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 연수구 옥련1동 일대 - 유광식/ 시각예술 작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이다. 정치 상황이 자못 마음의 나무를 세차게 내리치는 것 같다. 하루 이틀 고민하며 살던 사람들이 누가 뭐라 하지 않았어도 형형색색 응원봉을 들고 거리에서 한목소리를 냈다. 그 큰 한목소리가 한강을 사이에 두고 위편과 아래편이 다르긴 했지만 말이다. 우리 사회의 두께를 확인해 볼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라지만 일련의 상황들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는 그런 것이고 미동도 없이 또한 흘러가는 게 우리 생활이다. 이야기는 자꾸만 과거로 미끄러지고 짙어진다. 거주하는 인천의 최북단에서 기다란 인천대로의 미끄럼틀을 타고 최남단 연수구로 향했다. (구)송도에서의 발걸음을 한 해의 끝자락으로 품어 본다.
청량산(173m) 아래 자리한 (구)송도는 바다에 접한 마을로, 거북손처럼 생긴 지형에 송도유원지(1963~2011)로 명성을 날리던 곳이었다. 2011년 폐장한 송도해수욕장. 예전에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빛났다고 한다면 지금은 민어 비늘 같은 중고자동차의 지붕이 빛나고 있었다. 이곳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한 성당에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도 성탄 장식이 없었다. 대신 엄중한 사회상을 반영하는 작은 현수막 문구가 보이긴 했다. 좁고 경사진 골목길 운전은 쉽지가 않다. 차가 왜 그렇게 많은가 했는데 중고자동차들을 무기한 주차 해두고 있었다. 아무튼 이제 (구)송도는 민어가 사는 자동차유원지다.
어느 빌라 단지에 이삿짐을 부리는 집이 보였다. 이사 나가는 줄 알았는데 들어오는 집이었다. 한결 포근해졌다. 비둘기가 청량한 겨울 하늘을 긋고 지나가는 오후였다. 청량산 아래로 인천시립박물관이 보인다. 얼마 전 소천하신 관장님의 평안한 안식을 빌어도 본다. 넘고 넘다 다다른 청정공원(대암어린이공원). 11월 폭설(습설)이 소나무에는 큰 재앙이었는지, 부러진 가지가 많아 산책 나온 시민의 안전이 염려되기도 했다. 바로 옆은 가천인력개발원 자리로, 지금은 리모델링되어 예술창작공간 아트플러그 연수(2021~)로 한 개 동이 사용되고 있었다. 잠시 레지던시 공간과 전시실을 둘러보았다. 뜰에서는 감나무와 목련, 참나무 등이 겨울나기 중이었고 멀리 청량산 능선 자락은 북풍을 막아주고 있었다.
급경사 길이 많다. 조심할 노릇이다. 꽃게거리를 지나 과거 송도유원지 정문 앞에서 예전 흔적을 기웃거려 보았다. 날은 맑은데 바람이 칼이다. 정문 옆으로 기둥만 남은 비둘기집 흔적도 있고 옛 지구대 건물, 방치된 옛 매표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비룡열차나 회전목마 문구에 아련함이 묻어나기도 한다. 회전목마의 아쉬움을 회전교차로가 달래주는 건지도 모른다. 능허대로를 따라 걷는다. 골프장도 있고 저 멀리 세현이네 가족이 사는 송도파크자이 아파트도 보인다. 그 사이에 라마다호텔이 육중함을 뽐내고 있다. 여전히 존재감이 강한 이곳은 과거 송도비치호텔(1985~)로, 마흔 살이 되었다. 1층에는 연회장을 증축해 각종 행사와 모임 등의 장소로 온도를 높이고 있었다. 과거 한식당이 있었다는 로비를 한 바퀴 돌아본 후 나왔다. 겨울바람을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바람을 쐬고 나니 송도 이야기가 칼끝에 올라서 있는 듯 날카롭다.
호캉스라도 하면서 한 해를 돌아보면 좋겠으나 시공간이 쉽사리 마련되지는 않는다. 뮤직카페 앞에서 조금 떨고 있던 고양이 한 마리는 봄날 먼 곳으로 여행 떠난 반려묘(모모)를 떠올리게 해주었고 청년이 되었을 세현이의 아파트 단지를 보고는 지금은 사라진 그 앞 버스터미널을, 멀리 바다를 보며 알 수 없는 2025년의 벌판을 연상하게 된다. 송도해수욕장 마지막 폐장일에 3대가 함께 찾은 어느 가족의 뒷모습이 여전히 짙게 남아 있다. 회전목마의 낭만은 희미해졌지만, 함께 붙들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구)송도의 추억은 멈추지 않고 돌고 돌 것이다. 나와 사회의 주변을 돌아보며 생각나는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전하는 시기다. 남은 기간에 메시지라도 보내 사랑이라는 온도를 전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