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매립 전 인천과 미추홀구 - 김용하 / 인천도시연구소 소장
- 항만 건설과 임해공업단지
인천의 해안 매립은 개항에 이어 청일전쟁 후 본격화되었다. 1899년 5월 일본인에 의해 준공된 현 중구청 앞 해안동 해안가 매립이 그것이었다. 길이 258m, 폭 57m의 4천여평 규모로 물량장, 창고 등으로 이용됐다.
이 후 120년이 지난 현재, 인천 중구 면적의 81%가 매립지가 될 만큼 해안 매립은 꾸준히 계속돼 왔다. 1966~1974년에는 인천항 시설 현대화 사업으로 도크 건설공사가 대규모로 진행돼 현재의 인천항 모습을 갖게되었고, 남항 (준설토)투기장까지 조성됐다. 굴곡진 이 일대 해안선이 단 기간에 직선화된 것이다. 월미도는 1924년 콘크리트 제방으로 인천역과 연결됐는데, 6.25전쟁 직후 제방 옆으로 북성동 공장부지가 조성되면서 육지화됐다.
인천 동구 화수부두 일대는 일제 강점기와 1970년대 초 갯벌을 매립해 임해공업단지가 조성됐다. 현재의 현대제철, 두산인프라코어, 일진전기 자리다.
북성·만석·화수동 해안가 공장부지 매립 과정은 1883년 개항 후 1995년까지 5단계로 나눌 수 있다. 개항 후 1900년까지 초기에 매립한 곳은 인천역 일대 차량기지와 배다리 습지지역, 중구청 앞 해안동 등이다.
1900년부터 1910 한일합방 때까지는 동일방직, 조선목재(현 만석비치타운) 등의 자리가, 1911~1931년에는 인천항 1부두, 대한제분 일대, 그리고 신흥동 옛 옐로하우스 일대가 매립됐다.
일제가 군수공장을 본격적으로 짓던 1940년대는 동국제강, 일진중공업(일진전기), 대주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한국유리, 월미도 앞 대성목재, 선창산업, 대한제당, 대한사료 자리 등지가 매립됐다. 1950년 이후 현대제철, 두산인프라코어, 삼미물류창고, GS탱크, 대한사이로, 월미도 주변과 소월미도 사이 등지가 매립됐다.
- 주안염전과 공업단지
우리나라 최초의 천일염 생산지인 염전은 1907년 주안염전에서 시작됐다. 이후 남동염전(1925년), 조선염업(1929년, 토지금고(낙섬) 앞), 소래염전(1935년)이 조성됐다.
주안염전은 1965년부터 1974년까지 주안공단, 공구상가로 매립됐다. 또 남동염전은 남동공단으로, 소래염전은 소래습지공원과 아파트단지로 변모했다.
- 송도유원지와 인공해수욕장
1970년대까지 송도유원지는 국내 유일한 유료 해수욕장으로 수도권 주민의 인기가 높았다. 임해 관광지이자 전국 유명 해수욕장 중 한 곳으로 이름을 떨쳤다.
바닷물을 끌어들여 해수욕장을 조성한 송도유원지는 2011년 8월 폐장됐다. 유원지 앞 바다에 떠있던 아암도는 이때 개설된 해안도로와 맞붙어 육지화됐다. 이듬해 9월 송도유원지 해수욕장이 매립되고 유원지 일대는 중고자동차 매매단지가 되었다. 현재 이곳은 관광단지 및 택지로 개발중이다.
- 용현·학익 공업지역 및주택지 조성
수인선이 지나던 미추홀구 용현·학익동 염전 '조선염업 2지구'는 1937년 인천부로 매각돼 조선총독부로부터 매립이 허가되었다. 이 일대는 매립돼 동양제철화학, 자동차정비단지, SK저유소, 대우전자 등이 들어섰다. 인하대 건너편 홈플러스 자리도 이 매립지다.
인하대 앞 도로(소성로)를 경계로 이때부터 인하대 정문 남쪽으로 매립된 지역은 공업지대(학익동)가 됐다. 일제 강점기 경성화학, 조선중앙전기, 히다치제작소 인천공장 등이 있던 자리로 해방 이후 동부한농(옛 일본농약), 청구화공, 강원아스콘, 동일레나운이 들어섰다.
- 사라진 낙섬을 찾아서
1961년 4월 고시에 낙섬은 미추홀구 용현동에 있는 섬(지명종류)으로 나온다. 표기 지명은 낙섬으로 낙도의 한글표기다.
낙섬은 1861년 대동여지도에 능허대 앞 원도(猿島)로 표기돼 있다. 이후 1903년 지도에는 납도(納島)로 다시 1935년 지도에는 원도로 복귀해 등장한다. 1963년 도시계획도(초안)부터 낙도(落島), 소원도(小遠島)로 병기됐다.
현재 낙섬과 연결되는 미추홀구 용현5동 금호2차아파트 앞 용현갯골 상부(육지부)는 매립 공사가 진행중이다. 1967년 항공사진까지 낙섬은 그 모습을 갖추고 있으나 이후 매립지로 둘러싸여 흔적을 찾기 힘들어 진다.
1930년대만 해도 미추홀구 중 숭의동, 용현동, 학익동은 해안선을 끼고 있었다. 그러나 계속된 해안 매립으로 미추홀구 안에서는 이곳 용현갯골만이 바다와 인접한 곳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