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포리 풍경을 바꾼 퇴역 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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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포리 풍경을 바꾼 퇴역 군함
  • 김시언
  • 승인 2024.06.05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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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이야기]
(42) 외포리 강화함상공원
강화함상공원_외포리 바닷가에 정착한 '마산함'
강화함상공원_외포리 바닷가에 정착한 '마산함'

 

퇴역한 군함이 강화함상공원으로 탈바꿈하다

강화군 내가면 외포리에 함상공원이 생겼다. 내가면 해안서로 855. 지난해 어느 날부턴가 어시장 옆 넓은 공터에 잔뜩 쌓인 쓰레기가 치워지고 주차장으로 다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어느 날 커다란 군함이 들어왔다. 엄청 커다란 배가 물 빠져나간 갯벌에, 그것도 주차장 옆에 바짝 있는 게 어색했지만 ‘함상공원 임시개장’이라는 깃발과 함께 ‘공원’임을 알 수 있었다. 강화함상공원은 올봄에 개장했고, 초여름인 요즘에는 주말이나 휴일이면 함상공원을 찾는 사람이 제법 많다. 호국보훈의 달, 6월 첫째 일요일 오후에 함상공원을 찾아가 봤다.

외포리 함상공원에 있는 ‘마산함’은 34년 동안 5대양을 순항하며 각종 훈련에 참가해 우리나라 해군의 발전을 이끌어오다 2019년 퇴역했다. 이제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일컫는 강화군 외포리에 닻을 내리고 강화함상공원으로 재탄생했다.

전국적으로 함상공원은 여러 군데 있다. 서울 마포에 있는 서울함 공원, 김포 함상공원, 당진 삽교호 함상공원, 군산 진포항 함상공원 등 매스컴을 통해 잘 알 수 있었다. 필자가 유일하게 가 본 곳은 ‘김포 함상공원’. 몇 년 전 추석 즈음에 대명항 어시장을 구경 갔다가 우연히 들어가 봤다. 마침 휴일이어서인지 군함을 구경하려는 사람이 꽤 많았다. 초가을이라 볕이 제법 뜨거울 때라 철제로 만든 군함을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깐 고민했다. 어쨌든 그때 함상공원을 본 기억이 나쁘지 않아서 외포리에 함상공원이 생긴다고 할 때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강화함상공원_여전히 도는 레이더
강화함상공원_여전히 도는 레이더

 

최대한 원형 그대로의 모습으로 재생하다

강화함상공원 내부에는 함장실, 조타실, 전투정보실, 통신센터, 76㎜ 상비탄약고 등을 재현했고, 전함 외부 공간에는 76㎜ 함포 2문, 30㎜ 함포 4문, 하푼 미사일, 청상어 어뢰, 미스트랄 발사대 등을 전시해 그야말로 군함의 위용을 느낄 수 있었다.

‘퇴역’이란 말이 주는 어감 때문인지, 군함은 어째 더 쓸쓸하고 외로워 보였다. 하지만 할 일을 마치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공간이 된 것도 나쁘지만은 않은 일이다 싶었다.

‘마산함’은 2019년에 퇴역했다. 강화 함상공원은 ‘마산함’을 최대한 원형 그대로 보존한 방식으로 재생한 공간이다. 일반인이 평소에는 접하기 힘든 군함에 올라가 본다는 것, 더욱이 해군이 어떻게 군 생활을 하는지 알 수 있는 생활공간을 엿볼 수 있었다. 게다가 군함이니 만큼 배 곳곳에 설치된 각종 전투장비도 그대도 볼 수 있었다.

마산함은 한국형 호위함으로 1984년 10월에 진수대 1985년 7월에 취역했다. 울산급은 모두 아홉 척이 제작돼 대한민국 해군의 주력 전투함으로 사용됐다. 또 국산 호위함 최초로 태평양을 횡단했으며, 림팩 훈련에 참여했다. 해군 최우수 포술함으로 선정돼 대통령 부대 표창을 받는 등 활약이 눈부셨다. 2019년에 퇴역했다고 하니 5년 전까지 바다를 누비던 군함이다.

