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넘은 '영아다방', 아쉬운 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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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넘은 '영아다방', 아쉬운 개명
  • 김영숙
  • 승인 2013.01.03 04:55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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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편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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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구 청천2동 영아다방. 웬만한 인천사람이라면 최소한 이름만이라도 기억하는, 삶의 이정표 같은 곳이리라. 버스 노선에도 '영아다방 사거리'로 표시되어 있을 정도로 귀에 익은 '민중의 다방'. 이곳을 모르는 택시기사는 간첩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그런데 그 '영아다방'이 얼마전 현대식으로 리모델링하고 지난달에는 이름도 'John 179'로 바뀌었다.
오십년 넘게 옛날식을 고수하던 영아다방이지만, 커피전문점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현실에서 바뀌지 않고선 살아남기 힘들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다방을 찾던 노인들도 아쉬운 마음을 추스리고 변화를 수긍했다. 젊은이들도 하나둘 찾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세대가 함께하는 공간이 되었다.
 
영아다방이 생긴 지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주인도 많이 바뀌었다. 일곱 번째 주인이 되었다는 조경희씨는 "한 달 전에 이름을 바꾸고 나서 나이 드신 분들한테 욕 많이 먹었어요. 맥주만 팔아도 '다방'이라는 이름을 못 쓴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차라리 획기적으로 변해 보자고 마음먹었어요. 나이 드신 분들은 입구에 더 크게 영아다방이라고 써붙이라고들 하세요." 라며 노인들이 많이 아쉬워한다고 전했다.
 
바로 전에는 노부부가 영아다방을 운영했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면서, 몇 달 문을 닫았다가 조경희씨가 2012년 3월에 인수하게 된 것이다. "'영아다방'이라는 이름이 매력적이어서 인수했어요. 신세대까지 커버하려니 어쩔 수 없이 리모델링하고 이름도 바꾸게 되었어요. 어른들한테는 좀 죄송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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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는 단골손님인 노부부들이 아메리카노와 카푸치노를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겨울에는 유자차와 쌍화차를 많이 찾는다. 노인들은 오래전부터 찾은 이곳이 편하다. 벽면에는 예전 흔적이 남아 있고, 천갈이만 한 소파도 정겹다. 이제는 흡연실도 있다. 예전에는 실내 전체가 담배 연기로 가득 찼겠지만, 이제는 여러 사람이 함께 하려면 흡연실이 필요하다.
젊은이들은 주로 달달한 것을 많이 찾고, 어른들은 쌍화차를 시켜도 걸죽하고 진하면 좋아한다고 한다. 바로 전에 다방을 운영하던 할머니가 손수 재료를 가져와 쌍화차 만드는 비법을 알려주었다. 노른자 띄운 쌍화차는 겨울에 많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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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나이 드신 분들과 젊은 사람들이 함께하길 꺼려했어요. 나이 드신 분들이 많으면 젊은 사람들이 들어왔다가 그냥 나가고, 반대로 젊은 사람이 많으면 나이 드신 분들이 그냥 나가셨죠. 하지만 언제부턴가 서로 신경쓰지 않더군요”라며 조경희씨가 그동안의 고충을 털어놓는다. 또 “젊은 사람들이 어떻게 알고 찾아올 때는 신기하기도 해요. 언젠가 부산에서 젊은이들이 맘먹고 찾아왔을 땐 미안했어요. 멀리서 오래된 다방만 생각하고 왔다가 실망할 때는 참 안타깝죠”라고 말했다.
주인과 기자가 한창 이야기를 나눌 때 창가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오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녀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들은 후불로 계산하고, 먹던 잔은 그대로 두고 나간다. 옛날 처럼 후불로 내는 사람도 많고, 어떤 사람은 엽차 가져오라고 소리치기도 한단다. 친절하게 계산을 마치고 돌아온 주인은 “처음에는 혼란스러웠어요. 엽차 가져오라는 사람도 있고, 반말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어른들이 주문도 자리에서 하고 컵도 그 자리에 두고 가도, 이곳을 아주 편하게 생각하니 좋아요”라며 환하게 웃는다.
 
"지난해만 해도 이 주변에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이 네 군데나 생겼어요. 영아다방을 찾던 분들이 여전히 편하게 찾도록 차별화해야죠. 나이 드신 분들과 신세대들이 어색하지 않게 함께 어울리는 곳이 돼서 좋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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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우미 2013-01-04 15:40:43
마케팅적으로 영아다방이 지금 바꾸신 이름보다 훨씬 나은 것 같은데요, 지금 홍보가 잘 되어 이름을 되돌려 놓으면 멀리서도 찾아갈 것 같은데 진지하게 고민해 보심이 어떠실지요?

헤리포터 2013-01-04 11:06:24
어쩔수 없는 상황이겠죠!. 청천2동에 살면서 모르는사람이 없는 영아다방이 이름바뀐것도 이제 알게되었네요. 아쉽네요!!

인처너 2013-01-03 14:25:35
알퐁소 도테의 '풍차'가 생각나네요

미야비 2013-01-03 09:05:15
아쉽지만 세월의 변화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거겠죠. 후퇴가 아닌 진일보이길 바랍니다. 좋은 기사 잘 봤습니다:) 이제 영아다방 사거리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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