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편 계씨(季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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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6편 계씨(季氏)
  • 이우재
  • 승인 2010.09.30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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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6편 계씨(季氏)

  주자는 남송(南宋) 초의 학자 홍흥조(洪興祖)의 말을 인용하여 이 편이 『제논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한서예문지(漢書藝文志)』에 의하면 당시 전해지고 있던 논어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었다고 한다. 고문(古文)으로 쓰여진 『고논어』, 지금의 산동성 지방인 제(齊)의 학자들 사이에서 전해 내려온 『제논어』, 그리고 공자가 태어난 노(魯)의 학자들 사이에서 전해 내려온 『노논어』가 그것이다. 이 편이 『제논어』가 아닌가 하는 의혹을 받는 것은 논어의 다른 편과 몇 가지 차이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눈에 띄는 차이점은 다른 편들이 子曰로 공자의 말을 시작하고 있는 데 반해(물론 약간의 예외는 있다), 이 편은 모두 孔子曰로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미세한 문제이지만, 이 편에 나타나는 공자의 말에는 이상하게도 특정의 숫자를 의식하여, 그 숫자에 맞춰 설명을 가하려고 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보인다는 점이다. 4장의 益者三友 損者三友, 5장의 益者三樂 損者三樂, 6장의 侍於君子有三愆, 7장의 君子有三戒, 8장의 君子有三畏, 10장의 君子有九思가 그것들이다. 3이나 9라고 하는 숫자에 억지로 내용을 끼워 맞추려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에 따른 당연한 결과로 논어의 다른 편, 특히 전반 10편에서 많이 느낄 수 있는 문장의 함축미를 이 편에서는 거의 느끼기 어렵다. 이런 면들이 아마 『제논어』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불러 일으켰으리라고 생각되나, 현재로서는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 편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인(仁)이라는 글자가 한 번도 쓰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1, 季氏將伐顓臾. 冉有季路見於孔子曰 季氏將有事於顓臾. 孔子曰 求 無乃爾是過與. 夫顓臾 昔者先王以爲東蒙主 且在邦域之中矣. 是社稷之臣也. 何以伐爲. 冉有曰 夫子欲之 吾二臣者 皆不欲也. 孔子曰 求 周任有言曰 陳力就列 不能者止. 危而不持 顚而不扶 則將焉用彼相矣. 且爾言過矣. 虎兕出於柙 龜玉毁於櫝中 是誰之過與. 冉有曰 今夫顓臾 固而近於費. 今不取 後世必爲子孫憂. 孔子曰 求 君子疾夫舍曰欲之而必爲之辭. 丘也聞 有國有家者 不患寡而患不均 不患貧而患不安. 蓋均無貧 和無寡 安無傾. 夫如是 故遠人不服 則修文德以來之. 旣來之 則安之. 今由與求也 相夫子 遠人不服 而不能來也. 邦分崩離析 而不能守也. 而謀動干戈於邦內 吾恐季孫之憂 不在顓臾 而在蕭墻之內也.
  계씨가 장차 전유(顓臾)를 정벌하고자 하였다. 염유와 계로가 공자를 찾아뵙고 말하기를 “계씨가 장차 전유를 정벌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구(求)야, 그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냐? 원래 전유는 옛날에 선왕께서 동몽산의 제주(祭主)로 삼으신 나라로, 그 땅은 우리나라 안에 있다. 우리나라의 사직(社稷)의 신하이다. 어찌하여 정벌하려 하느냐?”
  염유가 말하길 “그 분께서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 두 신하는 모두 하고 싶지 않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구야, 옛날 주임(周任)이 말하길 ‘힘을 다하여 벼슬자리에 나아가되, 능력이 모자라면 그만둔다’고 하였다. 위험한데도 도와주지 않고, 넘어지는데도 붙잡아 주지 않는다면, 그런 신하를 어디에다 쓰겠는가? 또 네 말도 잘못되었다. 호랑이나 외뿔소가 우리에서 뛰쳐나오고, 거북 껍질(龜甲)이나 보옥(寶玉)이 궤 속에서 깨진다면, 그것은 누구의 잘못이겠냐?”    
  염유가 말하길 “전유는 성곽도 견고한데다, 비(費) 땅에 가까이 있습니다. 지금 취하지 않는다면, 후세에 반드시 자손들의 근심거리가 될 것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구야, 군자는 자기가 원한다고 솔직히 말하지 않고, 억지로 꾸며대어 말하는 것을 미워한다. 내가 듣건대 ‘나라를 갖고 있거나, 가문을 갖고 있는 자는 백성의 숫자가 적은 것을 걱정하지 않고, 고르지 못한 것을 걱정하며, 가난한 것을 걱정하지 않고, 평안하지 않은 것을 걱정한다.’고 하였다. 생각하건대 고르면 가난함이 없고, 화합하면 백성의 숫자가 적은 것도 없으며, 평안하면 기우는 일도 없느니라. 이런 까닭에 먼 데 사람들이 복종하지 않으면, 학문과 덕을 닦아 그들을 오게 만들고, 이미 왔으면 평안하게 하여야 한다. 지금 유와 구는 계씨를 돕고 있으면서, 먼 데 사람이 복종하지 않는데도 오게 하지 못하고 있으며, 나라가 갈라지고, 무너지고, 흩어지고, 쪼개져도 능히 지키지도 못하고 있으면서, 나라 안에서 전쟁을 일으킬 것을 꾀하고 있으니, 나는 계손씨의 근심이 전유에게 있지 않고, 그 울타리 안에 있을까 염려된다.”

