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남 시인이 들려주는 인천 이야기- <시립박물관 인문학>
“요즘들어 왜 인문학을 얘기하고 있을까? 길 위의 인문학, 각 언론매체, 지자체마다 왜 이렇게 인문학을 말하고 있을까? ‘하늘의 학문’을 ‘천문학’이라 하고, ‘땅의 학문’을 ‘지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늘과 땅 사이의 사람 살림살이의 무늬를 공부한다고 볼 때 ‘인문학’은 ‘사람의 무늬’, ‘사람살이 정신의 무늬를 살펴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늘에 별자리가 있듯이 우리 마음 속에도 별자리가 있고, 그 별자리를 도는 행성이 있다. 사람이 나고 죽는 것도 행성의 속성과 닮아있지 않나. 사람살이의 궁극적인 미래, 목표에 대한 궁금점이 우리로 하여금 인문학을 찾게 하는 게 아닌가 싶다.”
5월 28일, 장석남 시인이 인천시립박물관 인문학강좌 상반기 강의에서 ‘나의 문학과 인천’ ‘파도 속 불 켜진 빈 집: 나의 시로부터’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정신문명은 2천여년 전에 클라이막스를 쳤다. 물질문명은 200년 동안 급속하게 변화를 겪었다. 발전일까? 문명의 이기로 편해지긴 했지만.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컴퓨터, 핸드폰 등을 상상할 수 없었는데, 지금은 몇 초 안에 세상사람들이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됐다. ‘이상하다’ 할 정도로 문명의 이기 속에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문명이라는 것이 어느 날 문득 우리를 덮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있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우물이 있었고, 화장실과 땔감이 다 있어서 전쟁이 나든 뭐가 오든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당장 전기가 끊겨도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대혼란을 겪을 것이다. 2차세계대전이 있었던 건 불과 얼마 전인데, 할아버지 아버지가 겪은 일이다. 구체적인 철학의 부재로 문명의 실재적인 피해자였다. 몇 년 전 일본에 쓰나미가 덮쳤을 때 속수무책이었다. 인간삶의 궁극적인 공부가 되지 않는 문명은 인간을 아수라장으로 몰아갈 수 있다.”
“인문학은 인류 전체가 공동체적으로 해결해야 할 화두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첨예하게 갈등하는 불운한 나라다. 그래도 잘 사는 나라가 됐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다. 그래서 인문학에 대한 목마름은 더 깊어졌을 것이다. 우리가 해방해야 할 것은 ‘정신의 부자유’에서 해방하고 싶은 것이다. 아름다움의 이미지, 역사 속의 교훈을 찾아 기행하는 것이다. 시는 언어가 도구라는 한계가 있어서 모두가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장르는 아니지만, 인간이 놓쳐버린 세계를 찾으려는 건 확실하다. 내 시가 뭐를 말하나? ‘인천’이라는 지구를 어떻게 인식했으며, 어떻게 될까를 고민해야 한다.”
“내가 태어난 곳은 인천 앞바다 덕적도라는 섬이다. 아주 오래 전에 내 조상들이 이만저만한 사연으로 섬에 갔을 거고, 내 상상 속에는 한 인간이 파도 속에서, 파도 속에 떠밀려온 물거품 속에서 뚜벅뚜벅 걸어나오는 걸 상상한 적이 있다. 왜 우리 조상은 이런 외진 데에 와서 살게 되었나. 밤낮으로 파도소리가 떠나지 않고, 바닷가에 가면 ‘끊임없이’ 물이 밀려들어오고 밀려나간다. ‘끊임없는’ 속에서 조상 가운데 한 사람이 떠밀려 온 것이다. 그 조상의 조상, 그 조상의 조상… 마치 아메바? 내 조상은 프랭크톤과 같은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진화과정을 거쳐서 두 발로 걸어 뭍으로 올라왔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다. 우리 조상은 ‘파도’였거나 ‘파도소리’였을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틀리지 않는 상상이다. 우리가 어머니 태 속에서 자랐는데, ‘양수’도 바닷물이다. 염분 농도가 같다잖나. 열 달 동안 물고기나 알 단계에서 압축적으로 진화가 이루어져 애기로 태어나고, 네발로 기고, 걷는다. ‘인류의 생장과정을 압축한 것’이라 들었다. 파도의 거품 속에서 한 씨앗이 싹터서 다리가 생기고, 육지로 뚜벅뚜벅 걸어나왔다. ‘뭘까’라는 궁금함에서 나온 상상이다.”
