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2018년 7월, 인천의 세 싱어송라이터 Pa.je 이권형 박영환이 함께 컴필레이션 음반 [인천의 포크]을 제작했고, 이어 2019년 연작 [서울, 변두리]를 발매합니다. [인천in]은 이에 매주 1차례씩 8회에 걸쳐 지역 음악과 음악인들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음반 제작 프로젝트의 취지와 내용을 소개하며, 인천과 서울, 그 변두리 지역을 오가며 활동한 세 팀(클라우즈 블록, 단식광대, 물과음)과 함께 음반 제작 과정과 프로듀서 인터뷰, 아티스트들의 대담 등을 기록하고 그 의미들을 찾아봅니다.
2019년 7월 29일 아티스트들이 생업을 마치고 퇴근하는 저녁 시간, 삼각지 ‘카페 예담’에 모였다. 싱어송라이터 ‘회기동 단편선’의 진행과 함께 [서울, 변두리] 참여 아티스트, ‘클라우즈 블록’ 전유동, ‘단식광대’의 보컬 구자랑, ‘물과음’ 김성훈과 앨범 제작에 대한 여담을 나눴다. [서울, 변두리]에 참여한 계기, 수록한 음원들에 대한 생각과 제작 과정, 앞으로의 계획 등 허심탄회하게 나눈 대담 내용을 2회에 걸쳐 연재한다.
2019년 7월 29일, 대담 중인 (시계 방향) 회기동 단편선, 이권형, 클라우즈 블록, 물과음, 구자랑(단식광대)
단 _ 이 컴필레이션은 세 팀의 곡이 모인 컴필레이션입니다. 각자의 곡에 대한 인상도 있을 텐데, 전체를 들었을 때 느낌이 어떠셨나요?
구 _ (단식광대 멤버) 철민 씨가 그런 얘기를 했는데, 클라우즈 블록이나 물과음처럼 자신도 아이디어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자신은 그런 것을 타고나진 않은 것 같다면서. (웃음)
물 _ 저는 다른 뮤지션들이 '변두리성'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 지가 궁금했어요. 저는 평생 변두리에서 살아와서 그런 걸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처음 클라우즈 블록을 들었을 때는 '같이 해도 될까' 싶었어요. 너무 중심부에 있는 음악 같아서. 너무 잘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직접 만나고, 캐릭터를 알게 되고, 음악의 고민들을 함께 하게 되면서 제가 음악들의 섬세함을 주의 깊게 듣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주변부 특유의 섬세함
같은 게 있는 것이 좋았어요. 오히려 톤이 비슷한 이들이 모여있었다면 심심했을 것 같아요.
클 _ 제가 [서울, 변두리]에 수록한 곡들은 지금 준비하고 있는 정규앨범의 컨셉과는 맞지 않아요. 그래서 발표되지 못할 수도 있는 곡들이었어요. 그런데 "주안"의 노랫말처럼, 정말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밤이 찾아오면 기차처럼 타닥타닥 흔들려요"라고 말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걸 노래로 얘기할 수 있게 된 거죠. 저도 이런 분들과 내가 함께 해도 될까, 이 판에 끼어도 될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렇지만 창작작업에 대한 번뇌를 잘 알고 있는 분들끼리 모여서 이렇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이, '고생했어요' 같은 이야기 한 번도 안 했지만 서로 이해받는 느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저로선 스스로 위로받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단 _ 자의건 타의건 D.I.Y.(Do It Yourself)로 제작의 대부분을 진행하게 되었어요. 처음부터 D.I.Y.가 계획에 있었나요?
이 _ 염두에 두고 있었지요. 여러 방면으로 펀딩(Funding)을 고려하기도 했지만 펀딩을 확정짓고 진행했던 게 아니기 때문에.
구 _ 하면서도 정말 '돈칠하고 싶다'는 기분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웃음) 돈을 쓰면 때깔이 다르니까요.
이 _ 각자가 각자의 역할을 분담해서 진행했어요. 물과음이 앨범에 대한 글을 쓰게 되었고, 구자랑 님이 디자인을 했고.
물 _ 디자인도, 처음에는 ‘아이리쉬 포크(Irish fork)’스러운, 요정이 날아다니는, ‘켈틱(Celtic)’한 이미지들을 생각했는데…
단 _ 결과물만 보면 전혀 구현이 안 되었네요. (웃음)
이 _ 저희가 디자이너가 아니다 보니까. (웃음) 그러다가 옛 사진을 활용한 컨셉으로 결정이 되었어요.
물 _ 처음 옛 사진을 가지고 작업을 내온 것을 보고선 장난치는 줄 알았어요. 다른 게 있겠지라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다들 좋다고 하니까 그렇게 가기로 했어요.
클 _ 가지고 있는 자원에서 해결하게 되었죠. (웃음)
단 _ D.I.Y.로 일을 한다는 건 한편으론 많은 스트레스를 유발하기도 합니다. 모든 것을 직접 해야 하니까요.
