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물살을 가르는 순간, 우리는 감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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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물살을 가르는 순간, 우리는 감동한다”
  • 배영수
  • 승인 2014.10.01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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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듣는 세상 7. 인천시청 소속 박태환 선수에게 보내는 고마움의 메시지
경기를 마친 후 기록 확인중인 박태환(왼쪽). 오른쪽은 중국의 쑨양.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조직위원회

박태환의 아시안게임 행로가 막을 내렸습니다. 비록 많은 국민이 원하는 금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은메달 한 개와 동메달 다섯 개를 획득하며, 한국 선수 중에서는 아시안게임에서 가장 많은 수인 20개의 메달을 목에 건 선수가 됐죠. 그가 현재 인천시청에 소속된 선수이고 이번 아시안게임을 위해 과거의 올림픽만큼 열정을 쏟아 부은 것을 보며, 인천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괜히 자랑스럽기까지 합니다.

사실 박태환의 그간 행로가 힘들었다는 것은 많은 언론사들의 소식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대한민국 수영계에 혜성처럼 등장해 세계적인 선수들에 못지 않은 기량을 보여주며 대한민국을 깜짝 놀라게 할 때만 해도 그에게 시련이란 없어 보였습니다. 저도 기억합니다. 그때가 2005년, 빙상의 여제 김연아와 함께 광고업계가 가장 탐내는 인물이었으니까요.

박태환은 그해 11월 열린 ‘마카오 동아시아 경기대회’에서 자유형 400m 종목에 출전, 3분 48초 71로 대한민국 신기록과 함께 금메달을 획득했고, 자신의 주종목이 아니며 첫 출전이었던 자유형 1500m에서는 15분 00초 32로 아시아 신기록을 세우며 은메달까지 추가했습니다. 이듬해 열린 도하 아시안게임에서는 무려 3개의 금메달을 목에 건 것도 모자라 은 1개와 동 3개까지 추가하며 수영계는 물론 대한민국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인기 선수로 자리매김했죠. 아시안게임 이후엔 올림픽을 위해 자신에게 맞는 강도와 감각의 개인 훈련에 돌입했는데 당시 기량은 더욱 발전해 세계선수권대회와 국제 수영대회 등에서 거둔 좋은 성적은 자신이 선택한 훈련이 방식이 결국 옳았음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의 수영인생 절정기라면 누가 뭐래도 2008년의 베이징 올림픽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선수들이 소위 ‘꿈의 무대’로 생각하는 이 올림픽 무대에서, 박태환은 자신의 주종목인 400m 자유형에서 3분 41초 86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그가 금메달의 주인공이 되는 마지막 터치 패드를 찍는 순간, 마치 월드컵에서 우리 선수가 골을 넣은 것처럼 동네가 떠나가라 할 정도의 함성이 들렸었죠. 당시 같이 결선에 출전했던 선수가 종목 최고 선수였던 그랜트 해켓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화제가 됐습니다. 200m 자유형에서도 ‘수영영웅’ 마이클 펠프스에게 밀려 비록 금메달 획득은 실패했지만 값진 은메달을 대한민국에 안겼습니다. 그에게 물어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그의 수영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을 겁니다.

이듬해 그는 다소 슬럼프에 빠집니다. 수영복이 큰 이유였죠. 올림픽에 함께 출전했던 펠프스와 헤캣 등이 물의 저항과 피로의 원인인 젖산의 축적을 최소화하는 전신 수영복으로 기록을 단축할 수 있었던 것과 달리, 그는 전신수영복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해가 바뀌어 2010년, 국제수영연맹은 전신수영복 착용을 금지합니다. 선수가 자신의 기량보다 수영복에 의지하려는 모습을 보여 이를 막아야 한다는 것에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죠. 이때부터 그는 다시 기량을 찾습니다. 400m와 100m 자유형에서 모두 출전해 금메달을 싹쓸이했던 것은 그 징표였죠. 베이징에 이어 광저우에서까지 금메달을 목에 걸자 이를 시기한 중국이 어떻게든 오점을 잡아내려고 여러 번 도핑테스트를 하는 비신사적 몽니를 부리기도 했지만(누가 중국 아니랄까봐), 정당한 금메달리스트인 그가 그런 꼼수에 넘어질 이유는 없었습니다.

