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들은 불쌍해요” - 아이들에게 모래 놀이터를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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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들은 불쌍해요” - 아이들에게 모래 놀이터를 허하라
  • 이혜정
  • 승인 2015.12.15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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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칼럼] 이혜정 / 청소년창의문화공동체 '미루' 대표
 
뭘 입어도 애기 같던 1학년 신입생들이 이제 신입생 티를 벗고 제법 중학생다워졌다. 야외 활동 하자고 우겨대기도 하고 글은 죽어도 안 쓰겠다고 버티기도 한다. 그날의 대화도 우기기와 버티기의 와중에 시작되었다.
“그래. 하긴 너희들이 안 됐다. 샘은 중학교 때 맨날 산으로 다니며 개구리 잡고 말타기 하면서 놀았는데…”
“그렇죠. 저희들 정말 불쌍하죠. 그래도 옛날에는 좋았는데… 유치원 끝나면 우리 곧바로 놀이터에서 해질 때까지 놀았잖아. 그 때가 좋았는데… 저녁 다 돼서 밥 먹을 때 쯤 되면 엄마들이 부르러 오고. 와! 그 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 야 , 근대 너네 요즘 놀이터 봤냐? 모래도 없어. 정말 안됐지 않냐, 요즘 애들. 모래도 없는 놀이터가 무슨 놀이터냐? 요즘 애들 창의성은 보나마나 꽝이다”
 
초등학생 티를 이제 막 벗은 아이들이 장탄식을 늘어놓았다. 조금 전만해도 자신들이 불쌍하다고 장광설을 늘어놓던 아이들이 모래 놀이도 못하는 이 나라 더 어린 세대를 안쓰러워한다. 그래도 자기들은 모래놀이터에서 실컷 놀아봤던 언니, 오빠들이라나.
 
하긴 이 아이들의 걱정이 단지 우려만으로 그치는 것은 아니다. 2008년경부터 시작된 놀이터 개조 사업으로 대부분의 놀이터들이 다양한 테마를 가진 새로운 놀이터로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다양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천편일률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공통점은 모래놀이터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놀이터 바닥재는 생활고무와 폐타이어를 재활용한 바닥재, 합성고무·재생 발포플라스틱류를 포함한 잡고무 제품, 모래 등으로 분류되고 있다. 하지만 무슨 까닭인지 대부분의 놀이터 개조 공사에서는 안정성이 확인되지 못한 고무제품들이 일률적으로 결정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2013년 국립환경연구원의 ‘놀이터 바닥재로부터 용출되는 중금속 노출 특성’이라는 연구에 의하면 폐합성수지, 폐타이어 등을 중간 원료로 사용하는 놀이터 바닥재에서 아연, 크롬, 납 등의 중금속이 검출되었다고 한다. 특히 이 연구는 인천 지역의 놀이터 6곳을 대상으로 진행되어 우리가 살고 있는 인천 지역의 놀이터의 실상을 볼 수 있었다. 어린들이 이러한 바닥재에 일정시간 노출될 경우 중금속들이 어린이들의 피부를 통해 체내로 흡수된다고 한다. 평균 몸무게 24.09Kg인 6∼7세 아동의 손바닥 등 피부가 바닥재 1Kg에 30분간 노출될 경우 아연 0.0013∼0.0529mg, 납 0.0001∼0.0008mg, 구리 0.0067∼0.0229mg, 바륨 0.0073∼0.0255mg이 체내에 흡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국립환경과학원 연구자료 인용) 물론 흙이나 모래도 흙은 매번 갈아주지 않으면 딱딱해져서 다칠 염려가 있고 미세먼지와 중금속, 기생충 등에 노출되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고무매트나 우레탄 매트처럼 지속적으로 중금속에 노출되는 위험을 막을 수 있고 무엇보다 관리를 통해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 하지만 고무 바닥재의 경우 한 번 시공하고 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아이들이 위험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친환경 소재로 흙바닥을 매번 교체해 주거나, 일본의 경우 화산재를 쓰고 있다. 호주의 경우에는 유칼리툽스 나무의 톱밥으로 바닥을 만들어 아이들이 친환경 소재에서 환경유해물질이 없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더 큰 문제는 고무바닥재의 놀이터가 우리 아이들로부터 마음대로 놀 수 있는 자유를 빼앗고 창의성이 자라날 토양을 거세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래 놀이터는 상상공장이다. 모래를 가지고 거대한 성을 만들고 물길을 내고 거대한 도시를 만들고 동물들을 만들고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든다. 모래와 흙은 아이들이 원하는 세계를 자유롭게 상상하게 하고 구체적으로 현실화한다. 촉감을 자극하는 모래의 특성은 만지고 모으고 두드리고 흩뿌리는 가운데 아이들의 감각기능과 소근육의 발달을 선물한다.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자유롭게 표현하면서 성취감을 느끼고 함께 놀이하는 아이들과의 사회성을 획득하면서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모래놀이터에 노는 아이들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해가 지는 줄 모르고 놀 정도로 행복해한다는 것이다. 그런 모래놀이터가 사라지고 있다. 모래놀이는 이제 백화점 문화센터와 키즈까페의 상품으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중학생 친구들의 탄식을 귀를 기울여야 한다. 모래놀이 없이 자란 아이들이 창의적일 수 없다. 숨 막히는 고무바닥, 변화시킬 수 없는 짜여진 공간이 아니라 아이들이 움직이는 대로, 노는 대로, 구르는 대로 반응이 오는 모래 놀이터가 아이들의 미래를 창조적으로 변화시키는 작은 출발이 될 것이다. 이 땅의 아이들에게 모래놀이터를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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