여름은 큰 피해 없이 났다.

다만 애써 메운 틈새가 다시 갈라지고 있어 이곳 주민들은 다가올 가을장마를 걱정하고 있다.

균열을 조적조 건물의 고질적 단점으로 보더라도, 공사 두세 달만에 다시 균열이 생긴다는 건 건물이나 지반의 침하를 의심할 수 있다.

건물 내부에도 문제가 많다. 계단실 벽면이 떨어지면서 각종 배관이 드러나 있고, 많은 세대가 바닥 꺼짐과 누전·누수·곰팡이 등을 겪고 있다.

특히 과거 연탄보일러가 있던 지하실로 누수된 빗물이 모여드는데, 배수 자체가 어렵고 이곳으로 통하는 전기 설비가 낡아 사고의 위험이 크다.

실제로 올해 초 비 오는 날 누전이 생기면서 건물 전체에 높은 전류가 흘러 주민들이 긴급하게 대피한 일도 있었다.

매번 비 오는 곳을 땜질하며 살고 있는 주민들도 재건축의 필요성을 인식하지만, 지구단위계획에 가로막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영신연립에서 10년 넘게 사는 A씨는 "공동주택 재건축이 필요하지만 땅이 지구단위계획에 묶여 상가만 지어야 한다"며 "실거주자들에겐 상가가 필요하지 않다. 지구단위계획을 수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시 변화 못 따르는 20년 전 '지구단위계획'

영신연립 계단실과 집 내부 모습. 사진=인천in
영신연립 계단실과 집 내부 모습. 사진=인천in

 

인천시는 2004년 인천1호선 경인교대역 주변 64만5,400㎡를 경인교대역구역 지구단위계획으로 묶었다. 인천1호선 개통 5년만이었다.

지구단위계획에 따르면 경인교대 주변은 용도가 근린생활시설이다. 경인교대역부터 학교까지 도로변은 5층 이하 상가만, 도로변 뒤쪽은 15층 이하 공동주택이나 문화·교육연구 시설 등을 지을 수 있다.

영신연립도 도로변에 있어 재건축을 한다면 상가를 지어야 한다. 빌라보다도 20년 뒤에 생긴 지구단위계획 때문이다.

다만 방법이 아예 없지는 않다. 지구단위계획 변경을 위한 주민제안 제도가 있다.

주민 측에서 해당 구역의 재건축 계획을 인천시에 제출하고 심의 절차를 통과해야 한다. 주민들만의 역량으로는 어려운 절차다 보니 결국 시행사나 건설회사 중심으로 재건축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또 5년 안에 사업을 시작하지 않으면 모든 게 백지화된다. 웬만한 재건축·재개발이 삽을 뜨는 데까지 10년 이상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

취재가 시작되자 최근 인천시 담당부서에서 영신연립을 찾았으나, 뾰족한 수가 없긴 마찬가지였다.

시 관계자는 "영신연립은 지구단위계획 수립 전부터 공동주택이었기 때문에 억울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주민제안이 들어온다면 긍정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라고 했다.

지구단위계획은 일정 구역의 땅을 합리적·기능적으로 사용하거나, 경관·미관을 개선하고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건축물 등 각종 시설의 용도와 종류를 제한한다.

경인교대역구역 지구단위계획을 만들 당시엔 경인교대 학생 수가 3,000명을 넘었다. 땅과 건물의 기능에 경인교대가 최우선 고려 대상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학생 수는 1,300여명으로 줄었고 입학 정원도 내년부터 이전보다 12% 줄어 526명이 된다. 2년 안에 학생 수가 1,000명 남짓으로 줄어든다는 뜻이다.

꾸준한 학생 수 감소는 상권 침체로 이어졌다.

이곳에서 30년 가까이 고시원을 운영하는 B씨는 "과거 4학년이나 재수생이 대부분이었는데, 3~4학년이 경기도로 간 뒤로는 학생이 거의 없다"며 "업종 전환을 고민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식당을 운영하는 C씨도 "상권은 오래 전 무너졌다. 버티는 곳은 학생이 아닌 동네 주민 대상으로 장사하는 곳뿐"이라며 "도로변 주차공간을 없앤 게 큰 이유였다. 주차공간이 사라지면서 사람들 발길도 줄었다"고 지적했다.

계양구는 지난 2010년 경인교대 주변을 '젊음의 거리'로 조성한다며 기존 주차공간을 없애고 그 자리에 화단을 만들었다.

경인교대 앞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D씨도 "원룸, 하숙이 수년째 절반 이상 비어 있다. 학교는 이제 지역의 핵심 동력이 아니다"며 "환경 변화에 따른 지구단위계획의 변화가 필요하다. 우물쭈물하는 만큼 지역이 침체될 것"이라고 했다.

 

원도심 지구단위계획, 근본적으로 들여다봐야

왼쪽 아래가 영신연립. 오른쪽 위가 경인교대 인천캠퍼스다. 인천1호선 경인교대역과 경인교대까지 이어지는 도로변 건물이 모두 영신연립을 제외하고 모두 상가건물이다. 사진=인천in
왼쪽 아래가 영신연립. 오른쪽 위가 경인교대 인천캠퍼스다. 인천1호선 경인교대역과 경인교대까지 이어지는 도로변 건물이 모두 영신연립을 제외하고 모두 상가건물이다. 사진=인천in

 

인천시는 지난 5월 중구 월미구역과 아시안게임경기장 6개 구역 등 인천의 63개 지구단위계획을 정비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12.2㎢로 인천의 도시 면적 45%에 해당하는 규모다.

63개 대상 가운데 경인교대역구역도 포함됐다.

다만 지구단위계획의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과업지시서에 나온 이 용역의 목적은 정책실현과 구역의 정비·관리다.

우선 월미구역은 유정복 시장의 공약 사업인 제물포르네상스 등과 연계하기 위해 대규모 정비가, 아시안게임경기장 주변 6개 구역은 새로운 관리 방안 마련을 위해 기존 계획 폐지가 목적이다.

경인교대역구역을 포함한 나머지 56곳은 교통이나 환경 민원을 반영한기 위한 일부 개선이다.

용역의 핵심이 월미구역과 아시안게임경기장 주변 6곳이다 보니 영신연립의 문제 해결을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결국 인천 원도심의 지구단위계획을 근본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인천은 전국에서 인구가 늘어나는 몇 안 되는 도시지만, 인접한 원도심과 신도시의 격차가 꾸준히 벌어지고 있다.

유정복 시장의 제물포르네상스는 이 격차를 줄이기 위한 대표적인 사업이다. 다른 원도심 역시 도시의 다양한 변화를 반영해 지구단위계획을 손본다면 얼마든 민간 영역에서 해법을 찾아갈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인천의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인천의 원도심 침체는 신도시의 급격한 발전에 따른 반대급부"라며 "원도심의 효율적, 기능적 활용을 위해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자체가 길을 열어준다면 민간 영역에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할 것"이라고 했다.

유동수(민주, 인천 계양갑) 국회의원실 관계자도 "인천시가 (영신연립 문제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것은 반길 일이다"면서도 "주민제안 제도는 쉽지 않다. 지자체 차원에서 원도심의 지구단위계획을 근본적으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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