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선학동 몽골식당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이 지난 지가 한참을 지났건만 아직도 더운 기운이 느껴지는 10월의 첫째 날! 선학동에 있는 몽골식당에 모였다. 일행 셋은 각자 따로 왔는데 식당 위치가 생각했던 곳과 달라서 당황했다. 그러나 조금 늦게 나타난 친구가 이전(移轉)해서 그런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쉽게 길을 찾아 주었다. 또 다른 친구도 필자와 마찬가지로 좀 당황스러워하며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몽골식당! 식당 이름인데 실제 간판에는 영어로 표기된 간판이 보이길래 이곳이 아닌 줄 알았었다. 그런데 친구를 따라서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이곳이 맞네”, 바로 알 수 있었다.
식당 안의 냄새는 다른 곳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고기의 향이 코를 자극했다. 필자는 기름진 느끼함을 너무도 싫어한다. 그런데 이 냄새는 고기의 잡내 또는 누린내의 향이기에 들어가는 순간 “아~~ 오늘은 힘들겠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같이 간 친구 중 한 명은 몽골에 가서 '엄청난' 음식을 먹어봤기에 이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잡고 몽골 경험담을 말해주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다 들으려면 아무래도 한참 걸릴 거 같아서 일단 주문부터 하기로 했다.
여기요!! 하고 불렀더니 젊은 여성분이 네~~하고는 메뉴판을 건네는데 어딘가 이상했다.
분명 외모는 전형적인 토종 한국 사람인데 주문을 받으면서 말하는 말투가 조금 이상했다. 호기심 천국인 필자는 뭐지? 하고 의구심이 들 때쯤 친구가 몽골 사람이라고 알려주었다. 신기했다. 나중에는 주방에서 일하는 젊은 주방장하고 대화하는 모습에서 필자는 적응이 잘 안 되었다.
아들과 비슷한 외모의 젊은 주방장과 대화를 하는데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예쁜 백인 여성이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하며 밀양아리랑을 부르는 것보다 더 신기했다. 아마도 너무도 한국 사람과 똑같은 외모 때문인 듯했다. 중국, 일본과는 다른 정말로 한국 사람과 똑같은 모습에서 신기함과 친근함을 동시에 느꼈다.
아무튼, 우리는 구운 양 소고기와 여러 가지를 맛보고 싶었기에 몽골 전통 음식 세트를 주문했다.
그리고는 친구의 몽골 경험담을 이어 들었는데 듣는 내내 한숨이 나왔다.
친구의 말에 의하면 초원에서 살아가는 유목민들과 식사를 했을 때, 그곳에서는 손님들에게 최고의 대접이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내놓는다고 했는데 친구와 같이 갔던 일행 모두 기절할 정도였다고 했다. 가지고 간 김치를 아무리 먹어도 그 느끼함이 해결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몽골에서는 양의 기름을 얼굴에 추운 날씨에 트지 말라고 바른다고도 했다.
친구의 이야기가 한참 동안 계속되었는데 음식이 나오질 않아서 언제 나오는지 물어봤는데 곧 나온다고 하는 모습에서 외모만큼이나 살아가는 방식도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곧 나와요.” 하고는 10분이 지나서야 나오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나온 음식은 구운 양 소고기였다. 아마도 양고기와 소고기가 같이 들어있는 듯했다. 한 젓가락 집어 입에 넣으니 “오잉? 이것은 우리의 불고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똑같았다. “어쩜 이럴 수가?” “혹시 한국 사람 입맛에 맞게 요리한 건가?”라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몽골식 불고기(?)를 맛보고는“휴~~다행이다. 고생은 안 하겠다.”라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러면서 필자의 얼굴이 활짝 피게 되었다.
잠시 후 나온 몽골 전통 음식 세트도 필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일단 그 양이 어마어마했다. 조금 과장 되게 말하면 탁자가 꽉 차는 느낌의 크기였다. 음식이 나오는 모습을 보고는 우리는 공통된 생각을 하는 듯했다. “이거 하나만 주문할걸.” 만두, 호르슈, 삶은 양고기, 감자, 작은 만두, 빵 등이 나온 이 음식은 최소 4명이 먹어도 힘든 양인 듯해 보였다.
밑반찬으로 감자 샐러드, 당근 샐러드, 양배추 샐러드 등이 나왔는데 메인 음식의 크기에 놀라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필자가 맛본 고기만두는 진짜 고기만두였다. 안에 고기만 들어있는 듯했다. 물론 어느 정도의 양념은 했지만 말 그대로 만두피에 고기만 들어있는 느낌이었다. 한입 베어 물었을 때 깜짝 놀랐다. 육즙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필자가 씹을 때 잘못해서 그런 건가 하고 옆에 있는 친구에게 먹어 보라고 권했는데 그 친구 역시 육즙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기름진 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나하고는 조금은 안 맞는 맛이었지만 그래도 몽골 만두의 맛이구나 하면서 먹을 수 있었다.
