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 한약사’ 이현주 씨가 새 저서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매직스푼』을 발간했다. 동화 같은 제목이다. 표지와 책 내부도 예쁜 그림으로 가득하다. 펜 드로잉에 수채로 갖가지 채소와 과일, 꽃 등을 그렸는데 보고만 있어도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어서, 디톡스 효과를 톡톡히 볼 것만 같다. 이 그림 모두를 이현주 한약사가 직접 그렸다니 더욱 그렇다.
그는 인천녹색연합 운영위원, 한국고기없는월요일 대표, 생명다양성재단 이사를 거쳐,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상 최초의 식단 가이드 『The EAT–Lancet Report 인류세식단』을 발간한 EAT재단(노르웨이 오슬로)의 특별고문이자 한국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채식연습』 『30일간의 간헐적 채식』 『오감테라피』 등 7권의 책이 있다.
이번 책은 그의 여덟 번째 책이다. 조리법과 처방(medical prescription)이라는 두 가지 뜻을 모두 지닌 영어 단어 '레시피(recipe)'의 뜻을 강조한 이번 책의 제작 배경을 듣기 위해 이현주 한약사에게 연락했다. 인터뷰는 온라인 화상 대화로 이루어졌다. 이현주 한약사가 책 소개와 강의 등으로 뉴욕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IT 기술의 발달 덕분에 14시간이라는 시차를 넘어 얼굴을 맞대고 얘기할 수 있었다.
- 2022년 [인천in]에 기획연재를 쓴 것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채식운동가’, ‘환경운동가’로 살고 계시는데, 비건(vegan)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하신 것은 언제고 무슨 계기 때문이었을까요?
▲ 20대 때 비폭력적인 삶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귀농을 했어요. 농사도 짓고 명상도 하면서 지냈죠. 그러다 30대 중반에 한약학과에 다시 진학을 했는데요. 졸업을 할 무렵에 조금 더 적극적인 실천을 해 보면 어떻겠냐는 지인의 권유로 채식을 한 달 정도 해봤어요. 동시에 채식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도 공부했는데, 단순히 개인의 몸을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기아문제, 기후변화 문제 등 지구 전반에 걸쳐있는 다양한 모순을 해결하는 것과 연결돼 있더라고요. 그렇게 본격적으로 채식을 시작한게 2003년이니까 20년째네요.
일단 저는 채식이 몸에 잘 맞았어요. 정신도 더 맑고 선명해졌고, 몸도 가볍게 됐고요. 그 당시 한약국을 어떻게 운영할까 고민중이었는데, 채식이라는 키워드가 들어온거죠. 자연스럽게 그 둘을 연결한 ‘채식 한약국’을 열게 됐어요. 2005년의 일이죠. 제가 배운 것들을 사회적인 실천으로 이어 나갈 수 있는 고리였다고 생각해요.
- 2021년에 발간한 『30일간의 간헐적 채식』이라는 책에서 아들과 대화를 나눈 부분이 인상깊었습니다. “채식은 종교가 아니잖아. 근데 무슨 종교처럼 사람들을 분류하고 가두는 것 같아. 그래서 채식한다고 했다가 어쩌다 고기라도 한 점 먹으면 계율을 어긴 것처럼 죄의식을 느끼게 된다고. 먹는 것을 스스로 선택한 권리가 있는데, 너무 부담을 주는 것 같아.”라는 말에 저도 공감했거든요.
▲ 아들은 중학생 때부터 제 삶의 가치관에 대해 이해하고 지지하려고 노력해줬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와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도 얘기를 해줬죠. 타인의 삶을 고려하는 운동에 대해 생각하게 해줬어요. 아들 덕분에 중심을 잡았다고도 할 수 있어요.
‘리듀스테리언(reducetarian)’이라는 용어에 대해 생각했죠. 채식 자체에 중심을 두기보다는 고기의 소비를 조금 더 줄여보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요. 채식인의 범주를 넓혀보는 거였어요. 운동가로서 자기 만족을 위해 열심히 활동하는 것보다 대중적으로 누구나 한 번쯤 시도할 수 있는 제안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죠. 많은 사람이 함께할 수 없는 운동이라면 운동으로서의 의미가 없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게 됐습니다.
- 그런 고민의 결과로 나온 것이 ‘고기없는월요일(Meat Free Monday)’ 운동일텐데요. 어떻게 시작하게 됐고, 성과는 어땠나요?
▲ 2010년부터 ‘고기없는월요일’ 운동을 시작했어요. 비틀즈 멤버인 폴 매카트니 때문이었죠. 그는 2009년에 기후 변화의 대안으로 일주일에 하루 채식을 하자는 ‘고기없는월요일’ 캠페인을 제안합니다. 부담 없이 지구와 건강을 위해, 혹은 채식을 탐험하기 위해 ‘일주일에 하루 채식을 해보라’는 메시지는 꽤 설득력이 있었어요. 당시 30여개 단체들이 이 캠페인을 함께 했고, 주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활동을 했어요.
서울시청 같은 경우가 대표적으로 성공적인 사례겠네요. 서울시청은 2014년부터 직원들에게 매주 금요일마다 채식 식단을 제공합니다. 이름을 ‘지구건강식단’이라고 바꾸고 지금까지 계속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 일주일에 하루 정도 채식을 하는 것은 분명 부담없는 제안인데요. “내가 일주일에 하루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세상이 달라지기는 할까?”라는 물음표가 떠오르는 것은 사실이에요. 많은 분들이 이 부분에 대해서 궁금해하실 것 같습니다.
