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통증이 없으면 시에 뼈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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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통증이 없으면 시에 뼈가 없는 것이다."
  • 김영숙 기자
  • 승인 2013.08.01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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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팝 포엠, 김수복 시인의 <외박>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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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쓴 시는 많은데 좋은 시가 드물다. 치유가 안 되는 시가 많다. 요즘 유행하는 ‘힐링’이라는 말처럼 독자의 마음을 뒤흔들어 치유해야 하는데, 과연 요즘 시들이 감동을 주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시는 울림이 있어야 한다.” 
7월 31일, 구월동 모래내시장 가까이 있는 ‘리스팝 포엠’에서 어김없이 시낭송회가 열렸다. 이날은 김수복 시인이 시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시인은 1953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났으며, 단국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1975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외박> <달을 따라 걷다> <우물의 눈동자> <사라진 폭포> <모든 길들은 노래를 부른다> 이외의 여러 시집과 저서가 있다. 시인은 ‘좋은 시’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좋은 시’가 절실하다. 시를 쓸 때, 자기 삶의 깊은 상처와 고통이 시로써 정서화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해하기 전에 새로운 것을 느낄 수 있게 하고 감동을 줄 수 있다. 쾌감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심금을 울리는 감동이 있어야 한다. 요즘, 시를 씀으로써 내 삶에 대한 치유를 하고 있다. 긴 터널을 빠져나오는 쾌감을 느낀다. 오늘 말할 시들은 20대 때, 그러니까 1970년대 대학 다니면서 인간적인 삶이 억압당할 때, 그 과정 속에서 느꼈던 시들이 다시 되살아나 그때를 되돌아보면서 썼다.”


봄나무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아무에게나 자꾸 말을 걸고 싶어지는,
불을 끄고 방 안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혼자가 아닌 우리로 피어나고 싶은 눈망울이 보이는,
어디선가 새들의 한숨 섞인 휘파람 길게 들리는,
지층을 뚫고 발바닥이 뜨거워지기를 기다리는,
청천벽력이 지나가는,
막막한 어둠의 눈에 눈동자가 되는,
너의 등을 끌어안고 활짝 웃는,
두 눈을 감고 한없이 호수의 밑바닥으로 내려가서
눈을 뜨고 죽고 싶었던
겨울에서,
이제는 한없이 바람에게 말을 걸고 싶은
봄나무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이 작품은 시를 정리하면서 서시로 선택하게 됐다. 이미지, 정서를 아우르는 시로서 불쑥 쓰게 됐다. 지금 생각하면 ‘수목장’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 이 시는 타자와의 소통 갈구, 자신의 삶의 성찰이라는 두 가지 축을 지니고 있다. 1992년도에 45일 동안 미국 일주여행을 할 때, 한국말을 들을 수 없었다. 포클랜드 강변을 걸을 때 외로움을 견딜 수 없었다. 그 심정이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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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되는 너에게

사랑의 시체가 말했다

가장 잘 자란 나무 밑에는
가장 잘 썩는 시체가 누워 있다고

가장 큰 사랑의 눈에는
가장 깊은 슬픔의 눈동자가 있다고

봄나무에게서 꽃이 피는 너에게

“이 작품은 ‘봄나무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시의 동생이다. 같이 씌어졌다. 우리 학과 연구실 연구원 하나가 영주에서 과수원을 하는 친구가 있었다. 한 번은 그 친구랑 점심을 먹는데, 자신의 할아버지가 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시체가 묻혀 있는 나무는 알이 실하고, 다른 사과랑 다르다.’ 말하자면 ‘기체에서 꽃이 피는 이야기’다. ‘사람의 시체’라고 할 수 없고, 실제로 사람 몸 속에 살면 스스로 삶에 즐거움과 기쁨이 생기지 않겠나. ‘사람의 시체’를 ‘사랑의 시체’로 바꾸었다. ‘사랑의 시체가 말했다’는 구절이 먼저 떠올랐다. 앞에 쓴 시랑 일란성 쌍둥이로 ‘산통’이 없는 시다.”


외박

좀 더 쉬었다 갈게요. 하느님!
늦게 핀 들꽃도 꽃이잖아요.
골목 안, 평생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핀
이 개망초꽃 두고 갈까요?
저 분도 바르지 않은 눈물 보이지 않으세요?
전 이 골목 안, 저 오래된 국숫집 담 밑에 핀
어머니 살아 돌아오신 꽃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하느님 좋아하시는 사람꽃도 피었네요.
아직도 갈 곳 없어 다가오는 구름도,
아, 그 아득한 첫사랑 파도도 아직 피어 있잖아요.
저 해가 바다 너머 고요히
잠들기 전에 가지 않을래요.
아무리 부르셔도 이 골목 안
저 사람꽃 질 때까지
복종하지 않을래요
하루만,
딱 하루만 사람꽃으로 피어 있을래요!


“‘아, 내 인생 삼분의 1은 외박을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을 떠났다. 그때부터 ‘외박’이 시작됐다. 대학 때도 금요일 밤에는 어디론가 훌쩍 떠나기를 좋아했다. 지도를 보고 다닌 데를 금 그으면서 길이 있는 데는 다 다녔다. 초기에 낸 <지리산 타령>이라는 첫 시집에 그때가 많이 들어 있다. 70년대는 ‘시만 쓰게 하는 시대’가 아니었다. 몇 번 이사를 하면서 그때 가지고 있던 시집을 잃어버렸다. ‘삶의 뿌리를 내릴 수 없던 시절’이었다. 그때부터 외박이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이 시는 제주도에 있을 때 썼다. ‘사람꽃’은 예쁘지 않나.”