옆에 있는 반달 모양의 호르슈는 마치 튀긴 만두를 생각나게 했다. 안에는 잘 다져진 고기가 있었는데 아까의 만두보다는 기름진 맛이 덜하였다. 그래서인지 필자는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최대 난 코스는 삶은 양고기였다. 기름이 잔뜩 붙어 있는 양고기 덩어리를 개인 접시로 가져왔는데 먹을 엄두가 나질 않았다. 두 친구가 먹는 모습을 보고 먹으려 했으나 몽골 경험이 있는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잘 먹고 다른 친구도 아무 소리 없이 먹는 모습에 자신감을 가지고 먹기로 했다. 일단 기름기를 칼과 수저를 이용해서 다 떼어 내고 살코기만을 먹어봤다. 진정한 양고기의 맛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고기를 삶을 때 마늘, 생강, 양파, 대파 등의 채소를 넣어서 고기의 잡내를 없애는데 몽골의 수육은 그게 아닌 거 같았다. 맹물에 고기만 넣어 삶은 후 소금으로 간을 한 맛이었다. 못 먹을 맛은 아니었지만, 누린내가 필자의 속을 불편하게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필자의 사촌 누님의 말을 빌리자면 몽골은 땅을 성스럽게 생각한다고 한다. 그래서 가축을 잡을 때 우리나라와는 달리 피를 땅에 묻히지 않기 위해 피가 밖으로 나오지 않게 해서 고기에 피 냄새가 배서 누린내가 난다고 한다. 더구나 몽골에는 채소가 엄청나게 귀하다고 했다. 그래서 주로 소금으로만 간을 해서 먹는다고 했다.
고기를 먹고 밑반찬으로 나온 감자 샐러드를 먹으니까 오히려 같이 나온 당근 샐러드보다 더 입안이 깔끔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구운 송편같이 생긴 만두는 고기가 들어있기는 했으나 기름진 맛은 확실히 덜해서 약간의 감칠맛을 느끼면서 먹을 수 있었다. 떡과 같은 쫀득한 식감이 나의 마음에 들었다.
옆에 나와 있는 빵에 먼저 나온 불고기 맛의 구운 양 소고기를 넣어 먹으니까 어느덧 배가 불러오고 있었다.
우리는 약간의 고민을 하기로 했다. 그동안 먹은 기름진 맛을 어떻게 해야 없앨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우리 머리로는 답이 안 나와서 우유 종류의 음료수를 시킬까 하다가 이것도 아닌듯하여 여직원한테 물어보기로 했다. 여직원이 안에 있던 남자 주방장을 부르더니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뭐라 뭐라 하더니 ‘맑은 소 양고기 국’을 추천해주었다.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모습은 ‘소고기 뭇국’을 연상시키기에 우리는 이 정도는 쉽게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과자 느낌의 빵과 ‘맑은 소 양고기 국’이 나왔다. 일단 빵을 맛보았더니 70년대 구멍가게에서 조잡한 비닐 포장에 들어있던 밀가루 튀김 빵과 같은 맛이었다. 맛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도 단순한 맛에 웃음이 나왔다. 함께 나온 것을 보니까 아마도 국에 빵을 찍어서 먹으라는 거 같은데 필자는 빵 따로 국 따로 먹었다.
기름이 떠 있는 국을 보는 순간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도 한 수저 떠서 입에 넣었더니 생각보다는 ‘소고기 뭇국’과 비슷한 맛이어서 내 몫은 먹을 수 있었다.
아마도 그동안 계속 먹었던 고기로 인해 내성이 생긴 듯했다. 그리고 식사 중간에 주문한 맥주가 조금은 기름진 맛을 해결해주는 듯했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벽면에 걸려있는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몽골 제국의 지도와 칭기즈 칸이 그려진 벽걸이였다. 드넓은 초원을 달리는 몽골 군대가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세계를 호령했던 몽골이 우리나라를 너무도 사랑한다는 말을 듣는데 기분이 우쭐해졌다.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했다.
실제로 친구의 말에 의하면 울란바토르에 가보면 우리나라 버스, 승용차 그리고 한글로 쓴 간판 등이 눈에 들어와 여기가 어딘지 헷갈린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어느 도시를 옮겨 놓은듯한 착각을 일으킨다고 한다.
필자에게는 조금은 입맛은 안 맞았지만 다른 친구들은 별말 없이 잘 먹은 것을 보면 나쁘지 않은 식사였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손님으로 왔던 사람들이 우리 셋만 빼고는 다들 몽골 사람이었다. 필자가 생각한 것보다 몽골 사람이 많이 산다는 사실에 많이 놀랐다. 외모로만 보면 한국 사람인지 몽골 사람인지 전혀 구별할 수 없었다. 대화하는 모습에서 적응이 안 되기도 했으나 어딘지 모를 친근감이 들기도 했다.
국제도시라는 말이 실감 나는 인천에서 다른 곳에서는 쉽게 할 수 없는 색다른 경험을 느껴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