본격적인 시련은 2012년 런던올림픽부터 찾아옵니다. 주종목인 400m 자유형에서 부정출발을 했다는 석연찮은 판정으로 실격 처리를 당했던 것이지요. 국제수영연맹의 확인 결과 오심이었다는 것이 밝혀지지만 그것이 번복된 시간이 결승 경기를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라 헐레벌떡 경기를 준비해야 했고 결국 금메달 획득에는 실패합니다. 그러나 400m와 200m에서 소중한 은메달 두 개를 거머쥐며 세계 톱의 실력을 가진 선수임은 분명히 인증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이번엔 대한수영연맹이 그의 발목을 잡습니다. 금메달을 갖고 오지 않으면 포상금을 줄 수 없다고 판단했을까요. 연맹은 규정에 따른 포상금을 제때 지급하겠다는 약속을 깨버립니다. “예산이 바닥났으니 차후에 마련하겠다”는 등 차일피일 지급을 미뤄왔던 것이죠.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정상 지급되었어야 할 포상금이 선수와는 아무런 상의를 하지 않은 채 다이빙 유망주 선수들의 전지훈련 비용에 쓴 사실이 알려집니다. 그러면서 박태환이 올림픽 후 대한수영연맹이 주최하는 경기에 불참하면서 일종의 ‘보복전’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는데, 이 의혹은 그의 팬들과 수영 애호가들 사이에선 이미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무튼 대한수영연맹의 껄끄러운 행정 때문에 연맹과 선수의 갈등은 심화됐습니다. 그런데 이당시 그는 또 하나의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바로 당시 공식 후원사였던 SK와의 계약이 종료되면서 훈련 등 제반 비용을 지원받을 길이 끊어졌던 것이죠. 당시 포상금이라도 제때 받았다면 그것으로 충당할 수 있었지만, 연맹이 이런 저런 이유로 계속 지급을 미루는 잘못된 행정 때문에 더욱 어려움에 처하며 한때는 제대로 훈련을 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가게 됩니다.

당시 방황하던 박태환에게 손을 내민 곳이 바로 지금의 소속인 인천시청이었습니다. 훈련비용을 지원받으면서 맘 편히 훈련을 하고 싶었던 박태환과, 아시안게임의 홍보 효과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 했던 인천시의 입장이 맞았던 것이죠. 그것이 2013년 초의 일로 당시 시청 복싱팀에 입단했던 배우 이시영과 함께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리고 해를 넘겨 올해 광고도 두어 편을 찍으면서 비용에 대한 걱정은 이제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 시점이 다소 늦은 부분에 대해 수영계 인사들은 대부분 아쉬운 소리를 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래도 어쨌든 훈련에 대한 어려움이 상당수 해소될 수 있었던 건 정말 다행이었죠.

실제 그는 아시안게임을 두 달여 앞둔 시점인 지난 7월 MBC배 전국수영대회에서 200m에 출전해 자신의 최고 기록을 경신하며 이번 대회에서도 금메달을 기대하게끔 했습니다. 그러나 런던올림픽 이후 긴 시련의 시간을 보냈던 그에게 이번 대회까지 금빛을 기대했던 것은 애초에 무리였는지 모릅니다. 결국 그는 이번 대회에서는 홈 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리지 못하고 은 1과 동 5의 성적을 기록하는 데에 그칩니다. 아래는 그가 메달을 획득한 종목입니다.