<덕적도>
1 해질녘
아버지는 종일 모래밭에 와서 놀더라
아버지는 저녁까지 모래밭에 숨을 놓고 놀다
모래알 속에 아들과 딸을 따뜻이 낳아두고 놀다 가더라
해당화밭이 애타는 저녁까지
소야도가 문갑도로 문답도로 다시 굴업도로
해거름을 넘길 때
1950년이나 1919년이나 그 이전이
물살에 떠밀려와 놀다 가더라
2 섬집
그러니까 밀물이
모래를 적시는 소리가
고요하게 불 끄고 잠든 마을 집들의 지붕을 넘어
우리집 뒷마당 가득하게 될 때나
우리집 뒷마당도 넘쳐 내 숨을 적실 때
달팽이관 저 깊이
모래알과 모래알 사이 물방울의 길처럼 세상은
배고파도 그
속에서 나오기 싫었다
지금은 그 물결 소리가 무엇을 적시는지
내가 숨차졌다
3 밥 먹구 자
학교에서 돌아와
내가 집이 되어 무섭게
집을 품고 있노라면 털썩
나무 갔다 온 엄마가
하얀 별 아래
헛간 아래
나뭇동 아래
까맣게 어둠 아래서
밥을 짓고
나는 아궁이에 타는 불의 뜻 모를
箴言 속에 잠이 들어
밥 먹구 자
나를 언덕에서 떨어뜨리는, 자
지금은 스물세 살 겨울 어느 날 새벽 세 시 정말 밥 먹구
반성처럼 잠이 온다 밥 먹구 자
나는 불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4 가을行
차게 불이 탑니다 당신 이름이 탑니다 길을 비켜선 활엽의 나무
그루들 조금 더 목말랐으면 나는 물을 마실 뻔하였습니다
차게 타는 불
“시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돌아가려는, 궁극적인 모습을 발견하고 싶은 애초의 그리움의 산물이라는 것이 확실하다. 인간에게 다시 한 번 인류가 걸어론 발자취 속에서 시가 걸어온 걸 보면 ‘무에 가까운 침묵’에서 ‘농밀한 침묵’을 이야기한다. 인간에게는 언어가 없는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씨앗이 생겨나고, 침묵 속에서 ‘언어가 아닌’ 채로 있다가, ‘농밀한 침묵’으로, 나중에는 ‘들끓는 침묵’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아직 말이 못 나온 단계, 이 상태가 팽배해지다가 어느날 튀어나간다. 팽팽한 긴장 상태에 있다가 튀어나간 언어도 있고, 튀어나가지 못한 언어도, 튀어나가면 안 되는 언어도 있었을 것이다. 반은 튀어나가서 후련해졌는데, 반은 남아있는 언어가 ‘시’라는 언어로 남은 것이다. 언어화할 수 없는 말이다. ‘그 마음과 사다리를 놓는 존재’, 그 존재가 ‘시’라는 언어 상태다. 먼 과거같지만, 수십만년 전의 언어같지만, 그게 언어 출발의 상태다.”
