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원협 왜 이래?... 조합원 제명·자격박탈 논란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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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원협 왜 이래?... 조합원 제명·자격박탈 논란 확산
  • 최태용 기자
  • 승인 2023.12.15 15: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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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 농사 짓는데 '경작 면적 부족'
소명 서류 냈지만 검토 없이 자격상실 조치
조합원들 "조합장과 마찰 빚어온 조합원 찍어내기"
원협 "적법하게 지격상실 처리, 소명절차 따로 없어"
인천 동구에 있는 인천원예농협 본점. 사진=인천in
인천 동구에 있는 인천원예농협 본점. 사진=인천in

 

대법원 판결로 조합원 자격을 인정받은 70대 농민을 석연치않은 이유로 제명시킨 인천원예농협(원협)이 다른 조합원들도 여럿 조합원 자격을 박탈한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조합원 자격이 박탈된 일부 당사자들은 조합원 자격상실 통지서를 받고 소명하는 문서를 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인천원협은 지난달 2일자로 14명의 조합원을 조합에서 탈퇴시켰다고 15일 밝혔다.

더 이상 농사를 짓지 않거나, 농사 규모가 규정에 미달하거나, 농업경영체 등록이 되지 않은 경우 등이다.

원협 조합원 가입 조건은 노지 5,000㎡(약 1,500평)이나 하우스 2,000㎡(약 600평)에서 농사를 지어야 한다.

또 농업경영체 등록은 농사를 생업으로 한다는 일종의 증명서로,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발급한다. 농지 주소와 규모, 실제 경작 규모 등이 기재돼 있다.

앞서 조합은 지난 10월 18일 조합원 자격 상실 대상자들에게 통지서를 보냈다. 통지서에는 이의가 있은 경우 같은 달 말까지 조합원 지위 유지를 위한 입증서류를 조합에 제출해달라는 말도 있었다.

통지서를 받은 14명 가운데 5명은 실제로 농사를 짓고 있고, 조합원 지위 유지 의사가 있어 관련 서류도 제출했지만 자격 상실 통보를 받았다.

 

인천 남동구 도림동에 있는 수곡농원 비닐하우스. 하계숙 씨는 2,000㎡가 넘는 이곳에서 아들과 함께 귤·샤인머스켓 등을 재배하고 있다. 사진=인천in
인천 남동구 도림동에 있는 수곡농원 비닐하우스. 하계숙 씨는 2,000㎡ 규모 하우스에서 아들과 함께 귤·샤인머스켓 등을 재배하고 있다. 사진=인천in

 

하계숙(78·여)씨의 경우 아들 김동석(48)씨와 함께 남동구 도림동 수곡농원에서 1만9,644㎡ 규모의 과수원과 하우스에서 배·귤·샤인머스켓 등을 재배하고 있다.

농업경영체 등록증에는 하 씨가 경영주, 아들 김동석 씨가 경영주 외 농업인(가족 농업종사자)로 등록돼 있다.

하 씨의 자격 상실 이유는 면적 부족이다.

60년 가까이 농사를 지어 온 하 씨는 "하나 바뀐 것 없이 농사를 짓고 있는데 갑자기 조합원 자격이 상실돼 난감하다"며 "과수원은 겨울을 잘 나야 하는데 당장 내년 농사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농협은 조합원들에게 작물 모종과 비료, 각종 기자재를 싼 값에 우선적으로 공급한다. 조합원 자격을 잃으면 이런 혜택도 받지 못하게 된다.

하 씨는 1995년 10월 남편 고(故) 김상광 씨와 함께 농협중앙회의 새농민 인천 1호로 선정되기도 했다. 새농민은 영농 과학화와 협동화에 앞장선 농가에 부여하는 일종의 상이다.

원협 창립멤버이기도 한 그는 1999년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부터는 아들과 함께 과수원을 지키고 있다.

 

1995년 10월 9일자 농민신문 스크랩. 하계숙 씨와 남편 고(故) 김상광 씨가 농협중앙회에서 선정한 새농민으로 소개되고 있다. 사진=인천in
1995년 10월 9일자 농민신문 스크랩. 하계숙 씨와 남편 고(故) 김상광 씨가 농협중앙회에서 선정한 새농민으로 소개되고 있다. 사진=인천in

 

남매가 조합원 자격을 잃은 사례도 있다. 남동구 수산동에서 배 농사를 짓는 A씨는 남동생과 함께 자격을 잃었다.

농업경영체 등록서의 경작 면적이 조합원 기준인 5,000㎡에서 660㎡(약 200평)가 모자란다는 이유였다.

그는 실제 경작 면적이 1만㎡가 넘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서류를 기한 안에 원협에 제출했으나 남동생과 함께 탈퇴 처리됐다.

A씨는 "원협은 현장에 나와보지도 않았다. 일부 농가만 조사해놓고 전수조사를 했다고 주장한다"며 "그동안 이기용 조합장의 조합 운영에 문제를 제기한 조합원들을 골라 보복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원협 대의원 출신인 인천의 한 농민은 "지금 원협이 들이대는 잣대를 모든 조합원에게 적용하면 3분의 1은 자격을 잃을 것"이라며 "조합장과 마찰을 빚은 일부 조합원들을 찍어내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출자로 만들어진 단체"라며 "이런 방식으로 조합원을 내쫓는다면 조합에 미래는 없다"고 꼬집었다.

 

A씨가 가족과 함께 경작하는 남동구 수산동의 배 과수원 모습. 낙과를 막기 위한 그물망이나 나뭇가지 지지대 등이 낡지 않아 농사를 짓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인천in
A씨가 가족과 함께 경작하는 남동구 수산동의 배 과수원 모습. 낙과를 막기 위한 그물망이나 나뭇가지 지지대 등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인천in

 

원협은 적법한 절차에 맞춰 자격상실 조치를 취했다고 반론을 펴고 있다.

원협은 지난 6월~10월 전체 조합원 360여명을 대상으로 영농실태 조사를 진행했으며, 농업혐동조합법에 따라 매년 한 차례씩 실시하는 조사였다고 밝혔다.

원협 관계자는 "조합원 자격은 상시 유지돼야 한다. 농업경영체를 나중에 만들었다고 자격을 인정할 수 없다"며 "자격 상실은 당사자 소명 절차가 따로 없다"고 말했다.

이어 "조합원을 탈퇴시키고 가입시키는 일은 원협의 일상 업무"라고 했다.

개별 조합원들의 탈퇴 이유와 조합원 자격 회복 방법을 묻는 질문에는 "내부 업무, 개인 정보와 관련된 내용이라 말할 수 없다"고 답했다.

일부 조합원들 골라 탈퇴시킨 것이라는 A씨 주장에 대한 반론을 듣기 위해 이기용 조합장에게 여러 차례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보냈으나 답이 없었다.

반면 농협중앙회는 원협과 생각이 달라 보인다.

최근 하계숙 씨는 농협중앙회에 조합원 탈퇴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민원을 넣었다. 농협중앙회는 민원 답변을 통해 "농업경영체 등록확인서에 공동경영주나 경영주 외 농업인으로 등록된 경우라도 경영주 각각이 독립적으로 경영한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조합원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하 씨와 A씨 등은 조만간 농협중앙회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농림축산식품부에 조합원 지위를 다시 인정받기 위한 민원을 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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