하느님의 여인숙

하느님! 이미 참회하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벚꽃 사이로  운구 지나와
산역 지낸 후
사람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떨어져 누워 덮는
새벽 이불도 좋고요
적막의 베개도 좋고요
온갖 새들과 벌레들의
울음방이 되었어요
동쪽 하늘로 돌아가는 달의 그림자가  자고 가는
여인숙이 되었네요
숨어서 늦게 들어오는 별들에게도
벗이 되어 인생의 하룻밤을 보내고
돌려서 돌려서 보내드릴게요
오늘도 죄 없는 한 사람 가까이 올라와
속죄의 방에서 하룻밤
자고 올라갔습니다

“‘외박’하려면 ‘여인숙’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시집을 정리하다 보니 또다른 ‘외박’에 대해 생각했다. 사실 ‘무덤’이다. 참회하지 않고 죽는 건 죽는 게 아니다. 무덤에서 참회하고 속죄의 방에서 하루 자고 났다. 고등학교 다닐 때 무덤가에서 텐트를 치고 잤다. 새벽 이슬의 감촉은 잊을 수 없다. 또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한남대교 근처 모래사장에서 소주 한 병과 라면땅 한 봉지를 먹으면서 통행금지가 해제되길 기다렸다. 나에겐 절실한 경험들이다. ‘무덤’이라는 시가 여러 과정을 거쳐 ‘외박’이라는 시와 어우러졌다. 일본 영화를 보다가, 평생 유곽을 돌던 노인이 죽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유곽의 여인들 속에서 정신적 스승이 되고, 죽어서 일본 기생들이 다 나와서 눈물을 흘리는, 그런 장면들이 모여져 작품이 됐다.”
 
 
 
노을이 물드는 화석

저렇게 핏줄을 말라갔을 것이다
흘릴 눈물도 없는 눈물을
만리 밖 바람의 간절한 소리를
제 귀에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그 긴 강물의 탯줄을
몸속에서 밀어올렸을 것이다

툭 툭, 땅속 폐경이 된 자궁을 들어올려
아득히 능선 위로 자지러지는
태양을 몸 안으로 조이고 조여서
씨를 받아내었을 것이다

노을이 퍼져
재가 될지라도
천년 몸속 광원을
지는 태양 속으로 고이 간직해 내보이면서
한 잎 두 잎, 입을 벌리며 태어나듯이
죽은 몸으로 다시 살아날 것이다

“심포지엄을 가서 화석을 보았다. 담아두었던 이미지들이 낙조를 보면서 이 화석이 떠올랐다. 해가 지는 이미지가 시적 발상이 됐다. 전체적으로 ‘봄나무 속으로 걸어들어간다’는 시와 연결된다.”


골목

저녁때가 되자 골목은 더욱 깊어졌다

덜컥, 몸이 잠기고
마취된 골목

골목 안의 평화가 잠시 다녀갔다

아득한 길,

내장으로 은밀하게
기쁘게 혹은 슬프게 드나들었던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이제 그 골목길은
가택연금되었고,
그렇게 집으로 가는 모든 길이 잘려나갔다

노을이 물드는 골목을
필사적으로 빠져나온다

골목 입구에 나서서
허위와
암세포와
모든 절망의 과거를 폭로한다

지나온 모든 민족주의와 모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와 맑스와 레닌과 모택동과
그러나 김구와 소월과 윤동주,

그러나 모든 상처는
몸과 거리로 통하는 출구,

골목 안에서 사유를 하고
혁명을 꿈꾸고 권력과 맞서서
고독한 쓰레기통 속에서
침을 뱉어 진흙을 눈에 발랐다

눈이 멀어야 눈을 뜰 수 있었다

밖으로 나가는 길은 보이지 않는 법,
들어오는 길만의 고독한
저 먼,
억압의,
목을 치던 꿈속의 길들도

이제는 눈을 뜨고
아득한 골목이 되었다

“이 작품은 ‘서정시학’에 신작특집으로 발표한 시다. 구체적 발상은 70년대 유신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다 쫓겨서 황학동 골목에 들어가서 ‘골목길’을 봤다. 종로3가 골목 골목처럼, 우리 몸 속 골목을 생각했다. 이 작품도 쉽게 씌어졌다. 사실 여태껏 병원에 입원한 적은 없다. 내 몸이 어떨까 궁금하다. 나도 모르는, 내 생명을 억누르는 70년대 숨어들었던 골목처럼 골목이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지만, 몸 속의 골목을 느끼려고 한다. 70년대 억압받던 골목의 이미지가 들어있다. 현실적인 면이 내장돼 있다. 시대의 통증, 사회의 통증이 없으면 시에 뼈가 없는 것이다. 구조물이 있어야 시가 단단하다. 우리는 윤동주 시를 읽으면서 처절한 항일에 대한 시를 느껴야 한다.”


리스팝 포엠 8월 시낭송회는 8월 30일 오전 11시다. 이 날은 이상국 시인이 시 이야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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