클 _ 그런데 저는 새로운 가능성을 많이 발견했어요. 이전에는 제가 다 해야 했는데, 이번에는 협업을 많이 하게 되었죠. 지금까지는 작업하면서 '내가 혼자 다 할 수 있구나' 하게 되니까 오히려 내성이 생겨서 남들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는 법을 까먹고 있었어요. 잘못 커뮤니케이션 했다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고 틀어질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할지 걱정도 있었고요. 이번 작업에서 협업하게 되면서는 그런 게 없어졌어요. 아직도 부탁하는 법은 잘 모르겠지만 ‘좋은 사람들이 모이면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구나’ 하는 가능성을 보게 되었어요.
물 _ 물론 그럴 일도 없겠지만, 오히려 진짜 대규모 자본과 매니지먼트가 함께 했다면 못했을 것 같아요. 저는 뭔가 있어 보이는 것처럼 치장하는 걸 할 수 없는 사람이라서요.
이 _ 저로서는 약간의 창피함이 있어요. 주먹구구식으로 해야 하는 것이 많았고, 제가 직장을 다니면서 하니까 시간도 빠듯했어요. 기본적으로 돈 없이 인력으로 때우는 것은 사람 할 짓이 아니에요. 작업한 것에 대한 대가를 공유하는 것도 중요해요. 앞으로는 그런 부분을 열심히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2019년 7월 29일, 대담 중인 물과음
단 _ [서울, 변두리]라는 제목에서, '변두리'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론 앨범의 이름으로 잘 쓰이지 않는 단어에요.
물 _ 저는 일단 권형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지역성'이란 것에 공감을 많이 했어요. 특히 <수봉공원>이라는 곡 때문인 게 컸는데 '이 사람은 음악가가 아니라 역사학도인가' 라는 생각을 했어요. 존재했던 것에 대해 '발굴'하고자 하는 니즈(Needs)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주류의 흐름과는 다른 '지역성'을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변두리'라는 말이 좋았어요.
클 _ 저도 '변두리'라는 단어 자체가 좋았어요. 경제적인 이유에서건 뭐 건 저는 중심에서 내밀리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요. (현재 거주 중인 주안이) '유배지'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런데 유배지가 아니라 그냥 변두리일 뿐이라는 생각을 못 한 것 같아요. 그리고 내가 중심이 된다면, 서울의 입장에서는 변두리지만 내 입장에선 서울이 오히려 변두리이기도 한 것이니까요.
구 _ 저희야 저도 그렇고 팀도 그렇고 원래 주류가 아니란 느낌이 있어요. 그런 생각이 없었다면 단식광대 같은 팀은 안 했을 것 같아요. ‘아싸(’Outsider‘의 줄임말)’인거죠. (웃음)
이 _ 반골 기질. (웃음)
단 _ 각자의 다음 작업은 어떻게 진행될 예정인가요?
클 _ 정규앨범을 내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작곡이 완료되어 있는데 원래는 혼자서 다 진행하려고 했지만 이번에 협업의 재미와 소중함을 알았기 때문에 함께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뒤에 앨범 두 개가 또 준비되어 있어요. 다음, 다음 것까지 모두…
단 _ 작업비만 구하면 되겠네요. (웃음)
클 _ 저는 나이 같은 건 별로 신경을 안 쓰고 있지만 일을 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부정적인 것들에 대한 내성, 이를테면 혼자서만 작업해도 괜찮아지는 내성 같은 것을 떨쳐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요새는 '피곤한 사람이 되지 말자'를 되뇌이고 있어요. 제가 하고 싶은 작업과 잘 맞는 작업들이 인천에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부분도 같이 하고 있고요. 영종도나 소래포구의 자연을 보여주고 싶어요.
물 _ 저는 ‘물과음’이란 이름을 만든 다음에 곡을 쓴 것을 추려보니 12곡이 되더라고요. 제가 불면증이 심하거든요. 잠을 못 자니까 피아노를 많이 치고 있는데. (웃음) 건반 위주의 곡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결과물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또 저도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지역에 대한 관심이 더 생기고 있는데, 인천이라는 지역성이 제가 살고 있는 도봉구와 가까운 것 같아요. 그래서 나의 지역에서 그런 ‘지역성’들을 발굴해보고 싶은데, 노래가 아닌 글로 표현하고 싶어요. 동네의 폐허를 기록하는 프로젝트죠. 마침 사진 찍는 분 중에 비슷한 작업을 공유할 수 있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서 내년에는 진행해보고자 해요.
구 _ 단식광대는 원래 느릿느릿 가는 밴드이기 때문에 다음 작업을 내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지 싶어요. 2년 안에는 나오지 않을까 하는데… 지금까지의 것과는 많이 다르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단 _ 마지막 질문입니다. 각자의 추천 음악은?
클 _ 알렉스 바르가스(Alex Vargas)의 <Howl>이 좋고, <Shackled Up>이라는 노래도 자주 듣습니다.
구 _ 요새 홍철민 씨는 에스 캐리(S. Carey)의 <We Fell>에 꽂혀있는 것 같습니다.
물 _ (지금은 해체한 일본 밴드) 유라유라 테이코쿠(Yura Yura Teikoku)의 결과물들을 좋아하고, 그 멤버 신타로 사카모토(Shintaro Sakamoto)의 솔로 음반들을 자주 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