  <해설> 전유(顓臾)는 노(魯)나라 영내에 있는 작은 나라 이름이다. 나라(國)라고는 하나 영토가 작은 관계로 천자에게 직속하지 않고 제후인 노(魯)에게 속한다. 이런 나라를 부용(附庸)이라고 한다. 염유(冉有)는 염구이고, 계로(季路)는 자로이다. 두 사람은 일찍이 계씨의 신하였다. 계씨가 노나라의 절반을 차지하고서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전유를 쳐 영토를 확장하려고 하자, 공자에게 그 가부를 물은 것이다.
  동몽(東蒙)은 지금의 산동성 비(費)현 서북쪽에 있는 몽(蒙)산이다. 전유는 동몽산의 제사를 받드는 제주(祭主)로 선왕으로부터 봉국(封國)되었다. 사직지신(社稷之臣)은 나라의 사직을 받드는 중요한 신하이다. 전유가 비록 부용(附庸)의 나라(國)이나, 노나라에 속해 있으므로 노나라의 중요한 신하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따라서 정벌의 대상이 아니라고 공자가 말한 것이다.
  그러자 염구가 변명한다. 자기들이 아니라, 계씨가 그렇게 하려는 것이라고.
  주임(周任)은 고대의 이름난 사관(史官)이다. 陳力就列의 진(陳)은 포(布)로 펼치는 것이요, 열(列)은 위(位)로, 벼슬자리다. 모름지기 군자는 벼슬자리에 나아가 자신의 능력을 다 발휘하되,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그만두는 것이다. 危而不持 顚而不扶의 위(危)는 위험한 것, 지(持)는 도와주는 것, 전(顚)은 넘어지는 것, 부(扶)는 부축하는 것이다. 피상(彼相)의 상(相)은 도와주는 사람이다. 염구와 자로가 주군인 계씨의 잘못되고 위험한 상황을 알면서도 그를 도와 바로잡지 않으니, 그런 신하를 어디에다 쓰겠냐고 꾸짖은 것이다. 시(兕)는 외뿔소, 합(柙)은 우리, 구(龜)는 거북의 껍질(龜甲), 독(櫝)은 궤(櫃)이다. 호랑이와 외뿔소가 우리에서 나오고, 거북의 껍질과 보옥이 궤 속에서 깨진다면, 그것은 보관하는 자의 잘못이다. 마찬가지로 계씨의 잘못된 행동을 막지 못하여 나라가 혼란스러워지고, 계씨에게 누가 된다면, 그것은 계씨를 보좌하는 염구와 자로의 잘못이다. 공연히 계씨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말라는 뜻이다.
  마침내 염구가 본심을 털어놓는다. 전유가 계씨의 중요한 근거지인 비(費)에 가까이 있고, 그 성곽도 단단해, 지금 치지 않으면 장차 후대의 근심거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즉 염구 자신도 전유를 정벌하는데 동의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자는 우선 염구의 교묘한 말재주부터 비판한다. 갖고 싶으면 솔직히 갖고 싶다고 말하지 교묘한 말로 둘러대지 말라고. 유국(有國)은 나라를 갖고 있는 제후를 뜻하고, 유가(有家)는 가문을 이끌고 있는 대부(大夫)를 말한다. 과(寡)는 백성의 수가 적은 것이요, 빈(貧)은 가난한 것이다. 청의 유월(兪樾)은 『군경평의(羣經平議)』에서 不患寡而患不均 不患貧而患不安의 과(寡)와 빈(貧)이 서로 글자가 바뀌었다고 주장한다. 유월에 의하면 과(寡)는 사람의 숫자를 갖고 말한 것이고, 빈(貧)은 재물을 갖고 말한 것이다. 또 蓋均無貧 和無寡 安無傾을 보더라도 균(均)은 빈(貧)과 같이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不患貧而患不均 不患寡而患不安으로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타당한 주장이라고 생각된다.