남자 자유형 200m 결선 동메달
남자 계영 4 x 200m 결선 동메달
남자 자유형 400m 결선 동메달
남자 계영 4 x 100m 결선 동메달
남자 자유형 100m 결선 은메달
남자 혼계영 4 x 100m 결선 동메달
 
경기 기간 중 생일을 맞은 박태환(왼쪽)에게 직접 축하 케이크를 전달한 쑨양(오른쪽).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조직위원회

비록 금메달이 없다는 것은 아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 그는 무려 6개의 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통산 아시안게임을 모두 합하면 그가 획득한 메달은 총 20개로, 앞서 언급했듯 국내 선수들 중에서는 최다기록입니다. 이것만으로도 그는 대단한 선수입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많이 힘들고, 많이 아쉽다”고 했지만, 정작 경기를 보는 우리들은 전혀 아쉬움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노력해 대한민국에 메달을 6개나 헌정한 그에게 감동의 박수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손바닥에 통점만 없었다면 아마 인천시민 대다수가 손에 피멍이 들도록 박수를 쳐 주었을 것입니다. 그와 메달 색깔을 다투었기에 경기 중에는 그렇게 미워 보였던 중국의 쑨양이, 경기 기간 중 생일을 맞은 그에게 축하 케이크를 건네주는 모습 역시 우리 시민들에게 큰 감동으로 남았음은 물론입니다. 그 케이크는 단순한 생일 축하의 의미가 아닌, 같은 수영선수로서 앞날에의 안녕을 빌어주는 의미도 있었을 테니까요.

박태환은 경기 후 계획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제는 전국체전을 준비할 것”이라며 다시금 훈련에 매진할 것이라 했습니다. 더불어 뒤늦게 지급받은 포상금이 인천시와의 협의를 통해 비영리 수영재단의 설립에 쓰여질 것이라 알려지면서 더 크게 박수를 받는 모양새입니다. 바라건대 그가 인천시의 선수로 오래 남아 시의 수영 및 스포츠 인프라 구축에 본인도 기쁜 마음으로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가 드리운 크고 훌륭한 그늘 아래에서, 수영 꿈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면, 그의 팬과 수영 애호가들에게 그보다 더 좋은 결과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한편, 시가 아직 은퇴도 안 한 선수의 이름을 수영장 명칭으로 사용해 선수에게 적잖은 부담을 줬다는 지적도 있는데 이는 조금 생각해볼 여지가 있습니다. 인천시의 일방적인 행정으로 ‘사실상 강요’를 받은 부탁이라면 시가 큰 잘못을 한 것이 맞지만, 재단의 설립과 관련해 협의 후 진행됐던 것이라면 일면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그 정도로 그는 이제 ‘한국 수영의 큰 별’입니다. 박태환 선수, 너무나 수고가 많았습니다. 성적이나 메달 등을 획득하지 못해도 실망하지 않겠습니다. 인천시의 소속으로서 당신이 물살을 가르는 그 순간이, 우리 시민들에게는 매번 감동의 연속일 테니까요.

박태환 선수에게 보내는 노래로, 80년대의 천재 가수였던 故 유재하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노래, ‘다시 돌아온 그댈 위해’를 선곡해 봤습니다. 현재 이 세상에 없는 유재하와 달리 박태환 선수는 지금도 현존하는 수영 영웅에 훌륭한 현역 선수인 만큼 분위기가 다소 맞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곡의 후렴구에 등장하는 “이제 그대의 작은 나무, 우리에게 큰 그늘을 드리고 있죠”라는 가사는 많은 후배가수들에게 영향을 주고 토양을 만들어준 생전의 유재하처럼, 박태환 선수 역시 한국 수영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지금도 훌륭한 밑거름을 만들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아시안게임은 분명 실패한 대회로 평가 받겠지만, 박태환의 활약은 당분간 저를 비롯한 인천시민의 마음 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 같네요.
 
여러 가수들 - 1997 다시 돌아온 그댈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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