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상 / 인천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작년 인천녹색연합에 이어 올해 인천환경운동연합이 창설 30주년을 맞는다. 기념하는 행사를 앞두고 초창기 행동한 분들과 추억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 간사와 운영위원, 집행위원, 그리고 의장으로 활동한 선후배, 그리고 회원으로 행동한 시민들이 모였다. 어려웠어도 소명 의식으로 의기투합하던 시절의 보람과 어려움을 회고하면서, 30년 이후의 인천 환경을 걱정하는 시간을 가졌다.
노동운동 이외에 이렇다 할 시민운동이 싹트지 않던 인천에서 환경운동은 절박한 모험이었다. 중앙정부에 볼모가 되어 온갖 위험시설이 집중되는 지역이건만, 시민에게 환경운동은 생경했다. 거리에서 색다르게 외치는 활동가를 어색하게 바라보는 분위기에서 흔쾌히 가입하는 시민이 드물었고, 행동을 지원하는 젊은이에게 쥐꼬리 같은 활동비도 제대로 지급하지 못했다. 출세를 위한 희망고문도 아닌데, 소명 의식으로 행동하는 활동가에게 미안했다. 3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충분치 않다. 국내에 사무국을 낸 해외 환경단체에 비할 바 못 된다. 1994년 12월, 부평의 작은 사무실에 집기를 갖추자마자 굴업도 핵폐기장을 막으려 거리로 뛰어나간 환경운동연합은 용케 버텼다.
활동가와 회원의 헌신으로 부단히 부딪힌 30년, 인천의 환경은 나아졌는가? 확신하기 어렵다. 핵폐기장을 막았어도 영흥도의 화력발전소는 막지 못했다. 갯벌은 거듭 매립되었고 녹지는 위축되었다. 실패로 이어진 반대 운동으로 실망이 쌓였지만, 보람도 컸다. 내일을 건강하게 만들자는 의미로 시민과 같이 어울린 행동은 재미와 감동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노력에 비해 회원은 눈에 띄게 늘지 않았다. 시민사회에 환경운동의 가치를 제대로 심지 못했는지 모른다. 어려운 과제가 남은 셈이다.
환경운동을 멀리서 바라보는 시민은 반대만 한다고 오해할 때가 많다. 대안을 이야기하라고 부탁하기도 하지만, 환경단체가 대안을 말하지 않는 건 아니다. 당장 눈앞에 벌어지는 참상, 장차 벌어질 위기를 미리 막아야 하기에 절박한 마음으로 거리와 광장에 목소리를 높이고 성명서 작성과 기자회견에 몰두하지만, 전문가와 토론하며 의견을 제시하고 공청회에 참여해 대안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환경단체는 시민의 성원으로 움직이는 시민단체이지 연구비와 연구시설을 갖춘 연구기관이 아니다. 전문성과 시간이 부족하므로, 분명한 인식을 바탕으로 대학과 연구소의 전문가에게 합리적 연구를 촉구하는 시민단체의 책무를 다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그 결과가 아쉬울 때가 많다.
환경단체도 시민단체인 까닭에 시민이 주도해야 힘을 받는다. 활동가가 행동에 능동적인 시민을 도울 때 환경단체는 보람과 자부심이 생긴다. 독일을 대표하는 환경단체 ‘분투’는 전문가의 지원을 받으며 GMO를 발붙이지 못하게 행동했다. 100만 이상의 시민이 회원이 참여하기에 가능한 성과였다.
어떤 가공식품을 특정한 '분투'는 언제 어느 항구로 수입한 농산물인지, 수출국과 농장이 어디인지, 어떤 씨앗으로 어떻게 생산했는지 파악한 뒤, 해당 기업에 GMO 확인을 요구했다. 숨기거나 거짓으로 발표하면 분투는 당장 검증에 들어갈 것이고, 100만 회원은 이웃과 불매운동에 나설 거라는 걸 기업은 잘 안다. 해당 기업은 GMO 포기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독일의 핵발전소가 모두 폐쇄된 이유와 비슷하다. 영국을 비롯해 유럽 전역에 기후행동에 적극적인 이유가 그렇다.
환경단체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제 인천시는 중앙정부의 압력에 굴복하고 분별없는 개발에 나서거나 혐오 시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지방자치가 분명해졌고 환경단체의 행동이 뜨거운 만큼 시민사회의 의식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인천을 물론 대한민국과 세계에 드러난 환경문제는 오히려 전에 없이 심각해졌다. 미래세대의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위기와 생태위기가 그렇다.
돌이키기 어려워진 기후위기는 일부 운 좋은 후손에게 생존을 허락할지 모르지만, 생태위기는 다르다. 지층에 기록된 멸종의 역사에서 보듯 예외가 없다. 시민의 적극적 행동이 절박한데 현실이 발목을 잡는다. 위기를 인식해도 화석연료 기반으로 형성된 삶을 거부하지 못하는 시민은 선뜻 나서지 못한다. 그러므로 환경단체는 지난 30년보다 훨씬 힘겹고 책임감 있는 과제를 떠맡아야 한다.
위기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해지면 두려워진 시민은 환경운동에 나서지 못한다. 아비규환에 빠지기까지 얼마나 남았을까? 따지지 말자. 환경단체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시민과 행동해야 한다. 미래세대 생존을 위한 행동에 거리낄 일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환경단체든 시민이든 힘들면 외면하고 싶다. 환경운동에 재미와 감동이 빠지면 안 된다.
일찍이 철학자 스피노자는 “내일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겼다.”라는 말을 남겼다. 위기의 징후가 다가올수록 환경단체는 미래세대를 위한 사과나무를 준비하고 내일을 걱정하는 시민과 심어야 한다. 30년 맞은 인천의 환경단체는 결의를 다졌다.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