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심야 도심에서 벌어진 조직폭력배들의 유혈 난투극을 무기력하게 지켜보기만 했다가 국민의 깊은 불신을 사고 있다. 지난 21일 밤 인천광역시의 한 장례식장 앞에서 벌어진 일이다. 현장에는 70여명의 경찰이 출동했고 그 중 2명은 총기도 휴대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은 2개 조직 폭력배 130여명이 흉기를 들고 패싸움을 하는데도 전혀 손을 쓰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폭력배 한 명이 흉기에 찔려 크게 다쳤고 지켜보던 시민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 더 한심한 것은 관할 경찰이 상부 보고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명색이 치안총수인 조현오 경찰청장이 언론보도를 접하고서야 인천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 사실을 알았다고 하니 한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경찰이 긴급한 현장 대응부터 상부 보고까지 뭐 하나 제대로 되지 않는 총체적 부실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이런 경찰한테 국민의 치안을 맡겨도 되는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25일 "올해 말까지 조폭과 전쟁을 할 것"이라면서 조폭 제압에 필요하면 `모든 장비와 장구'를 동원하라고 지시했다. 총기사용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조 청장은 인천의 조폭 난투극과 관련해 "두렵다고 꽁무니를 빼면 그게 경찰이냐. 총기라도 과감히 사용했어야 했다"고 질책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경찰청은 이번 사건의 책임을 물어 관할 경찰서장을 직위해제하고, 지휘선상에 있는 본청과 인천지방경찰청 수뇌부 등을 대상으로 내부 감찰에 들어갔다. 경찰청장이 대노한 것은 일견 당연하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생각이 든다. 비슷한 맥락에서 조 청장이 전날 인천 사건을 보고받지 못했다고 언론에 실토한 것도 부적절했다. `누워서 침 뱉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결국 총체적 책임은 경찰청장이 져야 한다. 평소 충분히 훈련되지 않은 경찰이 총기를 함부로 쓰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 관건은 그런 위급한 상황에서 총기를 적절히 사용할 정도로 경찰이 훈련돼 있었느냐 하는 것이다. 솔직히 경찰은 총기를 다루는 능력이나 총기사용시 필요한 주의집중력 어느 것도 제대로 갖췄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조폭들의 패싸움 현장에서 총기를 쓸 엄두조차 내지 못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조폭과의 전쟁 같은 일회성 `뒷북치기'로는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 여론이 잠잠해지면 원점으로 회귀하는 악순환만 되풀이할 뿐이다.
경찰의 요즘 최대 관심사는 수사권 조정 문제일 것이다. 지난 6월 형사소송법 개정시 남겨뒀던 `내사(內査)' 범위를 놓고 벌써 검찰과의 마찰음이 커지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최근 경찰의 자질을 의심할 만한 사건들이 꼬리를 물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광주광역시에서는 술을 마시고 포장마차 여주인을 폭행한 경찰이 입건됐고, 전남 목포에서는 불법 게임장 이권에 개입한 경찰이 검찰에 구속됐다. 서울 동부지법에서는 미제사건을 엉뚱한 피의자들한테 덮어씌웠다가 기소된 경찰이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고, 서울 강남에서는 동료 경찰을 협박해 수백만원을 뜯어낸 경찰이 `한 식구'인 경찰에 구속되기도 했다. 경찰이 `무기력한 공권력'으로 망신을 당한 것이 처음도 아니다.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공사를 방해하는 폭력시위대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던 경찰의 나약한 모습이 아직도 국민의 뇌리에 생생한 것이다.
경찰의 이런 불미스러운 모습은 최종 결론을 앞두고 있는 검경 수사권 조정과 맞물려 더욱더 국민의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아직도 지저분한 구태를 벗지 못한 경찰이 무엇 때문에 수사권 확보에는 그토록 목을 매는지 궁금하다. 이런 경찰한테 그들이 원하는 압수수색, 계좌추적, 참고인 소환조사 등의 수사권을 인정해야 하는지 근본적인 회의감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방인 검찰에 전혀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대구지검이 24일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기소한 김모(43) 변호사의 사례만 봐도 그렇다. 김 변호사는 서울 서부지검 부부장 검사로 재직하던 2008년 5월 고소인으로부터 2천만원 상당의 금품과 향응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지난 2월 검찰에서 퇴직하기 이전에는 김 변호사의 범죄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검찰은 다른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꼬리를 잡았다고 하지만 김 변호사가 현직 검사라면 과연 구속기소까지 했을지 의문이다. 검찰조직의 폐쇄성 때문에 이런 사건은 `아직 드러나지 않는 것들이 많지 않을까' 하는 불신의 확산을 가져온다. 차제에 검찰도 `아직 경찰은 믿을 수 없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지 한번 자문해봐야 한다. <출처:연합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