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었던 인천, 하나하나 기억해내게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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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었던 인천, 하나하나 기억해내게 될 줄은
  • 유진숙
  • 승인 2024.10.29 12: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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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화가의 인천 이야기]
(3) 유진숙 작가 - ① 다시 인천에 터를 잡으며
〈시간〉. 시간과 세월에 대한 시리즈 중의 한 작품이다. 저 어린아이는 미래를 알수 없는 꿈나무이고 하지만, 과거를 회상하는 어른이기도 하다.

나는 1977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엄마와 아빠는 서울에서 결혼을 하셨지만,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엄마의 직장이 인천이었기에 두분은 인천에 오시게 되었다고 한다.

오래전 재개발이 되어 지금은 흔적이 없다지만, 당시 주안아파트라는 곳이 새로 지어져 첫 입주를 한 뒤 아직 살림살이도 다 정리를 못한 며칠 뒤, 아침에 출근을 하던 엄마가 배가 아프다며 산통을 느꼈고 그날 난 세상에 태어났다.

이미 위로 언니가 있던 우리 가정은, 둘째는 아들이기를 원했겠지만 엄마는 불룩한 배가 꼭 아들을 낳을 배라는 사람들의 말에도 내가 여자 아이일거라는 것을 아셨다고 한다.

이유는 기묘한 태몽 때문이다. 그런 태몽을 꾼 사연은 엄마 외엔 듣도 보도 못한 내용인데, 글쎄 긴 머리도 아니고 똑단발 머리를 한 예쁜 마룬인형이 벤취에 다리를 꼬고 당돌하게 앉아서 혼자 그렇게 쫑알쫑알 떠들어 대고 있는 꿈이었다 하셨다. 그러고 보면 내 인생을 돌아볼 때 참 나 다운 태몽이라는 생각도 들곤 하며 웃음이 나온다.

스므살이 되기 전까지 나는 인천에서 성장하였는데, 대학에 떨어져 재수를 하게 되었을 때 당시 서울에서 대학을 하니던 언니를 따라 언니 학교인 고려대 근처에 자취를 함께 하며 재수학원을 다녔고 우리 가족들도 인천을 떠나게 되었기에 나의 성장기 이후의 기억까지가 인천의 기억이 되고말았다.

대학을 들어가고 졸업 후엔 전업 작가로 살며 여러 이유들로 작업실을 자주 이사 다녀야 했는데 서울로 일산으로 파주로 포천, 남양주, 다시 서울 등으로 떠돌아 살아가는 떠돌이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항상 아무 연고도 없는 지역들을 덜컥 덜컥 선택해 그렇게 낯선 지역들에 안착할 때마다 사람들은 여자애가 참 혼자서 당차다느니 신기하다느니 얘기들을 했지만, 그 늘 이방인이었던 내 삶은 실제 남들의 시선처럼 어색하고 불편하지 않았다. 도시는 도시대로 좋았고, 전원은 전원대로 좋았으며 무엇보다 외출이 잦지 않던 나는 그래도 작업에 몰두 할 수 있는 내 공간이 중요했으므로 타향에 혼자 떠돌아 사는 것들에 대한 외로움 또한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단 한곳.

바로 내가 태어나 성장기를 통째로 보낸 인천 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낯선 지역이 되어버렸었다. 고향이라는 개념도 그리움도 와 닿지 않은 채 아주 가끔 어떤 이유들로 인천을 지나칠때 조차 묘한 이질감과 지극히 이방인이 된 듯한 소외감을 느끼곤 했다.

텔레비전에서 인천에 대한 소식을 우연히 접할 때도, 누군가가 인천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도 그 이상한 거리감은 썩 내키지 않았기에 인천은 어쩜 내 기억에서 잊혀지고 있었다.

왜 일까.

왜 그런 감정이 들었을까.

왜 기억만으로도 외로웠고 잊고 싶었고 모른척 하고 싶었을까.

많은 추억과 친구들, 내 성장기의 모든 산물들의 터가 아니던가.

초등학교때 늘 반장을 하며 뽐냈던 기억, 희망백화점과 인천백화점, 그리고 중학교 때 중간고사가 끝나면 친구들과 주안역 지하상가 분수대 앞 롯데리아에서 햄버거 세트를 사 먹는 게 소소하지만 큰 낙이었던 추억, 사람들을 만날 때 약속 장소가 되어있던 동인천역 대한서림, 종이와 연필 냄새가 가득했던 화실, 인천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장 이상 그 앞에서 찍은사진이 있는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 송도 해수욕장의 인파들, 그런 것들을 다시 기억해 내는데는 시간이 걸렸다.

 

〈산 나르기〉. 늘 이리 저리 터전을 옮겨가며 살아야 했던 지난 날이기도 하며, 늘 지고 다녀야 했던 무거운것들의 의미로 산 나르는 사람을 그렸다.

 

내가 다시 인천에 자리를 잡은 것은 2021년도다.

불과 3년전 아니 곧 있으면 4년이 되어가는 시간이다.

내가 다시 인천에 오다니.

내가 인천에 터를 잡다니.

아니, 내가 잊었던 것들을 다시 하나하나 기억해내게 되다니.

아니 이젠 인천을 좋아하게 되다니.....

예정에, 계획에, 상상에 없는 사건들이다.