▲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데이터가 있어요. ‘고기없는월요일’ 캠페인은 전 세계가 함께하는 운동이에요. 존스 홉킨스 대학 '살기 좋은 미래를 위한 센터'와 연계돼 있는데, 한 사람의 실천으로 얼마만큼의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는지를 데이터로 만들어 주고 있어요. 그런데 온실가스를 줄인다는게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보니까 좀 더 쉽게 보여주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한국 홈페이지(https://www.meatfreemonday.co.kr)에서는 이 부분을 나무심기와 연결해서 표현해 봤어요.
온실가스 감축 기준을 나무의 역할로 바꿔보니, 한 사람의 ‘고기없는월요일’ 실천은 1년에 30년된 소나무 열 다섯 그루를 심는 것과 같더라고요. 학교급식 현황으로는 학생 1인당 1년에 아홉 그루를 심는 효과고요. 서울시청의 경우 직원 1,800명이 일주일에 하루 채식을 하는 것이니까 1년에 30년된 소나무 7만 그루를 심는 것과 같습니다. 작은 실천같이 보이지만 분명히 효과적인 운동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고기없는 날을 만들기 힘들다면 조금 줄이면 돼요. 100g을 먹었다면 50g으로 줄여보는 거죠. 유연하게 사고하고 실천하는 것에 의미를 두면,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습니다.
- 이번 책의 일러스트가 정말 예뻐요. 많은 설명이 없어도 그림 하나로 사로잡는 느낌이에요. 그림을 직접 그리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 채식운동과 환경운동 등을 시작하고 20년 정도 지나니까 저도 일종의 ‘번 아웃’ 증상이 왔어요. 지속 가능한 활동 방식을 찾아야 했죠. ‘나다운 활동’을 할 수는 없을까, 하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 어릴 적부터 예술가가 되는 꿈이 있었는데 계속 미뤘던 것을 생각했어요. 지난 여름부터 무작정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우연히 제 노트를 본 출판사 대표님이 이게 너무 좋다면서 책에 넣자고 하셨죠. 그 전에는 글만 있는 딱딱한 책이었는데, 컨셉이 완전히 바뀐거죠.
글을 최대한 줄이고, 강요하거나 가르치는 느낌이 없게 하고 싶었어요. 그림이 그 역할을 해주는 것 같아요. 해외에서 책 소개를 하면, 한글을 몰라도 그림만으로도 소장하고 싶다는 분들이 많이 계시거든요. 요즘은 진지하게 그림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말을 좀 줄이고, 감성을 표현하고, 그렇게 살고 싶어서요.
- 조금 현실적인 질문인데요. 채식을 하려다 보면, 식재료를 구할 때 고민이 많아지잖아요. 유기농 채소나 과일은 가격이 비싸고, 물가 자체가 많이 오르기도 했고요.
▲ 물가가 정말 많이 올랐어요. 그래서 자기 현실에 맞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유기농이 좋다고 하지만, 모든 식재료를 유기농으로 사 먹을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해요. 근처에서 살 수 있는 재료들을 깨끗하게 씻고, 구하기 어려운 재료는 적절하게 대체할 수 있는 응용력이 필요하죠. 그런 응용력은 루틴을 만드는 과정, 즉 채식을 일상에 녹아들게 만드는 과정 속에서만 생겨나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달만 제가 제안한 레시피대로 음식을 만들어서 드시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실 거예요.
저희 한약국을 찾아오시는 분들이 참 다양한데, 어르신들도 많거든요. 저는 어르신들께는 아주 쉽고 간단한 처방을 드려요. 예를 들어 디톡스워터를 만들 때 레몬 대신 식초를 사용하라고 말씀드리기도 하고. 본인이 구하기 쉽고 잘 아는 재료여야 만들기도 편하고, 지속할 마음이 생기잖아요. 누구에게나 그런 유연한 접근이 필요해요.
- 이번 책을 보면서 ‘자기돌봄’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어요. 고된 하루가 끝나거나, 마음 다치는 일이 있었을 때 내가 나에게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차려주는 것을 상상해 봤더니 굉장히 다정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보통은 피곤하고 힘들면 대충 끼니를 때우는 정도로 사니까요.
▲ 이 책을 통해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이 바로 그 얘기예요. 열심히 하루를 살았는데 괜히 허무하고, 서럽고 그런 날들이 있잖아요. 그럴 때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서 나에게 준다는게 큰 위로가 돼요. 요즘 많이들 하는 얘기가 ‘혼자여도 괜찮다’인데, 그렇게 외로움을 다독이는 방식이라기 보다는 ‘이렇게 살아도 충분히 괜찮다’라는 느낌인 거예요.
환경과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무언가를 한다는 생각으로는 계속가기가 힘들어요. 공공선이면서 개인적으로도 얻는 것이 있어야 더 오래가죠. 채식으로 만든 다양한 음식 레시피는 건강을 추구하는 개인들에게도 만족감을 줄 거예요.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사는 세계에도 도움을 주는 거죠. 몸이 아프면 삶이 망가져요. 한 사람의 삶이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들의 삶도 함께 무너지죠. 엄격한 생활과 윤리로서의 채식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자기돌봄으로서의 채식을 제안해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