  한 나라나 한 가문을 다스리고 있는 자는, 가난한 것을 걱정하지 않고 서로 균등하지 못한 것을 걱정하며, 그 백성의 수가 적은 것을 걱정하지 않고 평안하지 않은 것을 걱정한다. 서로 균등하면 그 안에 특별히 가난이라고 할 것도 없으며, 백성들이 서로 화합하면 모두가 한마음이니 비록 수가 적다한들 무슨 문제가 될 것이며, 또 나라 전체가 평안하니 어찌 기울겠는가? 그러므로 학문과 덕을 쌓아 사방의 백성을 복속시키고, 복속되었으면 평안케 하여야 한다.
  고주(古注)의 공안국(孔安國)에 의하면 백성이 딴마음을 먹는 것을 분(分), 백성이 떠나고자 하는 것을 붕(崩), 모이지 않는 것을 이석(離析)이라고 한다. 간과(干戈)는 방패(干)와 창(戈)이니, 무력을 뜻한다. 蕭墻之內의 소장(蕭牆)은 문 밖에서 집안이 보이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든 담장이다. 즉 계씨의 근심이 다름 아닌 계씨의 집안 내에 있다는 뜻이다. 
  너희들은 계씨를 돕는다고 하나 그렇게 하지도 못하고 있다. 게다가 지금 노나라는 삼환(三桓)으로 인해 갈라지고, 쪼개져 나라가 위험에 처해 있는데도, 너희는 그것조차 방비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나라 안에서 전란을 일으키려고 하고 있으니, 내 생각으로는 계씨의 근심은 전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계씨의 집안 안에 있다고 본다. 그러니 전유를 정벌하려는 쓸데없는 욕심은 버려야 한다.
  염구와 자로가 함께 공자를 만났으나, 자로는 일절 말이 없고 염구만이 말하고 있다. 성미 급한 자로가 가만히 있는 것이 이상하다.
  염구는 공자의 제자이면서도 스승과는 정치적 이념이 많이 달랐던 것으로 생각된다. 공자는 주례(周禮)의 복원을 주장하였지만, 염구는 당시 계씨의 참례를 묵인하였다. 팔일 6을 보면 염구는 계씨가 태산에 여(旅)제를 지내는 것을 막지 못하였다고 하여 공자로부터 꾸중을 듣고 있다. 염구가 몰랐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염구가 스승의 가르침과 현실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현실 쪽에 서 있었던 것으로 밖에 추측되지 않는다. 또 선진 16에서는 계씨를 위하여 세금을 징수하다가 공자로부터 제자가 아니라는 비난을 듣고 있다. 염구는 계씨의 세력 확장을 위하여 세금을 징수한 것이다. 그에게 현실은 어쩔 수 없는 대세였고, 따라서 약육강식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계씨의 영토확장을 도모한 것이다. 그러기에 계씨로부터 총애를 받았으리라(자로 14).       
  총 274자로 선진 25의 315자에 이어 논어 안에서 두 번째로 긴 글이다.