“바다는 늙는 법이 없다. 언제나 젊다. 왜 그럴까? 원자탄이 터져도 싱싱할 것이다. 인간에게 있었던 싱싱한 씨앗 상태, 그 마음 상태는 인류가 끝이라는 어떤 지점까지 가도 영원한 미래일 것이다. 가장 낡았다고 생각하지만, 시가 노래하는 건 그런 운명적 태생을 지녔지만 늘 영원하다. 낡아질 수 없는 젊은 상태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특정한 종교를 갖게 될지도 모른다. 종교에 이웃하는 것처럼 신념을 갖는 것이다. 확장된 정신이 없다면 역사도 믿을 수 없을 것이고, 그 가치는 붕괴되고 말 것이다. 우리가 해방되고자 하는 것은 ‘자기에 대한 궁금증으로부터 시작’한다. 시는 ‘내 궁극은 뭘까?’를 묻는다. 그것은 개념적으로 이해할 수 없어서 ‘풍경’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고 자란 곳’, 풍경이 그립지만 그 풍경은 풍경이 아니고 질문을 갖는다고 재해석할 수 있다.”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대한 궁금증, 시간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다. 앞서 읽은 시는 저물녘 놀던 바닷가에 빗대서 거품 속에서 걸어나온 이미지로 쓴 시다. 세상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 상실이 있었다. ‘나’라는 존재는 세상에 나왔지만, 달팽이관 저 쪽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 있다. <덕적도>는 단순한 시가 아니다. 시간이 공간 속으로 들어와 시간화한 것이다. 한 가지 틀로 묶을 수 없는 단계, 질문의 풍경으로 넘어가 있다.”
<기압골의 집>
삼천리 금수강산 모두에 비 내리지 못하고
서해 일부 해상에만 뿌리던 빗속에서
우리집은 지붕 아래에 습관처럼 토방과
마루 그리고 밥과 감자를 삶는 부엌을
간직했다 밭과 논에 널려 있던 어둠들이 비를 피해
집으로 몰렸고 그림자가 젖은
바람도 울타리를 흔들었다 일광에 살찐
눈물들이 낮은 곳으로 흘러가고 가끔
목이 멜 때는 추녀 끝이나 살구나마 늑골 아래에
고이기도 하였다 비가 올 때는 앞바다가
더욱 가까이 다가와 숨죽였다 저물어도
환한 바다의 복판으로 눈먼 고기떼들이
몰려와 콩깻묵 같은 마을의 불빛과 낯설게
놀다간 돌아갔다 옹기종기 물살에
떠는 앞바다 섬들은 우리집 눅눅한 가족사처럼
뿌리가 후들거리고 뿌리에 뿌리를
다시 박으며 자라나는
서해 일부 해상의 여름 어느 날
내린 비는 흘러서 바다로 갔다 아무것도
가지고 가진 않았다
“어린 시절을 담은 내용이다. 우리나라는 골짜기마다 마을을 이루고 산다. ‘골짜기’들이 사실은 골짜기 속에 내건 슬픔까지 가지고 가면 좋으나 그렇지 않다. 집은 더 컴컴해진다. 이 시는 내 모습이 일부 투영된 모습이기도 하고, 내 또래의 모습이 투영되기도 했다.”
<어지러운 발자취>
-해변에서
이제 저 어지러운 발자취들을 거두자
거기에 가는 시선을 거두고
물가에 서 있던 마음도 거두자
나를 버린 날들 저 어지러운 발자취들을 거두어
멀리 바람의 길목에 이르자 처음부터
바람이 내 길이었으니
내 심장이 뛰는 것 또한 바람의 한
사소한 일이었으니
“‘발자국에 대한 이미지’가 많다. 해변은 발자국이 빠지는 길이고, 발자국이 뚜렷하지 않다. 걷다가 끝에 이르면 내 발자국은 남지 않았다. ‘허무’에 대해 일찍 알아버렸을 것이다. 발자국은 ‘공간’에 대한 걸 거두고 ‘바람이 되자’고 생각했었나 보다. 생명도 ‘바람의 일’이라고 한다. 내 호흡도 바람의 일이다. 이 기운이 끊기면 어떠한 생명도 무너진다. ‘공간을 떠나자’는 이미지와 맞물려 ‘어지러운 발자취’를 거두고 바람의 어떤 리듬이 되어 떠나자고 생각했다. 덕적도라는 시골에서 인천에 오려면, 특히 겨울에는 팔미도를 지나고, 엄청난 멀미 끝에 밤에 인천에 도착했다. 그때 불빛이 모여있는 걸 처음 봤다. ‘불빛들이 저렇게까지 모여 있구나’. 반가움과 도회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돌의 얼굴>
