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도 없는 발전보다 지속 가능한 행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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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도 없는 발전보다 지속 가능한 행복으로
  • 박병상
  • 승인 2024.03.21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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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칼럼]
박병상 /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모처럼 하늘이 맑다. 어제 미세먼지가 지독했다. 몽골에서 황사가 날아왔기 때문이라지만, 이맘때 황사는 일상이었다. 얼어붙은 몽골 사막이 녹으며 마침 강력해지는 편서풍을 타고 날아왔고, 무기질을 함유한 겉흙이 쌓여 농사에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요즘 많이 달라졌다. 중국 서해안에 밀집된 공장과 발전소에서 중금속과 유기화합물, 심지어 방사성 원소가 포함될 수 있어 걱정이 생긴다.

황사로 미세먼지가 느슨한 우리 기준치를 서너 배 초과했어도 어제 초미세먼지는 보통 수준이었다. 어제뿐 아니라 올봄 내내 초미세먼지 기준치는 보통 수준이었는데, 그렇다고 동북아 대기권에 쏟아진 오염물질이 줄지다. 비정상이다. 많은 겨울비가 이유라는데, ‘겨울장마’라 말한 과도한 올겨울의 강우는 역대급 엘니뇨가 원인이고, 엘니뇨는 기후변화의 결과다. 심화하는 기후변화는 탐욕을 멈추지 않는 화석연료 과소비 탓이리라.

‘강남불패’라는데, 불패였던 인천의 아파트 분양이 요사이 저조하다고 언론이 걱정한다. 시세도 떨어지는 모양인데, 언론이 왜 걱정할까? 내 집 마련이 어려운 서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건 아닌가? 주택보급률이 100% 넘는 상황에서 신축 아파트는 치솟아 하늘을 가린다. 인천 외곽의 하늘까지 차지한 어떤 아파트단지는 리조트를 앞세운다. 놀며 살려고 그 아파트를 분양받는 사람이 얼마나 되려나? 부자의 별장보다 투기를 부추기는 광고가 분명한데, 분양에 실패하면 중국처럼 경제불황으로 서민이 고통받는 건 아닐까?

5년 전에 입주한 아파트의 시설이 전과 사뭇 달랐다. 요즘은 더욱 현란해진 모양인데, 발전일까? 누가 보급하는지 모르지만, 우리 아파트의 시설에 감탄하는 외국인이 유튜브에 자주 등장한다. 천장마다 매달린 에어컨과 두 대 이상의 대형 냉장고, 세탁기와 건조기, 온갖 주방기기와 이름도 생소한 스타일러가 기본이란다. 해외 어떤 국가도 상상하지 못하는 고급 가전제품이 가득한 우리나라는 선진국으로 도약한 발전의 덕분일까? 100조 넘나드는 적자를 한국전력에 안긴, 턱 없이 저렴한 전기료 덕분인데, 우리는 그런 호사를 언제까지 이어갈까?

발전은 좋은 것인가? 미국의 34대 대통령 트루먼이 국회 연설에서 자동사이던 ‘발전’을 타동사로 사용했다. 세계를 미국화하겠다는 목적의 선언이었는데, 그로부터 두 세대가 지난 요즘 우리는 꿈에 그리던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미국식 발전이다. 삶에 여유가 생기자, 도시가 말끔해지고 찾아오는 외국인의 시선에 부러움도 섞인다. 국가 발전을 향해 헌신한 선배들의 땀이 집약된 결과인데, 화석연료 과소비와 개발이 동반되었고 금수강산은 거침없이 파괴되었다. 우리만이 아니다. 미국과 유럽, 일본과 중국이 그렇고, 인도가 동참하려 한다.

트루먼의 발전은 ‘경제성장’이다. 두 세대 성장을 계속하니, 세상은 한계를 만났다. 영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케네스 볼딩은 자원이 제한된 세상에서 경제성장이 계속될 거로 믿는 자는 미치광이이거나 경제학자라고 일찍이 냉소했다. 누군가 돌이 없어서 석기시대가 마감된 게 아니라고 말했다지만, 화석연료가 만든 발전은 순간이다. 인류 역사에서 신기루에 불과하다. 수억 년 전에 묻힌 화석연료를 고작 백 년에 바닥낸 인류는 지금과 같은 삶이 계속되리라 착각하지만, 모든 민족의 조상은 그렇지 않았다. 후손의 삶을 위해 욕심을 자제했다.

대략 1만 년 전, 온화한 지구는 홀로세를 맞아 농사를 시작했고 고작 300년 전 화석연료를 태우며 생태계의 우두머리로 군림했지만, 이제 종말을 앞둔다. 생태계에 마지막으로 등장한 인류는 자신의 ‘비빌언덕’인 생태계를 마구 파괴한다. 동식물과 미생물이 피라미드처럼 다양한 생물로 구성되었을 때 안정된 생태계는 급기야 위기를 맞았다. 이제 화석연료가 뒷받침하지 못하면 인류가 만든 신기루는 무너질 것이다. 생명 탄생 30억 년 만에 안정되었던 생태계는 ‘인류세’를 맞았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길 거부하는 인류 탓이다.

냉장고는 물론 핸드폰을 몰랐어도 우리 조상은 전혀 불행하지 않았다. 후손이 불행해질 거라 상상하지 않았다.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어제 같으리라 믿던 조상은 안정된 생태계 안에서 서로 도우며 행복했다. 돈과 권력을 탐하며 이웃과 경쟁을 일삼지 않았다. 불과 두 세대 이전까지 다정한 이웃과 안정된 생태계 덕분에 불안하지 않았다. 더 늦기 존에 돌아가야 한다. 미래세대의 지속 가능한 행복, 아니, 생존을 생각한다면 미룰 수 없다.

곧 22대 국회의원 선거다. 제 아이나 손주의 행복을 원하지 않는 유권자는 없다. 출마가 확정된 모든 후보의 생각도 마찬가지일 텐데, 제발 이제 발전을 밑도 끝도 없이 되뇌지 말자. 과거 어떤 황제보다 잘사는 요즘, 우리는 지나치다. 유권자든 후보든, 정당이든, 미래세대를 먼저 생각했으면 좋겠다. 방관하기에 4년은 길다. 어쩌면 돌이킬 기회조차 없어질지 모른다. 다행인가? ‘기후유권자’ 운동이 인다. 시대의 사명이 아닐 수 없다. 정당과 후보는 미래세대를 먼저 걱정하는 유권자의 목소리에 마땅히 귀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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