2, 孔子曰 天下有道 則禮樂征伐自天子出. 天下無道 則禮樂征伐自諸侯出. 自諸侯出 蓋十世希不失矣. 自大夫出 五世希不失矣. 陪臣執國命 三世希不失矣. 天下有道 則政不在大夫. 天下有道 則庶人不議.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천하에 도가 있으면 예악과 정벌(征伐)이 천자로부터 나오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예악과 정벌이 제후로부터 나온다. 제후로부터 나온 지 10대가 되어 망하지 않는 경우가 드물며, 대부로부터 나온 지 5대가 되어 망하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 배신이 나라의 명령을 내린 지 3대가 되어 망하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정치는 대부의 손에 있지 않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서민들이 나라 일에 대해 의논하지 않는다.”

  <해설> 천하에 도가 있으면 예악을 정하고 정벌을 행할 수 있는 권한이 천자에게 있는 법이다. 그러나 도가 없어지면 천자가 아니라 제후가 천자를 참람하고 그 권한을 행사한다. 그런 상태가 된지 10대가 되도록 망하지 않은 나라는 드물다. 제후도 아니고 제후 밑에 있는 대부(大夫)의 손에 그 권한이 넘어가면 5대가 못 가 나라가 망한다. 대부도 모자라 대부의 가신인 배신(陪臣)의 손에 넘어가면 3대도 못 가 나라가 망하게 된다. 천하에 도가 있다면 대부가 정치를 하는 법이 없고, 서민이 나라 일에 대해 의논하지 않는다. 질서의 붕괴, 예의 붕괴가 가져올 폐해를 경계한 말이다.
  그러나 공자의 말로 보기에는 너무 단정적이다. 과연 10대, 5대, 3대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물론 예를 들어 그렇다는 뜻이겠지만 평소 공자의 겸손한 말투와는 사뭇 맛이 다르다. 또한 높고 많은 것으로부터 낮고 적은 것으로 내려오는 수사(修辭)적 기교가 일견 세련되어 보이지만, 논어의 다른 곳에서 보이는 소박하면서도 함축미 있는 비유의 격을 못 쫓아오고 있다. 과연 공자의 말일까 의심이 가는 장이다.

3, 孔子曰 祿之去公室五世矣 政逮於大夫四世矣. 故夫三桓之子孫微矣.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녹을 주는 권한이 공실을 떠난 지가 5대요, 정치가 대부의 손에 들어간 지가 4대나 된다. 이런 까닭에 저 삼환의 자손도 쇠미(衰微)해 가는 것이다.”

  <해설> 녹(祿)은 작(爵)과 녹(祿)을 주는 권한이다. 공실은 노나라 군주를 가리킨다. 5세(五世)라는 것은 노나라 문공(文公)이 죽은 후 공자 수(遂)가 적(赤)을 살해하고 선공(宣公)을 세운 때로부터 성공(成公), 양공(襄公), 소공(昭公), 정공(定公)에 이르기까지를 말한다. 대부는 삼환(三桓)씨, 특히 계손(季孫)씨를 가리키며, 4세(四世)라는 것은 주자에 의하면 계무자(季武子), 계도자(季悼子), 계평자(季平子), 계환자(季桓子)를 말한다.
  정치의 모든 권한이 노나라 군주의 손을 떠난 것이 공실의 입장에서 세면 5대요, 그 권한을 손에 쥔 대부 즉 계씨의 입장에서 세면 4대나 된다. 바로 앞 장에서 대부로부터 나온 지 5대가 되어 망하지 않은 경우가 드물다고 하였는데(自大夫出 五世希不失矣―계씨 2), 이미 4대나 되었으니 저 대부들 즉 삼환씨의 가문이 어찌 쇠잔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노나라 정공(定公) 5년에 계씨의 가신(陪臣)인 양호(陽虎)가 반란을 일으켜, 계환자를 가두고 정권을 일시 탈취한 것도 다 이런 배경이 있는 것이라고 한다.
   
4, 孔子曰 益者三友 損者三友. 友直 友諒 友多聞 益矣. 友便辟 友善柔 友便佞 損矣.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유익한 벗이 셋, 해로운 벗이 셋 있다. 정직한 사람을 벗삼고, 신의가 있는 사람을 벗삼으며, 박학다식한 사람을 벗삼는 것은 유익하다. 위세를 부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벗삼고, 아첨을 잘하는 사람을 벗삼으며, 말을 잘 둘러대는 자를 벗삼는 것은 해롭다.”

