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표류 항운·연안APT 이주, 권익위 조정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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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표류 항운·연안APT 이주, 권익위 조정안은?
  • 배영수 기자
  • 승인 2019.04.08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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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현안점검] 올 상반기 조정안 마치는 이주 대책



중구 연안아파트의 한 동 모습. 이주를 확정하고도 실행이 되지 않으면서, 오랜 기간 건물관리에는 손을 놓고 있다. ⓒ배영수
 

국민권익위원회가 심각한 생활환경의 피해를 당하고 있는 중구 항운·연안아파트의 이주 문제에 대해 올해 상반기 조사를 마치고 조정안을 예고하고 있는 가운데, 인천시가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해수청과 합의를 이끌어낼 지가 관건으로 주목된다.
 
권익위는 최근 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조사 기간을 약 2개월여 더 늘리기로 하고 상반기 중 조정안을 내기로 했다. 시는 권익위의 조정안을 통해 해수청과의 협의를 이끌어 내겠다는 복안이지만, 평탄치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13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주만을 준비해 왔던 이곳 주민들의 지금 놓여진 상태는 어떠하며, 인천시와 해수청의 방침은 어떤 것인지 취재했다.
 

◆ 나중에 들어선 물류시설, 아파트를 집어 삼켰다
 
연안아파트에서 90년대 중반까지 거주했다는 김모씨. 그는 “어릴 적 기억이긴 하지만 내가 입주했을 당시 이 곳은 물류단지보다는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벌판에 가까웠다”며 입주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의 부모도 통화에서 “물류시설들은 아파트보다 더 나중에 생겼다”고 전해왔다.
 
5일 오후, 기자는 46번 버스를 타고 이곳을 찾았다. 낙섬사거리를 거쳐 인천항 고가교 쪽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항운아파트 방면과 인천지방해양수산청 방면을 오가는 화물차들이 거대한 '위용'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가끔씩 이들 차량들로부터 나오는 클랙슨 소리는 지나는 주민들을 위협하는 수준이다.
 
항운·연안아파트는 이 46번 버스가 인천항 고가교에 접어들고 몇 정류소를 더 가서 위치했다. 이 두 아파트 사이에는 롯데 팩토리 아울렛이 위치해 있다. 지난 2007년 개점했다 매출부진으로 2014년 말 폐점한 롯데마트의 후신이다. 2년 전쯤에는 인근에 고가 고속도로가 놓였다.  2017년 3월 개통한 인천~김포간 수도권 제2외곽순환고속도로 시점이 이 곳인 것이다. 
 
버스에서 내리자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내리자마자 도로에 위치한 상점에 들러 “평소에도 공기 질이 이러느냐”고 묻자, 상인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렇다”고 답했다. 아파트 경비원과 롯데 아울렛 내 입점업소(옷가게, 카페) 직원 두 명도 같은 답을 했다. “왜 이렇게 공기 질이 안 좋은 것이냐”란 질문에 아파트 경비원만이 “바다 때문에 그렇지 뭐...”라며 에둘러 답했을 뿐 나머지는 모두 “딱 봐도 주변 환경이 그렇지 않느냐”고 말했다.
 
아파트 주변에는 이 롯데아울렛을 제외한 전부가 물류창고, 하역장, 공장 등이었다. 주거지역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대형트럭이 밀려드는 전형적인 '항만 배후단지'였다.
 


아파트 단지 내 먼지를 손에 묻히자 고운 입자의 시커먼 먼지들이 나왔다. 이 먼지에서는 오래된 타이어가 탄 듯한 냄새가 올라왔다. ⓒ배영수

 
◆ 독성 의심되는 분진과 소음... ‘이주’만이 답이었다
 
항운·연안아파트 단지로 들어가 보니 방치된 아파트의 외관이었다. 재개발 수순을 밟고 있는 아파트 단지들보다도 더 장기간 관리가 안된 듯 아파트 도색은 모두 벗겨지고 곳곳에 금이 간 투성이였다. 거주지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80년대에 건립된 오래된 아파트라고는 하지만, 관리가 되어 왔다면 기본적인 도색작업이나 개·보수작업도 이루어져 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흔적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주차된 차량들만 아니었다면 사람이 사는 흔적보다는 폐·공가인 듯한 느낌이 더 강했을 것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분진’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매캐하게 느껴진 공기가 소음보다도 더 주민들을 위협하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아파트 계단과 게시판, 문틈 등에 쌓인 먼지들을 묻혀보니 타이어 탄 듯한 냄새가 났다.
 