-하나
어느 하루 홍예문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수만 개의 돌을 쌓아 만든 홍예문 아래를 지나다가 그 많은 돌의 얼굴들 중에서 나는 한 가지 얼굴과 눈이 맞고 말았습니다 아주 가늘은 햇살로 숨을 내쉬고 들이쉬고 하는 그 가늘은 숨결 하나가 내 이마를 뚫고 들어와 가슴을 타고 발끝으로 새어 내려갔습니다 이 홍예문이 선 게 백면 남짓이니까 그 돌이 그 자리에서 그 눈빛을 쏟아낸 게 그만한 세월일 것인데 여전히 그 빛 생생하게 내 몸 속에다가 그 긴 세월의 그리움 치레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내 내 걸음은 그 자릴 지키지 못했지만 나는 그 돌로 걸어 들어가듯 어딘가로 걸어 들어가서 홍예문 아래를 지나가는 색시들이나 옷깃이 서걱이는 새아이들, 손 시리게 피어 있는 이른 봄꽃들을 바라보듯 앞바다를 바라보고 또 보곤 하였습니다 집에 와서도 바라보았습니다
얼마 지나 다시 그 자릴 지나다가 그 돌을 보았더니 웬일로 거기엔 온통 신 사탕을 문 봄바다의 얼굴이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그해 봄에 그 바다로 누가 걸어들어간 걸까요 걸어나온 걸까요 나는 홍예문을 지나면서 그 돌 틈에 난 담쟁이덩쿨이나 쑥부쟁인지 뭔지 하는 풀에 내 눈빛을 걸어두고야 그곳을 지날 수 있었습니다
<돌의 얼굴>
-둘
삭혀야 할 것들이 있어서
속이 아플 때나
지나가는 여자를 보고 갑자기
길눈이 어두어질 때
나는 홍예문으로
돌의 얼굴을 보러 갑니다
그 동안 내가 사귄 돌들은 벌써 많아서
봄바다로 들어간 사람을 본 돌 벚꽃 떨어져 허리를
다친 돌 뱃고동에만 귀를 여는 돌 속에 음악이 가득한
돌 열에 떠서 금강석을 쥔 돌
돌의 얼굴에 새겨진 별의 자국
바람의 애무
그런 것들도 봅니다
그날 하루 버리고 싶은 발길들
그런 것들도
흔들리는 어떤 돌 밑에 괴이어 옵니다
“지금은 주안, 구월동 쪽으로 번화가라 하지만 예전에는 동인천을 중심으로 사람이 많았다. <돌의 얼굴>은 내가 마주친 홍예문 이야기다. 수많은 돌을 보면서, 그 어름에 살면서 여차하면 돌멩이가 쌓여있는 걸 감상했다. ‘홍예문의 얼굴’은 송학동 홍예문 근처에 살면서 감상하면서, 돌은 영원한 것은 아니지만 주변에서 만난 가장 오래 가는 사물이다. ‘조경’ ‘조원’에 관한 책을 보면 옛사람들은 돌에 1년생 풀을 심고 영원성과 순간성을 봤다고 한다. 꽃은 피었다 스러지는 영혼의 여백 옆에 사는 인간은 겸손을 배우고, 인간의 숨이 얼마나 작은가를 자각했다고 한다. 우리가 나서 사랑하다 죽는다고 하는데 건축물 속에 있는 돌의 눈빛이 영원을 보고자 했다. 돌의 얼굴에 비춰봤다. <돌의 얼굴>에는 먼저 죽은 친구 이야기도 들어있다. ‘길눈이 어두워지는 시절’에 홍예문 돌을 보러갔는데 돌이 여러 얼굴이더라.”
“홍예문은 당시 가장 큰 토목공사였을 것이다. 중국 산동반도 쪽의 유휴 인격이 와서 공사했다고도 한다. 탄압을 받았든, 삶의 토대를 잃어버렸든 그 노동력으로 그 건축물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개항과 관련해서 개항장과 인천시내를 직선으로 연결하려는 공사였다. 그 너머가 인천항이었다. 홍예문은 인천이 세계적인 도시가 되는 데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이 홍예문 언저리에서 김구 선생도 감옥생활을 했구나도 생각하면, 인천의 도시형성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그 동네가 무척 좋았다. 홍예문을 지나 우체국까지 갔다가 버스 타고 집에 왔다. 유난히 집 이야기가 많다. 집의 생김새 등등이 나한테 이야기를 많이 해주는 듯했다. 그 동네를 무대로 살아가면서 나름 시련이 있었을 것이다.”
