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병상 / 인천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전국 생태조사 일정으로 마이산 척추동물을 조사할 때였다. 20년은 지났는데, 주차장에 새 차를 세워두고 계곡 상류까지 서너 시간 조사하고 돌아오니 열쇠가 앞문에 꽂힌 차가 주차장을 지키고 있었다. 가슴을 쓸어내릴 만큼 주위 사람들에게 고마웠는데, 왜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을까? 워낙 인파가 많았기 때문일지 모르는데, 요즘 같으면 어떨까?
대한민국의 치안과 시민의식이 빼어나다고 흔히 말한다. 유튜브 동영상에서 외국 여행객의 경험담이 주로 뒷받침하는데, 어느 정도 사실로 보인다. 카페나 공공장소에서 손전화기나 노트북 컴퓨터 같은 전자제품을 두고 한동안 자리를 비워도 가져가는 이가 없다고 증언한다. 손 타기 쉬운 물건을 두고 돌아다닌 적은 거의 없는데, 카페에 손전화기를 두고 화장실을 다녀왔더니 과연 제 자리에 있었다. 고의는 아니었는데, 되풀이할 필요는 없으리라.
며칠 전, 생협 물건을 잔뜩 담은 빨간 시장바구니를 정거장 의자에 놓았다. 만보 걸을 겸, 집에서 떨어진 생협을 이용할 때가 많고 그때 이용하는 정거장이다. 한가한 오후, 젊은 아낙과 청년이 기다리는 정거장에서 주변을 걸었다. 버스와 오르내리고 사람이 있지만, 설마 가져가겠나? 버스 도착 시간에 맞춰 걷던 길을 되돌아왔는데, 이런! 아무도 없는 정거장에서 시장바구니가 사라졌다. 눈에 띄는 색인데, 대낮인데, 요즘도 이런 일이 생기나? 청년은 아니겠지? 젊은 부인일까? 생협 라면이 눈에 띄었을까?
시장바구니를 잃고 그 정거장에 가기 싫어졌다. 우리 사회에 대한 배신감일까? 남의 물건에 훔치지 않는다더니, 부정당했다. 시장바구니를 놓고 한두 번 걸은 게 아닌데, 당혹스러운 자괴감이 인다. 주위에 폐쇄회로 카메라가 보이지 않았다. 생협 생필품의 가치는 내게 소중하지만, 동의를 구하기 불편하다. 돈으로 따지면 몇 푼 되지 않은 물건이 시장바구니 때문에 경찰에 신고하는 일은 부담스럽다. 게다가 순전히 내 실수가 아닌가. 하지만 이런 순간을 결국 경험하고야 말았다.
우리 시민의식은 언제부터 높아졌다는 걸까? 폐쇄회로 카메라가 거리를 이중삼중 뒤덮기 전에는 달랐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카메라 때문으로 볼 수 없다. 유럽과 중국을 보라. 폐쇄회로 카메라가 행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지만, 시민의식이 우리와 다르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므로 치안만으로 해석할 수 없으리라. 슬그머니 챙기지 않더라도 살아가는데 아쉬울 게 없기 때문은 아닐까? 비전문가의 시각으로 보면, 생활에 여유가 생기고 복지가 개선되면서 형성된 시민의식이 아닐까? 전보다 잘살게 된 이후의 현상인가?
요사이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의 따뜻한 시선은 우리의 마음에, 시쳇말로 ‘국뽕’을 차오르게 한다. K문화와 K푸드에 이어 K양심도 한몫하는데, 정치권에서 되뇌듯, 민생이 뒷걸음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K양심은 실종되지 않을까? 탄핵으로 이어지게 만든 정권이 들어선 이후, 우리 경제는 줄잡아 수천조 원의 마이너스 효과가 있다고 어떤 경제학자가 비공식적으로 귀띔했다. 그래서 그런가? 인파가 들끓던 상가와 식당가도 한산한데, 인터넷을 풍미하는 국뽕 영상은 한국의 맛과 멋, 경제와 문화, 경관과 치안 상황을 상찬한다.
옛말에 “곳간에서 인심 난다.” 했다. 여유 있어야 남을 배려할 수 있다는 의미일 텐데, 정권이 바뀐 미국이 “미국 우선”을 외치며 관세를 올렸다. 우리 곳간은 언제까지 여유가 있을까? 머지않아 수출입 상품의 가격은 부담스럽게 상승할 것이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의 민생은 더욱 뒷걸음칠 테지만, 사실 심각한 걱정은 무역보다 기후위기에 있다. 곳간의 여유가 아니다. 국제적 기상이변으로 식량 수출입이 통제되고, 흥청거리던 생산과 소비가 화석연료 감소로 위축되면 우리는 파국을 맞는다. 이어질 갈등으로 전쟁이 심각하게 번지면 우리 곳간은 아예 무너진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충분한가? 오만가지 위기 징후는 흉흉한데, 탄핵 상황으로 뒤숭숭한 우리는 안정을 잃었다. 헌법재판소 시간이 지나면 예전의 안정을 찾을까? 확신할 수 없다. 탄핵이 아니라 기후위기로 곳간이 비면, 국뽕은 실종될 수 있다. 곡물 기준으로 식량 자급률이 20%에 지나지 않은 나라의 한계는 분명하다. 곳간에 여유 있을 때, 대책을 세워야 한다. 국뽕에 취해 우쭐할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