 

강화함상공원_강화도 호국의 근대사를 정리한 게시물
강화함상공원_강화도 호국의 근대사를 정리한 게시물

 

물 빠진 외포리 바닷가에 우두커니 서 있는 군함. 강화군민이라 무료. 표를 개찰구에 되니 저절로 문이 열렸다. 뱃바닥에 화살표로 그어진 관람 방향을 따라 군함에 올라섰다. 저 멀리 석모도 옆으로 물이 들어오고 있었고, 강화 본섬 해안선이 길게 이어졌고, 석모도가 바로 앞에 있었다. 하늘은 푸르렀고 물은 차차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군함 안을 구경하던 젊은 남자 셋이 서로 주고받는 말이 들렸다. “이햐, 그러니까 내 친구가 이런 데서 군대 생활하는구나. 사진 찍어서 보내줘야겠다.” “육군 전역한 우리하고는 생활 공간 자체가 다르구나.” 망망대해. 그 바다에 떠 있다는 것, 지금 이 순간도 어느 바다에 떠 있으면서 군 생활을 하고 있을 젊은이들과 직업군인들이 생각났다.

군인들이 생활하던 공간도 볼 수 있었다. 2층 침대, 책상, 화장실과 세면대, 사물함 등등. 대부분 철제였고, 천장엔 수많은 관이 연결돼 있어 이곳이 배 안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발소도 있었다. ‘마산함은 출동을 나가게 되면 보통 1개월 이상 육지와 떨어진 해상에서 경비임무를 수행하였다. 따라서 마산함에 탑승한 150여 명의 승조원들은 출동 기간 중 2회 이발을 해야 했다. 이발요금은 수병은 무료, 장교 부사관들은 일정한 금액을 지불하여 복지금이나 이발기구 구입에 사용되었다.’ 또 ‘함정 생활 맞춤형 경례문화’에 대한 사진과 설명이 있었는데, 함정의 좁은 공간에서 인사하는 방법이 몇 가지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해군사관학교’인 통제영학당에 대한 설명도 있었다.

 

강화함상공원__마산함 내부

 

강화도는 우리나라 근대사의 최전방

무엇보다 눈이 간 곳은 ‘강화도 호국의 근대사’ 부분이었다. 강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병인양요(1866), 해문방수비(1867)에 대한 설명이 와 닿았다. 프랑스군이 강화부를 침략할 때 그들이 측량한 강화도 최초 측량지도, 강화도 정족산성 전투를 지휘한 양헌수 장군 초상화, 프랑스군을 물리쳐 승리한 양헌수 장군의 공적을 기린 전등사 안에 있는 승전비, 프랑스 군인 쥐베르가 그린 강화유수부 전경. 해문방수비는 1867년(고종4년) 흥선대원군의 명으로 척화의 의지를 담아 세워진 강화 덕진진에 있으며, ‘바다의 문을 막고 지켜서 다른 나라의 배가 지나가지 못하도록 하라.’는 설명이 돼 있었다.

신미양요(1871). 조선군 진지와 미군 이동로가 그려진 지도, 미국함대를 맞아 광성보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항전한 어재연 장군. 미군해군 기함 콜로라도함에 게양된 어재연 장군의 수자기. 미군에게 점령당한 덕진진. 운요호 사건(1875). 일본이 조선의 개항을 목적으로 군함이 운요호를 파견해 무력 도발을 일으켰던 강화도 초지진 앞에 당시 포탄을 맞아 생긴 상흔을 간직한 소나무가 서 있다. 일본 해군의 군선인 운요호가 조선 해안탐사를 빙자해 강화도와 영종도를 습격하고 민간인 학살과 약탈 및 방화 등을 한 운요호 사건 강화도조약의 빌미가 됨. 조선이 외국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자 불평등조약인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 이로 인해 조선은 개항과 동시에 치외법권과 해안 측량권 등을 일방적으로 허용해 국익 침해의 시초가 됨.

군함 안을 둘러보고 나설 때 레이더가 돌아가고 있었다. 대함레이더의 최대 탐지거리는 40㎞, 대공레이더의 최대 탐지거리는 131㎞. 34년 동안 바다를 항해하면서 돌아갔을 저 레이더는 지금도 임무를 다하려는 듯, 외포리 해안가에서 부지런히 사람을 맞이하고 있었다.

 

강화함상공원_군함 안에 있는 이발소
강화함상공원_군함 안에 있는 이발소
강화함상공원__마산함_ 식당.
강화함상공원__마산함_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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