이곳 주민들은 “먼지에 강한 독성 성분이 있었다는 얘길 듣고 모든 주민들이 여름에도 문을 닫고 지낸다”고 말했다. 



항운아파트 단지 옆길. 화물차들의 ‘주차장’과 같은 모습이다. ⓒ배영수

 
◆ 시와 해수청의 ‘토지가격 입장 차이’... 이주에 발목 잡았다
 
익명을 요구한 이지역 어르신은 "지난 2002년 당시 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서 환경 피해가 있었다는 결론에 대해 이미 배상 판결도 있었다"는 얘기를 전했다.
 
당시에 5억 원이 넘는 배상 판결(확인해본 바 약 5억 3천만 원 정도)도 있었는데, 주민들 대부분이 단순한 배상을 원했던 것이 아니라 건강한 생활환경을 원했고 이에 시가 ‘전체 이주’라는 결정을 하고 인천해수청과 협의를 시작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어쨌든 시가 이주 약속을 하고 당시 주민들에게 이전할 곳(송도 9공구)도 알려 주었다”며 “3년 전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와 관련해 한창 공사를 하고 있을 때도 주민들이 환경 피해를 우려했으나 인천시 등 기관 관계자들이 ‘개통할 시점에는 이미 이주가 돼 있으니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라는 답을 받고 더 이상 항의하지 않기로 했었다”고 밝혔다.
 
이후의 과정에 대해서는 인천시로부터 답변을 들었다. 당시 시는 ‘이주만이 답’이라는 결론을 내고 지난 2003년 이주 결정을 한 뒤 2006년 경 인천지방해양수산청 소유의 송도 9공구 부지와 이 아파트 부지를 맞바꾸는 방식으로 주민들에게 안내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협의과정에 있어서 인천시와 인천해수청이 보인 ‘의견차’였다. 인천해수청 관계자는 “해수청 부지와 바꾸기로 시가 이야기를 했던 것이 2006년인데, 당시 시는 우리 청에 아무런 협의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해수청의 부지가 국유지인 만큼 시가 협의도 하지 않은 채 이러한 ‘무리수’를 강행했을까 싶지만, 13여년 전 당시의 담당자들과 현재의 담당자들이 모두 바뀌어 있는 만큼 직접적인 확인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 여부는 지난해를 기점으로 별반 중요하지 않게 됐다. 해수청과 시가 어쨌든 협의를 했기 때문.
 
“그게, 시나 우리 청이 모두 배경이 있었다”는 해수청 관계자는 “인천항에 물류기업이 입주할 배후단지가 부족했었던 만큼 해수청 입장에서는 배후단지를 빨리 개발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시는 민원해결이 필요했었으니 서로 필요성이 생겨서 합의를 보게 됐던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장기고질민원’에 해당하는 이 민원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교환가격 산정 방식을 두고 시와 해수청이 다시 이견을 드러냈다.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시와, 감정평가액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해수청의 입장이 부딪혔기 때문. 주민들을 이주시키기 위해 송도9공구 부지를 주거용도로 바꾸게 되면서 감정가가 올랐고 이에 인천해수청이 감정평가액 적용을 주장하고 나서자, 적게는 900억 원에서 많게는 1,200억 원 이상의 차이가 발생하는 문제가 생기면서 협상은 그대로 멈춰서고 말았다.
 
