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작가, 노동자 등 시민들 모여 공연과 낭독 등 진행
2022년 12월 25일,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의 작가 조세희씨가 세상을 떠났다. 세상이 온통 밝게 빛나고 사랑으로 가득한 것처럼 느껴지는 크리스마스에, 거짓말처럼.
그가 떠난 지 2년이 된 올 해 25일 저녁 6시, 시민모임 ‘소설가 조세희선생을 추모하는 인천사람들’이 주최한 추모 행사가 열렸다. 장소는 인천 동구 화수동에 있는 미문의일꾼교회로, 과거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자리다.
이 곳이 ‘난쏘공’의 등장인물인 영희가 다닌 ‘노동자교회’다. ‘난쏘공’의 배경인 낙원구 행복동과 은강시 자체가 인천 동구 만석동 일대를 묘사한 것임은 잘 알려져 있다. 영희가 다닌 ‘은성방직’도 ‘동일방직’ 공장이다. 그래서 ‘난쏘공’은 소설이면서 동시에 과거 인천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는 매개이기도 하다.
교회 건물 안팎으로는 한영미 작가의 그림이 전시됐다. 작가는 ‘난쏘공’의 영희를 떠올리며 그림을 그렸다며 “산업화와 도시화로 점철된 70년대라는 풍파 속에서 집과 가족의 해체를 온 몸으로 맞고 있는 이들의 모습은 오늘날에도 여전하게 다가온다. 제각기 길을 잃고 만만치 않은 삶의 무게로 무리짓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그림자, 그 얼굴들을 표현하려고 애썼다”고 했다. ‘어느 여성 노동자의 길’이라는 글자가 나란히 붙어 있어 여운을 더했다.
입구에 장식된 크리스마스 트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탄성이 가득했다. 여기저기서 모인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의 온기로 예배당은 따뜻했고, 캄캄하고 차가운 바깥 세상과 잠시 단절된 기분이 들었다.
추모의 밤 행사는 소설가 김경은 씨의 사회로 진행됐다. 인천작가회의 김영언 지회장이 조세희 작가의 발자취를 소개하고, 문학평론가 김명인 씨가 ‘작가 조세희의 문학세계’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싱어송라이터 강헌구 씨의 노래 공연이 중간 중간 스며들어 마음을 흔들었다.
네 번의 작품 낭독 시간이 있었다. 시인 금희 씨, 소설가 황경란 씨, 대건고등학교 심재민 학생이 각자 낭독을 했고, 마지막으로 동일방직 해고노동자인 석정남 씨, 정명자 씨가 자신을 소개하며 소설 중 일부를 소리내어 읽었다.
“영희는 노동자들 틈에 끼어 앉아 노래를 불렀다.
아침에 솟는 해는 우리의 동맥 / 여명에 종 울려서 지축을 돌린다
쉬지 않고 생산하는 영원한 건설자 / ... 아, 우리들은 노동자”
낭독은 여기까지였다. 하지만 그 순간 석정남 씨와 정명자 씨는 영희가 되었다. 낭독이 아니라 노래였다. 노래는 마지막 소절까지 이어졌다. 자신들이 불렀던 옛 투쟁가 몇 가지를 더 불렀다. ‘난쏘공’에 나오는 영희의 작업 환경은 석정남 씨가 조세희 작가와 인터뷰를 통해 진술한 것을 토대로 작성되었다고 하니, 이 장면에서 부르는 영희의 노래가 그들의 목소리임은 명확했다.
‘난쏘공’은 1978년에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올 해 2월 기준으로 325쇄를 찍고 판매량 150만부를 넘겼다. 하지만 정작 조세희 작가 본인은 이 책이 아직까지도 유효하게 읽히는 것에 슬퍼했다. 다시는 읽지 않아도 되는 책이기를 바랐다.
“내가 ‘난장이’를 쓸 당시엔 30년 뒤에도 읽힐 거라곤 상상 못했지.
앞으로 또 얼마나 오래 읽힐지, 나로선 알 수 없어.
다만 확실한 건 세상이 지금 상태로 가면 깜깜하다는 거,
그래서 미래 아이들이 여전히 이 책을 읽으며 눈물지을지도 모른다는 거, 내 걱정은 그거야.”
(한겨레신문 이세영 기자와의 인터뷰 중, 2008)
동시에 조세희 작가는 이런 당부를 했다.
“절대 절망에 빠지지 마십시오. 절대 냉소주의에 빠지지 마십시오.
후배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을 피하지 마십시오.
현대 사회에서 모든 자본들은 사람들에게 바보가 되라고 강요합니다.
냉소주의는 사람의 기운을 빼앗아 갑니다. 절대 절망에 빠지지 마십시오. 희망을 가지고 사십시오.
전 여러분 세대에 많은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기념문집 『침묵과 사랑』 헌정식 및 낭독회에서, 2008)
세월이 지나도 당부와 응답이 계속 오고 간다. 올 해 크리스마스에는 많은 젊은이들이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외쳤다. 더 많은 노동자와 연대했고, 남태령에서 가로막힌 농민들과 밤을 샜다. 크리스마스에 떠난 이의 선물일까, 그에게 보내는 선물일까. 우리는 아직 동시대에 있다. '난쟁이'가 표준어임에도 이 소설 제목만큼은 '난장이'로 표기하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