  <해설> 직(直)은 정직한 사람, 량(諒)은 신의가 있는 사람, 다문(多聞)은 박학다식한 사람이다. 편벽(便辟)은 위의(威儀)를 부리기를 좋아하여 정직하지 못한 사람, 선유(善柔)는 아첨을 잘하여 미덥지 못한 사람, 편령(便佞)은 말만 번지르르하게 잘 할 뿐 실제 견문(見聞)은 없는 사람이다.
  유익하고 해로운 벗이 과연 이렇게 세 부류로만 분류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 3(三)이라는 숫자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하 8장까지는 3(三)이라는 숫자, 10장은 9(九)라는 숫자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계씨(季氏)편만의 독특한 특징이나 계씨편을 의심케 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5, 孔子曰 益者三樂 損者三樂. 樂節禮樂 樂道人之善 樂多賢友 益矣. 樂驕樂 樂佚遊 樂宴樂 損矣.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좋아해서 유익한 것이 셋이요, 해로운 것이 셋이다. 예악에 절도를 지키는 것을 좋아하고, 남의 좋은 점을 말하기를 좋아하며, 어진 벗을 많이 갖기를 좋아하면 유익하다. 방자하게 놀기를 좋아하고, 절제 없이 노는 것을 좋아하며, 주연(酒宴)을 벌이는 것을 좋아하면 해롭다.”

  <해설> 節禮樂은 예악을 절제하는 것이다. 도(道)는 말하는 것(言)이다. 교락(驕樂)은 교만 방자하게 노는 것, 질유(佚遊)는 절제함이 없이 노는 것, 연락(宴樂)은 주연을 벌이는 것이다.

6, 孔子曰 侍於君子有三愆. 言未及之而言 謂之躁. 言及之而不言 謂之隱. 未見顔色而言 謂之瞽.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군자를 모실 때 세 가지 범하기 쉬운 잘못이 있다. 말을 할 때가 아직 되지 않았는데도 말하는 것은 조급하다고 하며, 말을 할 때가 되었는데도 말하지 않는 것은 숨긴다고 하고, 상대방의 안색을 살펴보지 않고 말하는 것은 눈이 없다고 한다.”

  <해설> 건(愆)은 허물이다. 조(躁)는 조급한 것, 은(隱)은 숨기는 것, 고(瞽)는 남을 살피는 눈이 없는 것이다.

7, 孔子曰 君子有三戒. 少之時血氣未定 戒之在色. 及其壯也血氣方剛 戒之在鬪. 及其老也血氣旣衰 戒之在得.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군자가 세 가지 경계할 것이 있다. 젊었을 때에는 아직 혈기가 안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여색을 조심하고, 장년이 되었을 때는 혈기가 굳건하므로 남과 다투는 것을 조심하고, 늙었을 때는 혈기가 이미 쇠약해졌으니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

  <해설> 색(色)은 여색(女色), 투(鬪)는 남과 싸우는 것, 득(得)은 무엇을 얻고자 하는 욕심이다.
 
8, 孔子曰 君子有三畏. 畏天命 畏大人 畏聖人之言. 小人不知天命而不畏也 狎大人 侮聖人之言.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군자가 두려워할 것이 셋 있다. 천명을 두려워하고, 대인을 두려워하며, 성인의 말씀을 두려워한다. 소인은 천명을 알지 못하므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대인을 가볍게 여기고, 성인의 말씀을 업신여긴다.”
 
  <해설> 외(畏)는 외경(畏敬)하는 것이다. 대인(大人)은 고주의 하안(何晏)에 의하면 성인(聖人), 즉 그 덕이 높은 사람이고, 정현(鄭玄)에 의하면 천자나 제후와 같이 신분이 높은 사람이다. 압(狎)은 버릇없이 마구 대하는 것이고, 모(侮)는 업신여기는 것이다.

9, 孔子曰 生而知之者 上也. 學而知之者 次也. 困而學之 又其次也. 困而不學 民斯爲下矣.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태어나면서부터 저절로 아는 자가 으뜸이요, 배워서 아는 자는 그 다음이고, 벽에 부딪치고 나서야 배우는 자는 또 그 다음이며, 벽에 부딪쳐서도 배우려고 하지 않는 자는 가장 못난 사람이다.”

