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눈 온 백련사, 찻집 오련, 따뜻한 쉼 - BGM '광화문 연가'(이문세)
밤사이 온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담장 위에 눈이 한 뼘 만큼 쌓였다. 미리 일기예보를 보지 못해 자동차 앞 유리에 돗자리를 펴놓지 못했다. 다행히 내리쬐는 정오의 햇살 덕분에 와이퍼로 눈이 쉽게 쓸릴 만큼 연해져 있었다.
불현듯 백련사 주차장에 있던 찻집이 생각났다. 나중에 하얀 눈이 쌓이면 씁쓸한 쌍화차 한잔 마시러 가야지, 라는 생각으로 방문을 미뤄뒀던 곳이다. 오늘이 딱 그런 날이었다.
강화읍내에서 차로 15분이면 갈 수 있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다. 진달래 군락지가 유명한 고려산에 위치하고 있다. 백련사에서 고려산 정상까지 도보로 꽤나 가까워서 이전에 가벼운 등반을 했었다.
백련사 주차장까지는 차로 올라갈 수 있는 포장도로이다. 조금 굽이 지지만 크게 가파르진 않다. 잎사귀를 털어낸 나뭇가지 위에 솜 같은 하얀 눈이 잔뜩 쌓여 있었다.
산기슭 사이사이 온 땅이 하얗게 물들어 있으니 괜히 마음도 깨끗해 지는 것 같다. 설경이 이래서 멋지구나. 운전하는 내내 길이 얼마나 예쁘던지 눈이 즐거웠다.
도착해서 먼저 백련사를 둘러봤다. 백련사는 416년 고구려 장수왕 때 창건됐다. 전설에 따르면 삼국시대 한 인도의 승려가 절터를 물색하다가 고려산 정상에서 다섯 색의 연꽃이 만발한 연못을 발견하고 이 다섯 색의 연꽃을 꺾어 날린 다음 꽃이 떨어진 자리에 절을 세웠다.
그중 하얀 연꽃이 떨어진 자리에 절을 짓고 이름을 백련사라 했다고 한다. 팔만대장경이 한때 이곳에 봉안되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지붕 기와 위에 쌓인 눈과 화려한 단청이 대비되어 더욱 화려하게 빛나는 것 같다.
고드름도 하나의 무늬같이 자연스레 어우러져 있다.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구름도 시시각각 변화한다. 구름 뒤로 새어 나오는 태양빛과 설경이 합쳐지니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느낌이 더해졌다.
바람이 불면 나무를 덮고 있던 눈이 꽃잎처럼 우수수 흩날린다. 겨울꽃인가.
사진을 찍으려 잠깐 손을 꺼내면 금세 꽁꽁 얼어버릴 만큼 춥다. 슬슬 온몸에 찬 기운이 돌 때쯤 ‘카페 오련’으로 향했다.
카페 입구에서 눈사람과 점박이 고양이가 환대를 해준다. 굴뚝으로 피어 나오는 연기와 쌓인 장작을 보니 실내에서 난로를 때는 모양인가 보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인상 좋은 노부부가 맞이해 주셨다. 추천 메뉴는 3일간 직접 우린 쌍화차와 대추차라고 하신다. 쌍화차를 달라 하니 조금 쓸 수 있어 달달한 대추차를 섞어 주신다고 한다.
다정한 배려 덕에 자리에 앉기도 전에 온몸이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잠깐의 말과 표정에서 맑고 따스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주문을 마치고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천천히 공간을 둘러보기도 하며 가만히 창밖을 내다보기도 했다. 금세 나온 쌍화차 한 잔과 고소한 한과를 음미한다.
은은하게 풍기는 차 냄새와 적당한 소음과 곳곳에 묻어난 정성 들이 온 주위를 감싸 안는다. 정말 오랜만에 혼자서 진짜 쉼을 갖는 시간이다.
찻집에서는 옛 가요가 흘러나왔다. 마침 이문세님의 ‘광화문 연가’가 들려왔다.
겨울과 눈, 따뜻한 쌍화차, 친절한 노부부, 모든 순간이 선물 같았다. 바삐 보낸 한 해에 대한 위로 같았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눈덮힌 조그만 교회당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깊이 그리워지면
눈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 ’
카페 오련은 연중무휴라고 한다. 오후 6시까지만 운영을 하니 겨울 중에 강화를 찾는다면 한 번쯤 쉬어가길 추천한다.
2024년도 이제 다 떠나갔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가슴 깊이 그리울만한 좋은 기억을 노트에 적어보는 것도 좋겠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