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 뭐길래" - 고달픈 직장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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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가 뭐길래" - 고달픈 직장살이
  • 이혜정
  • 승인 2011.12.09 13: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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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영어학원에 과다업무로 "쉴 틈이 없다"


취재 : 이혜정 기자

최근 '글로벌시대'를 지향하며 직장인들에게 영어교육을 실시하는 회사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직장인들은 평소 지나친 업무량에다 승진을 위한 영어교육으로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받기 일쑤다.

한 여행사에 4년째 근무하고 있는 정모(33)씨는 영어 때문에 승진에 불이익을 받았다. 그는 여행사 근무 4년동안 영업실적이 매우 뛰어난 직원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직장동료들에게만 인정을 받을 뿐이다. 토익이나 토플 점수, 회사 자체로 보는 영어시험이 우수하지 않으면 승진대상에서 제외된다.

정씨는 "영어시험 성적 규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토익 또는 토플 성적이 좋지 않거나 제출하지 않으면 승진에 불이익을 받는다"면서 "직장동료보다 실적이 우수하다고 인정을 받았지만 토익이나 토플 또는 사내 영어시험 성적이 낮다는 이유로 승진에서 불이익을 당했다"라고 토로했다.

그는 "동기보다 일을 잘한다는 인정을 받았지만 얼마 전 나보다 실적은 좀 낮지만 영어성적이 뛰어난 다른 친구가 대리로 승진을 했다"면서 "일을 하는데 뛰어나도 영어로 인해 불이익을 받는다는 게 매우 속상하다"라고 하소연했다.

그래서 그는 회사 인근 영어학원에 등록해 오전 9시까지 출근하기 전 수업을 듣는다. 하지만 그것 역시 그에게는 너무 부담스럽다.

"오전 9시까지 출근을 하려고 7시에 영어학원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자기개발을 위해 공부도 하고 일도 하면서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퇴근시간이 일정한 것도 아니고 업무를 처리하거나 어쩌다 회식에 이리저리 사람을 만나다 보면 밤 10시~11시는 되어서야 퇴근을 하는데, 아침에 일어나는 게 아주 힘들어요."

정씨는 많은 업무에다 승진을 위한 영어공부에 치이다 보니, 하루 걸러 수업에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 인천이 집이었던 그는 6개월 전 회사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다.

"영어학원 때문에 자취를 하기 시작했다고 하긴 뭐하지만, 2시간 넘게 걸리는 출퇴근 시간을 줄이기도 하고, 아침에 학원을 가기 위함도 이유 중 하나입니다. 어떤 때는 일을 하러 다니는지, 영어를 배우러 다니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씨에 따르면 상당수 주변 동료들은 주말에 시간을 내 학원을 다니면서 '주말 개인생활'마저 포기한 상태라고 한다.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는 박모(26·여)씨도 마찬가지다.

박씨도 입사 전부터 지금까지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회사에 1년 반 전 입사한 그는 하루가 멀다하고 야근을 한다. 바로 윗 상사가 중요한 발표를 하게 되면 함께 작업을 하거나, 막내라서 업무 외 궂은 일까지 도맡아 한다. 그러다 보면 밤 10시는 넘어서야 퇴근을 한다.

그뿐만 아니다. 업무량이 많을 때는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일을 한다. 과다업무에 영어공부까지 해야 하는 박씨는 점점 지쳐간다

박씨는 "업무량이 많아 입사한 이후 퇴근시간이 한 번도 일정하지 않았다"면서 "일이 많으면 상사들도 주말에 나와서 일을 하기 때문에 마음 편히 쉬지도 못하고,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다"라고 말했다.

처음 입사한 지 얼마 안돼 퇴근시간에 맞춰 가려다 바로 상사에게 핀잔을 들었다고 한다.

"입사한 지 4개월 정도 됐을 때, 매일 야근과 주말까지 일을 해야 하는 것 때문에 지쳐서 한 번은 최대한 빨리 일을 마무리하고 제시간에 퇴근하려다가 상사에게 혼이 났습니다. 그 뒤로부터는 눈치가 보여서 제시간이 되도 나가지도 못하고 자리에 앉아 있기 일쑤지요."

그는 "업무량이 많은 건 일이라고 참을 수 있지만, 반강제적으로 영어수업을 듣게 하고 시험을 보는 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서 "자기개발도 좋지만 업무량이 많아 하루하루 지쳐 있는데, 억지로 오전에 영어수업이랑 시험까지 봐야 하니 정말 짜증난다"라고 하소연했다.

영어수업을 듣지 않으면 어떤 불이익을 주는 건 아니지만 상사들이 오전 일찍 수업을 듣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따라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매주 한 번씩 보는 테스트에서 성적이 나쁘면 다른 팀과 경쟁하듯 오전 회의 시간에 팀장들이 잔소리까지 합니다. 도대체 업무를 하라는 건지 영어성적을 올리라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매일 오전 일을 하다가 조는 게 박씨 일과라고 한다. 평일에는 과다업무로 도저히 영어공부를 할 수 없어 주말에 하루 4시간 투자한다.

"영어공부를 하는 건 좋지만 왜 하는지,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주말을 이용해 학원을 다니는 건 이제 평범한 일이지요. 회사에서 업무량을 줄여주거나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를 덜어줘야지, 직장인들이 무슨 철인입니까?"

취업포털 사이트 사람인이 직장인 1434명을 대상으로 '직장에서 화나는 순간'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 약 95%가 회사에서 날마다 욱하는 감정을 느낀다고 답했다. 직장이들이 화나는 순간은 하루 평균 3.4회에 달했다.

이중 화가 나더라도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한다'는 답변이 64.6%로 가장 많았다. '자리를 피한다' 28.5%, '오히려 웃으며 기분 좋은 척 한다' 11.9%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상당수 직장인들은 화가 나도 감정을 숨기거나 참는다.

전문가들은 직장인이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면 생활에 변화를 주고 감정을 드러내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홍상희 정신과 병원장은 "경쟁구도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게 과제인데, 사회구조가 변화하지 않으면 근본적으로 사회가 바뀌기 어렵다"면서 "다만 그 생활 속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갖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갈등 자체에 대한 고민을 하기보다 여행을 가가나 음악을 듣는 등 휴식을 위한 시간을 조끔식 늘리고, 바삐 사는 삶 속에서 '느림의 미학'을 즐겨보려는 활동을 하는 게 좋다"라고 조언했다.

또 직장상사와 동료, 선후배 간 관계에서 갈등이 발생할 경우에는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고 감정적이지 않은 상태로 대화를 시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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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민 2011-12-08 09:23:52
직장인으로서 자기계발과 일과 생활 사이에 균형을 잡는다는 게 쉽지 않은 걸 느낍니다. 그렇지만 해야 한다면 조금 더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해보니까, 세상을 탓한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더라구요... 기자님 말대로 영어를 쓸 수 있는 곳으로의 여행이나 영어마을 방문이나 영어를 쓰는 봉사활동을 하는 방법을 실천해보는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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