  <해설> 곤(困)은 통하지 않는 바가 있는 것이니, 즉 어려움에 부딪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사람마다 타고난 자질이 달라 학문의 성취도도 다 다르다. 가장 자질이 좋은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저절로 아는 사람, 그 다음은 배워 가면서 학식을 쌓는 사람, 어려운 문제에 부딪치고 나서야 공부하려는 사람이 그 다음, 어떤 경우에도 전혀 배우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최하위다. 그런데 맨 위와 맨 아래는 배움이 필요 없다. 태어나면서부터 저절로 아는 자는 이미 알고 있으니 새삼 배울 필요가 없으며, 벽에 부딪쳐서도 배우려고 하지 않는 자는 어떻게 가르칠 방도가 없다. 그러기에 가장 지혜로운 자와 가장 어리석은 자는 변화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唯上知與下愚不移―양화 3).
  한편 다산은 學而知之者를 어릴 때부터 계속 학문을 닦은 사람, 困而學之를 어릴 때는 공부를 하지 못하였다가 성인이 되고 나서야 공부에 분발한 사람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10, 孔子曰 君子有九思. 視思明 聽思聰 色思溫 貌思恭 言思忠 事思敬 疑思問 忿思難 見得思義.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군자에게는 아홉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사물을 볼 때는 분명하게 볼 것을, 들을 때는 똑똑히 들을 것을, 안색은 온화하게 할 것을, 용모는 공손하게 할 것을, 말은 성실하게 할 것을, 일은 신중히 할 것을, 의문이 드는 것은 물을 것을, 화가 날 때는 나중에 닥칠 어려운 일을, 이득을 보게 될 때는 정당한 것인가를 생각하여야 한다.”
   
  <해설> 명(明)은 보기를 분명하게 하는 것, 총(聰)은 똑똑히 듣는 것, 온(溫)은 온화한 것, 난(難)은 어려운 일, 곤란한 일, 의(義)는 정당한 것이다.
  9(九)라고 하는 숫자에 맞춰 인간이 갖춰야 할 덕목을 서술하고 있다.
 
11, 孔子曰 見善如不及 見不善如探湯. 吾見其人矣 吾聞其語矣. 隱居以求其志 行義以達其道. 吾聞其語矣 未見其人也.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착한 일을 보면 마치 미치지 못하는 것처럼 하고, 착하지 않은 일을 보면 마치 끓는 물에 손을 담근 듯이 하라. 나는 일찍이 그런 사람도 보았고, 그런 말도 들었다. 세상으로부터 숨어살면서도 자신의 뜻을 추구하고, 의로운 일을 행하여 자신의 도를 달성한다. 나는 그런 말은 들어 봤으나, 아직 그런 사람은 보지 못하였다.”

  <해설> 如不及은 미치지 못하여 열심히 뒤쫓아가는 것이고, 如探湯은 물이 얼마나 뜨거운지 알아보기 위하여 끓는 물에 손을 넣어 보는 것이다. 착한 일은 항상 열심히 쫓아가면서 행하고, 악한 일은 끓는 물에 손을 넣었을 때처럼 급히 손을 빼라는 말이다.
  착한 일을 열심히 하고, 악한 일에서 손을 빼는 것은 그런 말도 있고, 또 그런 사람도 주변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은거(隱居)하면서도 자신의 뜻을 추구하고, 의를 행하여 자신의 도를 달성하는 것은 어려운 일로, 아직 말은 들어 봤지만, 사람은 보지 못하였다. 은거하면 세상에 대해 냉소적이거나 무관심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물론 말이 있는 이상 언젠가는 그런 사람을 보게 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아직껏 보지 못하고 있다. 탄식 반, 기대 반이다.
  
12, 齊景公有馬千駟. 死之日 民無德而稱焉. 伯夷叔齊餓于首陽之下. 民到于今稱之.
  其斯之謂與.
  제경공(齊景公)은 말이 천 사(駟)나 있었으나, 그가 죽었을 때 백성들은 그의 덕을 기리지 않았다. 백이숙제는 수양산 아래에서 굶어 죽었으나 백성들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를 기리고 있다.
  그것은 이것을 두고 한 말일까?

