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상 / 인천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이번 주말도 어김없이 비 예보가 나왔다. 몬순 기후대에 속하는 우리나라는 장마철 이전에 비가 드물어 저수지와 댐의 저수량이 줄어드는 게 보통이다. 모내기 위해 강바닥을 파는 장면에 익숙했는데, 올봄은 비가 잦았을 뿐 아니라 수량도 많았다. 캐스터 예보를 믿고 우산을 챙기지 않았다 낭패 보는 일이 잦았다. 그때마다 편의점에서 산 우산이 집에 넘친다.
올 장마는 예년보다 심할까? 기후변화 여파로 강수량이 해마다 늘어날 것으로 전문가는 이구동성으로 예견하고, 수자원공사는 다목적댐의 저수량을 미리 줄였다. 재해에 대비하는 모습인데, 안심하지 못한다. 세계 곳곳의 기상이변과 재난이 상상을 초월하지 않던가. 예년 기록을 크게 넘어서는 홍수나 가뭄이 때와 장소를 무시하고 빈발하니 철저한 대비를 소용없게 만든다. 작년 우리나라 기상이변은 전북 곡창지대를 바싹 말렸고 금강 범람으로 지하차도와 해군 장병에 재앙을 안겼는데, 올해 인천은 괜찮을까?
시내 곳곳은 배수구 정비로 바쁘다. 인천만이 아닐 텐데, 배수구의 이물질을 제거하는 수준이 아니다.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설계했더라도 안심할 수 없다. 순간 쏟아지는 강우량을 버티고 예측 넘는 폭우를 감당하려면 배수구 용량을 확대해야 하는데, 어느 정도가 적당할 지 파악하기 어렵다. 관측 사상 최고, 또는 최악이라는 핑계는 재난을 입은 시민에게 통하지 않는다. 예측 어려운 재난을 대비하려니 인천시는 막막할 게 틀림없다.
인천은 임해도시다. 홍수로 인한 재난은 피하기 쉬웠는데, 드넓은 갯벌 대부분을 개발한 지금은 아니다. 농토는 물론, 많은 녹지를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덮었으니, 재난을 완충하기 어려워졌다. 기후변화로 위험 수준이 오히려 커졌다. 기온 상승은 수온을 높여 바닷물의 부피를 늘리지만, 인천은 그 이상이다. 세계적 규모의 영흥화력발전소는 생산하는 전력보다 많은 에너지를 온배수에 실어 바다에 버린다. 벌써 수십 년 누적되었다. 초고층빌딩과 산업시설을 바닷가에 밀집시킨 인천에서 바다 온도가 다른 해역보다 높으니, 해수면 상승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빙상에 겨우 붙은 남극의 스웨이츠 빙하는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다는데, 평균 높이가 2km를 넘어서는 한반도 크기의 빙하가 일거에 무너지면 해수면은 50cm 상승할 것으로 전문가는 예상한다. 수온 상승이 유난스러운 인천은 아직 뚜렷한 대책이 없다. 이 와중에 관측 이래 최악의 홍수가 쏟아진다면 어떤 일이 생길 수 있을까? 기껏 확장한 배수구는 소용없을 것이다. 올봄 브라질에서 150여명의 희생자를 발생시킨 홍수를 보라. 인천은 안심할 수 없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과 산업시설, 그리고 반지하주택을 휩쓰는 사고를 넘어 도시 기간 시설을 마비시키는 재난으로 이어질 게 틀림없다.
최근 “세계 초일류 도시”에서 “글로벌 톱10 시티”로 목표를 바꾼 인천시는 F1 그랑프리 유치를 위해 분주하다. 세계 10위 도시라. 납득할 이유와 근거 없이, 순위를 따지는 일은 의미가 없다. 다분히 선언이더라도, 세계인의 인식에서 순위권 밖일 인천이 장차 어떤 모습으로 10위 안의 도시로 위상을 개선하겠다는 걸까? 면적이나 소득은 아닐 것이다. 천박한 기준이다. 문화와 역사로 비교하기 벅찬데, 기후위기 시대에 대비하는 기준이라면 장차 달라질 수 있다. 건강과 안전을 넘어 시민의 생존을 확보하려는 노력으로 평가한다면 인천시는 현재 처참한 수준이지만, 노력하기에 따라 개선될 수 있을 텐데, 무엇일까?
어떤 도시로 인식되려 ‘포뮬러1 서킷(F1)’ 유치를 신청했는지 알지 못하는데, 그런 대회가 도시의 위상을 바꿀 리 없다. 2023년 F1 유치로 1조 7천억 원의 경제 효과가 있었다고 인천시 담당자가 평가하는 라스베이거스는 도박산업이라면 모를까, 어떤 면에서든 ‘세계 톱10 시티’나 ‘세계 초일류 도시’가 아니다. 뼈아픈 실패를 경험한 영광과 달리 전용 경기장이 아니라 기존 도로를 활용할 거라지만, 지금은 기후위기 시대다. 세계 굴지의 자동차 생산 국가마다 2030년까지 내연기관 가진 자동차 생산을 금지하겠다고 약속하는 마당인데, 해수면 상승을 앞둔 임해도시에서 온실가스 내뿜으며 시끄럽기 그지없는 F1 서킷이라니.
경주용 자동차 생산과 경주 경험이 쌓인 국가일수록 F1을 비롯한 자동차 경주가 시민에게 인기가 크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이 거세지면서 시민 의식이 달라진다. “시대착오”라는 비난이 커지는데, F1 서킷을 위해 수천억 원에 달할 비용을 감당해야 할까? 장마철을 앞두고 도로변의 배수로 확충에 여념이 없는 상황에서 인천시는 반지하를 벗어나지 못하는 시민을 지원해야 한다. 어떤 내연기관 자동차의 경주도 사양해야 한다. 예산 여유가 있다면 전세 사기로 우울해진 시민을 도울 수 있고 위기 맞은 미래세대를 지키는 데 사용해야 옳다.
‘세계 초일류 도시’든 ‘글로벌 톱10 시티’든, 인천이 세계인에게 부러운 도시로 개선되는 걸 바라지 않은 시민은 없다. 기후위기가 눈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인천 위상은 천박한 과거의 기준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연기관을 퇴출하자는 요구가 빗발치는 상황에 F1 서킷은 터무니없다. 파국을 미래세대에 전가하지 않을 대안에 솔선하는 도시로 모범을 보이면 좋겠다. 힘겹더라도 노력한다면, 미래세대에 존경받는 세계 10대 도시로 인식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