2021년도에 내가 인천에 오게 된 것은, 당시 정부에서 지원하던 공공미술 프로젝트 때문이었다. 단지 몇 달간의 돈을 벌기 위해서 머무를 생각이었고, 그 해 처음으로 인천에서 개인전이 약속되어 있었기도 했다.

공공미술프로젝트 작가들의 오리엔테이션이 있던날을 기억한다.

오랜만에 타보는 1호선 전철의 낡고 지친 모습, 새로 생긴 역들의 이름들.... 그리고 동인천 역에 내렸을 때 길을 묻는 내게 냉랭했던 지하상가 상인들의 무표정, 하나도 변한게 없이 그저 그 상태로 노쇠해지기만 한듯한 거리와 건물들.

“나는 일만 하러 잠시 온 것이다. 공공프로젝트가 끝나고 개인전 까지만 마치면 어서 여길 떠나자” 하고 생각했었다.

공공프로젝트는 거의 서른명이 넘는 작가들이 잇다스페이스 앞 작업실 공간에서 세달 정도 공동 작업을 이어갔는데, 그 사이 작가들은 정이 들기도 했고 삼삼오오 유독 가까워진 사이들도 생겼으며 협동하며 함께 무언갈 해낸다는 성취감에 즐거운 분위기였다.

 

〈꿈꾸는 여행자〉. 고향을 떠나 살아가며 어디서든 이방인이어야 했지만 그래도 꿈을 꾸고 어딘가로 흘러흘러 가게 된 여정들이다.

 

바로 그때였다.

그 낡고 어두운 골목길들에 정감이 생겨났다.

그런 것들이 좋아서 제법 보존을 잘 해 리모델링 했을 법한 예쁜 카페나 식당, 가정집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기도 했고, 무엇보다 잊고 있던 기억들이 하나 둘 추억으로 떠올랐다.

제물포역 지하상가에서 학기 초가 시작되기 전 교과서를 싸기 위한 포장지, 스타들의 사진이 있는 책받침을 사던 기억, 좋아하는 노래를 목록에 써서 들고 가면 공테이프에 녹음을 해 주던 레코드 상점들, 참고서를 사고 팔던 배다리 헌책방 거리, 제법 화려한 메이커 옷들의 거리가 있던 신포동 거리들, 서울로 귀가하던 인하대학교 언니 오빠들이 쏟아져 나오던 주안역, 화실 수업이 끝나 집으로 돌아가는 밤에 늘 보였던 제물포역 북광장의 인천대 언니 오빠들의 바글바글한 흥에 겨운 돗자리 노상 술판...

기억이 나지 않던 친구들의 이름들...

그리고, 내가 이방인이 아니라는 것.

돌아오고 싶다는 마음.

처음으로 따뜻해지는 고향의 온기.

그리하여 지내던 곳을 정리하고 나는 말 그대로 귀향을 하게 된 것이다.

돌고 돌아 다시 돌아온 안락함은 귀소본능일까.

처음엔 배다리의 잇다스페이스 스튜디오에 작업실을 얻고 그 앞에 원룸을 구해 1년 반 정도를 지냈고, 한명 두명 알게 되는 이곳 작가들과 갤러리 관계자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마치 처음 인천을 방문한 관광객을 대하듯 내게 여러 가지 인천의 명소와 맛집, 재미난 곳들도 친절히 알려주었다.

나 역시 다시 하나하나를 알아가며 흥미를 갖게 되었고 이젠 제법 다른 이들에게도 이곳들을 설명해줄 수 있을만큼 스며 들어있다.

지금 나는 신포동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작년 3월에 배다리 잇다스튜디오를 떠나 신포동 김구 동상 거리 근처에 작업과 주거가 함께 가능한 예쁜 상가를 발견해 이사하게 되었는데, 이곳은 더더욱 매력적이라 자부 할 수 있다.

온갖 먹을 것들과 술집들과 LP Bar들이 즐비하지만 누구도 고성방가를 하는 이 없이 이 곳은 늘 즐거운 웃음소리와 예쁜 인사들이 들려오는 거리 한복판이다. 옆골목으로 가면 갤러리들이 모여 있고, 아무리 밤 늦은 시간에 거리를 산책해도 위험하지 않은 곳.

아직도 난 아침에 일어나면 외국의 어느 관광지의 숙소에서 상쾌한 아침을 맞는 설렘을 느낀다고 자랑하고 다니니 얼마나 좋은가.

하나 하나 잃었던 것들을 찾아가는 느낌.

미로 안에서 길이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 지는 느낌.

이번 편에서는 내가 인천을 떠나고 돌아온 이야기들을 먼저 시작을 했다. 다음 편에는 인천에서의 성장기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위에서도 조금씩 언급했지만 내가 태어나 20년을 성장 한 곳이니 그 기억 안에 내가 있고 사람이 있고 추억과 방황 역시 있을 수 밖에 없다. 다음 글에는 나를 돌아보는 기회가 될 것 같다. 

2024년, 10월 가을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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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환 2024-10-29 20:58:48
기사 잘 읽었습니다!
유진숙 작가님이 글을 쉽게 참 잘 쓰시네요...
귀향을 환영합니다.

인천에서 태어나 지금도 살고 있는 인천인으로서
유 작가님의 글을 보니 애향심이 꿈틀거리네요.
다음 편이 매우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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