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열고 살게 하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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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열고 살게 하니 감사합니다"
  • 배천분
  • 승인 2012.05.1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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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변해명 선생님 영전에 드리는 글


수필가 변해명(邊海明) 선생님께서 지난 5월 8일 새벽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나셨다. 수필과 수필이론, 동화, 그리고 우리 교육계에 큰 공헌을 하신 선생님의 떠남에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이 없다.


9일 서울대학교 영안실에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맞이하는 선생님의 모습은 생전 그대로처럼 우리를 반겼다.


변해명 선생님은 1939년 3월 30일 서울에서 출생해 중등학교 교장으로 교직에서 퇴임했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논문으로 '정지용 시 연구 -물에 나타난 이미지를 중심으로'를 낸 바 있다

 
1975년《한국문학》에 수필 '산처럼 사노라면'과 1976년《소년 중앙》에 동화가 당선되어 문단 활동을 하셨다. 부평문학회 2대 회장과 대한교원총연합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고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회장,《한국수필》고문, 도봉문화원 수필 강사 등으로 활약했다.

 

수필집 『먼 지평에』,『외로운 영혼에 불을 밝히고』,『그리운 곳의 빈자리』,『정바라기』,『다가오는 목소리』,『숨겨진 시간의 지도』, 기행수필집 『길 없는 길을 따라』,『옛 그림 풍속에세이』,『잊혀져가는 우리 풍습』, 수필선집『그림자 춤』,『주인 없는 꽃수레』 4인 수필집『시간의 대장장이』등 10권의 수필집을 내셨다.

 
현대수필문학상(1989). 한국수필문학상(1996). 한국문학상(2009). 월산 수필문학상(2011)을 수상했다.


유고작이 된 수필집《우주목과 물푸레나무》(2012)는 언어를 '극세공품'처럼 다루고 있다. 글 안에서 표현들을 날카롭게 다듬고 어긋나는 두 요소를 긴장감 있게 배치함으로써 수필의 언어적인 아름다움을 더했다. 또한, 이런 수필 안에 삶의 원천적인 상처나 아픔들을 담아 삶을 의미 안에서 재구성한다.

 
1부는 나무, 2부는 이메일 서신, 3부는 잊혀가는 것들을 위한 예찬, 4부는 그리움, 5부는 예찬으로 되어 있으며 부록으로 작가 스스로 쓴「이상의 수필 『산촌 여정』과『권태』의 세계」가 수록되어 있다.


김열규 평론가는 "변해명 선생님은 정감에다 교훈을 담는 기술이 아주 뛰어난 작가다. 이념을 감각에 무쳐서 한 쟁반 잘 차려 내놓는 솜씨가 아주 그럴 듯한 작가다. 그것은 피와 살로, 살갗이며 뼈마디로 삶을 진맥하면서 삶을 살아온 내력을 글이 담고 있기 때문이다."라며 '삶의 굵고 잔 마디마디를 감각으로 생각하고 정감으로 사념해 온 기나긴 편력을 글에다 담아내기 때문이다"라고 평론했다.



작가의 말에서 변 선생님은 "하루를 열고 살아가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란 기도를 하면서 일 년 넘게 병마와 싸우며 지내셨다.

"내가 건강을 잃기 전 이렇게 감사기도를 바친 일이 없다. 건강을 잃고 나니 내 앞에 열리는 그 하루하루가 감사하고 헤프게 살아온 어제들이 후회스럽기까지 하다. 내 삶의 다른 한 자락, 지금까지 써온 글들이 내게 위로를 준다."


선생님은 <나의 수필 쓰기>에서 말한다.

"굳이 수필이 무형식이라면 어느 형식의 글도 수필로 수용할 수 있다는 의미도 되겠다. 무형식을 적절히 이용한다면 시의 형식을 빌어 시보다 아름다운 수필, 소설의 형식을 빌어 소설보다 더 진실을 담는 수필을 쓸 수 있으니 말이다. 소설이 개연성 있는 허구의 그릇에 인생의 진실을 담는다면 자기 고백이란 체험의 그릇에 담기는 수필이 독자들에게 더 큰 감동과 친근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그릇으로서의 체험이 사실의 전달이 되어서는 안 되고, 내가 나를 밖에서 만나는 작업이어야 하고, 또 다른 하나의 세계로 확대시키고, 확대된 자기 안에 세계를 담는 그릇이 되었을 경우이다. <중략>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일상적인 사실들, 누구나 느낄 수 있는 평범한 사실들에 새롭게 아름다운 가치를 발견하게 될 때, 즉 한 송이의 평범한 꽃이라도 그 꽃으로 하여 지금까지의 그 꽃의 세계를 변화시키는 미적 가치의 재발견이 주어질 때 글을 쓰게 되는 경우가 된다."


수필계의 큰 별이 진 하루가 무척이나 길고 지루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진심으로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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