또 인천해수청 소유의 ‘국유지’가 공동주택인 아파트 부지와 교환을 진행한다는 것을 행정적으로도 풀어내기가 어려웠던 문제 등도 협상이 난항을 겪는 이유였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연안아파트 바로 앞에 물류하역장이 들어서 있다. ⓒ배영수

 
◆ ‘직접교환’ 안 되자 ‘순차교환’ 방식 쓴 인천시... 그러나 이도 막혀
 
시는 이에 올해 초 주민들을 이주시키려던 9공구 부지 일부인 아암물류 2단지 동측 하단 5만 4,550㎡ 규모의 땅을 서구 원창동 381-7번지 외 13필지 5만 970.5㎡와 맞바꿔 이를 시유지화하고, 다시 이 땅을 아파트 부지 5만4544㎡와 바꾸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이 3개의 부지를 순차적으로 교환하는 방안은 당시 제246회 시의회에 동의안이 상정되어 시의회도 이에 동의해 주면서 급물살을 타는 듯했다.
 
시는 “인천해수청의 국유지를 시 소유의 시유지와 공시지가로 교환하는 방식은 문제가 없다고 봤고, 행정적으로도 이미 가능한 방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방식마저도 인천해수청 측이 거절하면서 막혔다.
 
인천해수청 측은 “둘 다 가능은 하지만, 어디까지나 ‘할 수 있다’고 돼 있기에 우리가 따르지 않아도 되는 문제”라며 “그간의 과정에서 시가 우리 청에게 적극적으로 의견도 물어보고 했다면 문제가 달라졌겠지만 항상 일방적인 자세였던 데다, 국가 입장에서의 재정도 감안해야 하는 ‘국가기관’인 우리 청이 시 재정의 유리함만을 위해서만 협의할 수는 없는 문제”라고 반박했다.
 

◆ 주민들 “시와 해수청 등에 서운함 크다” 울분
 
시와 인천해수청의 입장 차이는 결국 조율되지 못했고 지난해 초만 해도 기대감이 감돌았던 이주 문제는 다시금 주저앉고 말았다. 결국 시에 해결의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주민들은 국민권익위에 이 문제를 호소했고, 권익위는 지난 7월부터 현장조사 등을 통해 조정안을 마련하고 상반기 중 조사를 마치면 시와 인천해수청에 제안하기로 했다.
 
현재 권익위 선에서 가능한 조정안이라면 권고, 의견표명, 합의조정 등 3개 정도다. 모두 강제성을 띄는 건 아니어서 이 조정안에 대해 인천해수청이나 시 중 한쪽이 거부하면 다시금 문제는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는 일단 희망을 걸어보겠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권익위의 주도 하에 만들어진 조정안을 통해 시와 인천해수청, 주민 간에도 합의를 볼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이를 바탕으로 공식적인 합의서가 작성된다면 법적인 효력도 생길 수 있고, 그런 효력에 따라 이주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시나 인천해수청 모두 현재로서는 권익위가 내밀 조정안을 수용할 지의 여부와 조정을 통한 최종 합의 등의 시기를 정확히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시와 인천해수청 모두가 주민들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헤아리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연안아파트 현장에서 만난 한 주민은 “우리가 송도로 가고 싶다고 직접 얘기한 것도 아니고, 단지 건강한 환경에서 살고 싶어서 주민들이 실시계획 등에 드는 비용을 직접 걷어서 부담하는 등 노력을 한 끝에 토지의 가치도 오른 것으로 해석해야 하는 부분도 있는데, 국유지라는 이유로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하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고속도로고가의 건립 등 갈수록 생활환경이 악화되지만 ‘곧 이주한다’는 문제로 참아왔는데 13년 넘게 걸렸고 앞으로도 향방을 알 수 없다”며 “중구에서는 곧 떠날 주민들이라며 외면하고 연수구는 아직 자기들 주민이 아니라며 외면하고, 송도 주민들은 우리들더러 들어오지 말라고 아우성이라는 소식에 겹겹이 서운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항운아파트의 한 동 입구 모습. 폐가라고 해도 믿을 만큼 환경이 망가져 있다. ⓒ배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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