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새끼들이 불쌍해서 으트카나?
상태바
남은 새끼들이 불쌍해서 으트카나?
  • 김인자
  • 승인 2018.10.24 08: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34) 권정생의 <엄마 카투리> 생각



"어이구~~맛나다."
"맛있어? 엄니? 맵지 않아?"
"안 매와. 아주 맛나다. 근데 너는 왜 안 먹냐? 같이 먹자."
"나는 아까 많이 먹었어.엄니 국물 드셔감서 천천히 꼭꼭 씹어서 드셔. 목메이지 않게."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가을엔 뭘 먹어도 맛있다는 말도 말이 살찌는 계절이라는 말도 다 옛말인가 보다. 아니면 나에게만 예외인 말인가? 뭘 먹어도 맛있다는 풍요의 계절인 가을 날 난 뭘 먹어도 맛이 없고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다. 영 밥맛이 없다. 다만 먹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으니 먹는 것일 뿐 먹지 않아도 배고픈 줄 모르겠다 요즘. 이거 저거 먹지 않아도 한 알만 먹으면 일상생활하는데 아무 지장없는 약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매순간 한다. 상용하는 약은 먹어야겠기에 요며칠 빈 속에 약만 먹었더니 속이 너무 쓰려서 외식을 해보기로 했다. 이럴 때 "나랑 같이 밥 먹을래요?"하는 벗이 가차이 있으면 참 좋으련만.
 
집에서 혼자 밥을 차려 꾸역꾸역 먹고 싶지는 않아서 여기저기 휘휘 돌아다니다 딱히 먹고 싶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닌지라 결국 들어간 곳이 집근처에 있는 상가 분식점.
은행업무 보고 엄마 치매약 타러 병원갔다가 2년마다 받는 자동차 정기검사에 이래 저래 바삐 돌아다니다보니 가뜩이나 입맛도 없는데 밥때까지 놓쳤다. 어차피 늦은 점심, 아침밥까지 거르고 돌아 다닌 터에 집에 가서 청승맞게 혼자 밥을 차려먹고 싶지 않았다. 기분도 그렇고해서 풀메이크업 화장에 옷까지 신경써서 입었기에 파스타집에 가볼까도 생각해봤으나 뭔가 매콤한 것이 입에서 땡겼다. 그렇다고 양식집에 가기도 일식집 한식집에 가기에도 시간이 애매했다. 심계옥엄니가 주간보호센터인 치매센터 사랑터에서 오실 시간이 한 시간도 채 남지않은 터라 멀리 갈 것 없이 집근처에 있는 분식점에 갔다. 혼밥인데다 부끄럼쟁이인 탓에 분식점 여주인이 나랑 같은 아파트 같은 동 윗층에 사시는 분이셔서 맘 부담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서 와요.어? 왠일이에요? 김 선생님이?" 여주인이 놀란 눈으로 묻는다. 요란한 화장을 하지 않아도 워낙 인물이 고우신 분이라 스카프 한 장을 머리에 둘렀을 뿐인데 이 가을날 곱게 물든 단풍잎을 닮았다. 참 예뻤다. 예쁜 가을을 목에 두르고 여주인은 국수를 삶아 찬물에 헹궈 건져내고 있었다. 잘 익은 김장김치를 송송 썰어 깨소금 솔솔 뿌려 비빔국수를 하시려나? 갑자기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매콤한 비빔국수. 울 심계옥 엄니가 참 좋아라하시는 음식인데 ?
 
"에구, 으트카나? 이 추운데 에미 잃은 새끼들 불쌍해서 으트카나?"
권정생 선생님이 쓰시고 김세현 선생님이 그리신 그림책 <엄마 카투리>를 읽는 동안 우리 심계옥엄니는 "으트카나?~ 남은 새끼들이 불쌍해서 으트카나? 에미 죽어서 으트까나? 새끼들이 불쌍해서 으트카나?"를 열 번도 더 넘게 말씀 하셨다.
"불쌍해서 으트카나? 남은 새끼들은 불쌍해서 으트카나?"
열 한 번째 으트카나~ 불쌍해서를 막 말씀하시려던 심계옥엄니와 내 눈이 허공에서 딱 부딪쳤다.
그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우리 심계옥엄니의 양손을 딱 모아 그러쥐었다. 그러자 심계옥 엄니 내 얼굴 한 번 쳐다보시고 또 <엄마 까투리>그림책 쳐다보시며 "불쌍해서 으트카나? 에미 죽고 남은 저 어린 새끼들이 불쌍해서 으트카나?"를 되뇌이신다.

그리고 또 엄니가 12번째 '새끼들이 불쌍해서 으트카나?'를 막 말씀하시려던 그 찰나에 내가 엄니보다 먼저 말을 했다.
"엄니, 죽은 까투리 에미는 안 불쌍해? 남은 새끼들만 불쌍해?"
"그럼 새끼들이 불쌍하지. 죽은 에미는 죽으믄 그만이지. 불쌍하고 말고도 없지. 죽으믄 다 고만이지. 에미 없이 고아가 된 남아있는 새끼들이 불쌍한거지."
"엄니, 산 사람은 어떻해든 다 살게 되있어. 죽은 사람만 불쌍한거지. 아니 죽은 어미꿩만 불쌍한거지. 새끼들이야 저렇게 형제도 많고."
"어쨋든지간에 저 어린 것들이 뭘 안다고 죽은 지에미 곁을 떠나지 않고 죽은 지에미 곁에서 뱅뱅도냐 그래? 짐승도 참 착하다. 저러니 지 에미가 죽어서 눈을 감겠냐? 저 어린 새끼들 놔두고 저 세상으로 가지도 못 가겠다. 저 까투리 에미맘이 내 맘같구나 ?"
 
"비빔국수도 포장되요?"
"언제 드시게?"
"두 시간쯤 뒤에요."
"에구. 비빔국수는 바로 삶아서 고자리에서 바로 비벼서 드셔야지 시간 지나믄 퍼져서 못 먹어요."
"예."
"국수드시게? 지금 삶아서 바로 비벼주께요."
"아, 제가 먹을게 아니라 엄니드리려고요."
"에구, 엄니보다 김 선생이 잘 먹어야지요.어째 볼 때마다 더 마르는거 같어. 안 그래도 쪼끄만 얼굴이 더 쪼끄매졌어. 어무니꺼는 내가 양념장을 따로 만들어줄테니까 집에 가서 국수만 삶아건져서 엄니 잡수실 때 바로 비벼서 드려요. 그러니 엄니 드실 걱정 말고 김 선생님이나 맘편히 드시고 가요.
남이 해준 밥만큼 살 오르는 것도 없잖어 주부들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