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능소화가 곳곳에 피어 폭염의 여름을 장식한다
어느 집 담장 밖으로 삐져나온 꽃. 연분홍 꽃이 참 예쁘다. 보아하니 능소화다. 꽃줄기를 늘어뜨려 하늘하늘 춤을 추는 듯한 모습이 일품이다. 서로 먼저 하늘님께 인사라도 하겠다는 걸까.
능소화는 풀인가, 나무인가? 능소화는 중국이 고향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어디에도 잘 자라는 덩굴나무이다. 풀이 아니다.
아침 산책을 하다 고구마 텃밭이 있는 집에 핀 능소화를 만났다. 나뭇가지를 휘감고 자라며 위로 뻗친 위용이 대단하다. 고구마순 위에 떨어진 꽃잎이 고구마가 피운 꽃인가 착각할 정도로 통째로 툭 떨어져 있다.
능소화는 이름도 가지가지. 예전 양반집에서만 키울 수 있다 하여 양반꽃이라 불렀다. 평민이 심으면 곤장을 맞았다는 것은 우스운 이야기이고, 정말 귀하게 여겼다는 뜻일 게다. 황금색 등나무라 하여 금등화(金藤花)라는 이름도 가졌다. 과거에 급제한 사람에게 임금이 모자에 종이꽃을 꽂아 축하하였는데, 그 꽃 모양이 능소화였다 하여 어사화(御賜花)가 되었다.
능소화(凌霄花)의 한자를 보면 업신여길 '능(凌)'에 하늘을 뜻하는 '소(霄)'를 쓴다. 하늘로 뻗어 나가 하늘을 업신여길 정도로 기개가 세다는 의미일 것이다.
능소화는 길이가 무려 8~10m까지 자란다. 공기뿌리라는 것이 나와 붙잡을 수 있는 것만 있으면 붙잡는다. 특히, 담벼락을 기어오르는 재주는 끝내준다.
능소화의 꽃말은 명예. 명예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꽃인가? 꽃은 주둥이가 깔때기 모양으로 뜨거운 햇살 아래 피어나 눈부시다. 능소화는 한 번에 일시에 피는 게 아니고 피고 지기를 반복하여 여러 여름날 꽃을 피운다. 한창 꽃 필 때는 덩굴에 큼지막한 꽃이 수백 송이나 달려 그 기세가 하늘에 닿을 듯하다. 꽃잎은 동백꽃처럼 통꽃으로 툭 하고 떨어진다.
한때 능소화에 대한 잘못된 소문이 돌기도 했다. 꽃가루가 눈에 닿으면 실명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산림청 연구를 보면 능소화 꽃가루가 갈고리 모양이 아닌 그물 모양이라 눈에 닿아도 실명이 될 정도로 위험하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능소화로 실명이 되었다는 실제 보고도 없다고 한다.
능소화에는 슬픈 전설이 깃들여있다.
옛날 소화라는 궁녀는 왕의 총애를 받고 궁궐에 한 처소가 마련되어 살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궁녀들 사이 시기에 휩싸이고, 왕의 발길도 끊어졌다. 소화는 임금을 향한 그리움에 혹여 담장 너머 발걸음 소리라도 들리지 않을까 고개를 빼고 기다렸을 터. 그리움이 지나치면 상사병이 아니던가! 소화는 시름시름 앓다 그만 죽음을 맞이했다. 그녀가 세상을 뜬 뒤, 주변 담장에는 진한 주황색 꽃들이 피어났다. 사람들은 죽은 소화의 넋이 피어났다 하여 능소화라 이름 지었다.
아름다운 능소화가 피는 여름. 능소화 꽃이 보이지 않을 즈음이면 뜨거운 여름도 물러가겠지.
나태주 시인은 <능소화>란 시에서 연분홍 꽃잎을 보고 어여쁜 여인의 입술로 표현하였다. 전설 속의 '소화'를 생각하였는지 슬픔의 입술을 본다 했다.
비 오는 아침, 툭 하고 떨어진 꽃잎을 이으려고 마디마디 맺힌 봉우리! 어리디 어린 슬픔의 누이들을 본다.
<능소화> / 나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