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미도가 한눈에, 석정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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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도가 한눈에, 석정루
  • 유동현
  • 승인 2018.09.17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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⑩ 석정루


낡은 고교 앨범은 추억 저장소이다. 까까머리와 단발머리를 한 그대가 있고 분식집 문턱을 함께 넘나들던 그리운 친구들도 있다. 3년간 발자욱을 남긴 모교의 운동장과 교실의 모습도 아련하다. 빛바랜 사진첩에는 ‘인천’도 있다. 교정에 머무르지 않고 과감히 교문을 나서서 사진사 앞에서 졸업앨범 포즈를 취했던 그대들 덕분에 그때의 인천을 ‘추억’할 수 있다.
 
 
60년대 전국 각지 전망 좋은 곳에는 팔각정이 유행처럼 섰다. 마치 기성품 같았던 팔각정(八角亭)은 지붕을 여덟모로 지은 정자(亭子)다.
인천 자유공원에도 1966년 6월 23일 팔각정이 세워졌다. ‘석정루((石汀樓)’의 이름을 지닌 이 팔각정은 응봉산이 바다로 내쳐 달리다 급정거를 하며 깎인 지점에 그림처럼 서 있다. 2층짜리 석정루는 당시 목재업과 조선소로 큰돈을 벌었던 이후선 씨가 지어서 기증했다. 30여 년간 자유공원을 산책하며 건강을 지켜온 데 대한 보은이었다.

 
   <1967년도 동인천고 앨범. 건립되자마자 찍은 사진이다.>

 
석정루가 세워지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학생들도 졸업 앨범에 담길 원했다. 이곳에서 보면 월미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후선 씨는 월미도에서 출생했다. 그곳을 바라 볼 수 있는 공원 서쪽 언덕바지를 누각의 위치로 정했다.
누각명은 주변의 강권으로 자신의 아호를 따 ‘석정(石汀)루’다. 당대에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친 서예가 동정 박세림 선생이 현판 글씨를 썼다.

 
<1976년도 인성여고 앨범. 박세림 선생이 쓴 현판이 뚜렷하다.>
 

하마터면 이 팔각정은 없어질 뻔 했다. 2010년 인천시가 ‘각국공원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존스톤별장을 복원할 계획을 세웠다. 원래 자리에 한·미수교100주년 기념탑이 차지하고 있어 마땅한 부지를 물색하던 중 석정루가 있는 터를 점찍었다. 기증자 가족이 반대했고 복원 사업도 흐지부지 됨으로써 석정루는 월미도와 계속 마주하게 되었다.
  
유동현 / 전, 굿모닝인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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