<송학동 1>
계단만으로도 한동네가 되다니
무릎만 남은 삶의
계단 끝마다 베고니아의 붉은 뜰이 위태롭게
뱃고동들을 받아먹고 있다
저 아래는 어디일까 뱃고동이 올라오는 그곳은
어느 황혼이 섭정하는 저녁의 나라일까
무엇인가 막 쳐들어와서
꽉차서
사는 것이 쓸쓸함의 만조를 이룰 때
무엇인가 빠져나갈 것 많을 듯
가파름만으로도 한생애가 된다는 것에 대해
돌멩이처럼 생각에 잠긴다
<송학동 2>
저 대추나무에 열린 바람 소리
다다미집 창문을 넘어 긴 담쟁이덩굴을 넘어오는 바람 소리
위안부처럼 퉁퉁 불은 구름 그림자 지나간다
성공회길 모퉁이에서 지난해 마른 코스모스가
모든 살아 있던 것들의 영혼을 보여주고 있다
봄바다야 삶은 얼마나 누추한 것이냐
봄바다에 닿기 전 다시 한번 망설여보는
봄바다에 내리는 늦은 눈발의 미약한 말을
내 무릎 관절이 알아듣고 있다
구름 그림자 따라가다가 너무 멀리 가므로 다시 오는
바람 소리
대추나무 가지 사이에 반질반질
길 내는 바람의
생쥐 같은 발길
<송학동 3>
-金宗三 訃音
1
스무 살 초겨울
늦게 잠에서 놓여나
서너 줄 부음 기사 접하고
오후에는 동인천에 나가 헌혈
차창 사이로 빠끔히 보이던 하늘
되도록
자세히 봐두려고 애썼다
버스에서 내리다가 휘청했다
어디선가 후두둘 새들 날아오르는 소리
근처 커피집에 가서 커피 마셨다
한적했다
2
그때 보아둔 하늘이
가끔 등뒤를 맴돈다
어느 날은 귀밑머리가 서늘하게 환하다
千詳炳 죽고
辛東門 죽고
두 번 헌혈이 밀렸다
그 外의 몇 번의 下棺
흰 조개 껍데기가 물에 가라앉는 것 보았는가
씰룩씰룩
내 뇌에는 실룩실룩한
흰 조개 껍질들의 下棺 자국이
몇 개 더 새겨졌다
허공중 자세히 봐두는 일이
몇 번 밀렸다
귀밑머리 쪽이 컴컴하니 무겁다
“오래된 고을은 우리에게 소중하다. 우리의 영혼과 정신을 담을 수 있고, 그 역사성으로 망명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준다는 이미지가 있다. 송학동은 100년 이상 된 돌계단이 있었다. 100년 전 사람이 바로 옆에 앉아 있었을 것 같은 상상을 했다. 신포동 일대가 크게 변하지 않는 게 다행이다. ‘내 생각의 지리부도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곳을 다니며 들었던 클랙숀 소리, 음악소리… 내 상상력이 늘 그 자리에 대입돼서 입력된다. 예를 들면, 프란츠 카프카가 쓴 글을 읽어도 ‘송학동 어디에서 읽었던 그 장면’이 함께 나온다. 아마도 각자 그런 공간이 있을 것이다. 시의 독자로서, 어느 역사책의 장면으로서 상상력은 영원성에 대한 모티브다. 이런 것들은 구체적인 공간에서 얻는 게 아닐까.”
“아주 시간 단위가 크면 상상력이 커질 수 있고, 먹고 살고 지지고 볶는 데서 초연해질 수 있다. 학문적으로 뭔가를 이해하려면 많은 걸 알아야 하는데, 시는 꿰뚫을 수 있는 장르라는 게 매력적이다. 사실 상상력은 한두 단계를 넘으면 물리적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 시 쓰는 사람들은 아주 논리적인 데가 많다. 감성적이지 않고 치밀하다. 우리가 살면서 높은 수준의 물리학을 읽을 필요는 없으나 인문학 책을 읽으면 많은 게 보인다.”
저작권자 © 인천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