  <해설> 사(駟)는 말 네 필을 가리킨다.
  제경공과 백이숙제를 비교하여 부(富)가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음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其斯之謂與가 무엇을 말하는지는 불분명하다. 학이 15에도 其斯之謂與라는 구절이 보인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子貢曰 詩云 如切如磋 如琢如磨 其斯之謂與라고 되어 있어 其斯之謂與가 詩云 如切如磋 如琢如磨를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신주에서 호인(胡寅)은 안연 10의 맨 뒤에 있는 誠不以富 亦祇以異의 구는 바로 이 장(章)의 맨 앞에 있어야 한다는 정자(程子)의 말을 인용하면서, 자신이 문세(文勢)를 자세히 살펴보건대 이 장의 맨 앞이 아니라 바로 이 其斯之謂與 앞에 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부유함이 아닌 다른 것에 있다는 이 말(誠不以富 亦祇以異)이 바로 백이숙제와 제경공의 일을 잘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주자는 또 이 장의 첫머리에 孔子曰이 빠져 있음을 지적하면서, 논어의 후반 10편에는 빠진 글이나 잘못된 것이 많다고 부기하고 있다.  
  한편 다산은 이 장(章)을 앞 장과 합하여 하나의 장으로 만들고 있다. 다산에 의하면 其斯之謂與는 앞 장의 隱居以求其志 行義以達其道를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13, 陳亢問於伯魚曰 子亦有異聞乎. 對曰 未也. 嘗獨立 鯉趨而過庭. 曰 學詩乎. 對曰 未也. 不學詩 無以言. 鯉退而學詩. 他日 又獨立 鯉趨而過庭. 曰 學禮乎. 對曰 未也. 不學禮 無以立. 鯉退而學禮. 聞斯二者. 陳亢退而喜曰 問一得三. 聞詩 聞禮 又聞君子之遠其子也.
  진항(陳亢)이 백어(伯魚)에게 묻기를 “당신께서는 별도로 들은 바가 있으시지요?”
  대답하여 말하길 “없습니다. 언젠가 아버님께서 홀로 서 계시기에 내가 종종걸음으로 뜰을 지나가니, ‘시를 공부했느냐?’하고 물으셨습니다. 내가 ‘아직 못 배웠습니다.’라고 대답하자, 말씀하시길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물러나 시를 공부하였습니다. 또 언젠가는 또 홀로 서 계시기에 종종걸음으로 뜰을 지나가자니까 ‘예를 공부하였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아직 못 배웠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예를 배우지 않으면 세상에 설 수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물러나 예를 공부하였습니다. 이 두 말씀을 들었을 뿐입니다.”
  진항이 물러 나와 기뻐하며 말하길 “하나를 물어 셋을 알았다. 시에 대해 들었고, 예에 대해 들었으며, 군자가 자기 자식을 멀리한다는 것을 들었다.”
  
  <해설> 진항(陳亢)은 학이 10에 나오는 자금(子禽)이다. 백어(伯魚)는 공자의 아들로 이름은 이(鯉)다. 백어는 자(字)이다. 이문(異聞)은 백어가 아버지인 공자로부터 남들 모르게 별도로 배운 것을 말한다. 추(趨)는 어른 앞을 지날 때 종종걸음으로 빨리 지나는 것이다. 입(立)은 독립된 인격체로서 사회에 우뚝 서는 것이다.
  공자의 시대에는 지식도 가문 내에서만 세습되어 전수되었다. 당시 신분제 사회에서 직업 자체가 세습되었기 때문에 그 직업에 필요한 전문 지식도 따라서 세습된 것이다. 따라서 한 가문만의 고유한 지식이 있었으며, 그것은 당연히 남에게는 알려주지 않는 비전(秘傳)이었다.   
  공자는 이러한 전통에 반기를 들고 누구에게나 차별 없는 교육을 실시하였다(子曰 有敎無類―위령공 38). 그러나 이러한 공자의 태도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던 것 같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자신이 숨기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술이 23) 자체가 역설적으로 그러한 의심을 받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진항은 백어가 공자의 아들인 관계로 무언가 자신들은 알지 못하는 특별한 가르침을 받았으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백어의 대답에는 아무 것도 특이한 것이 없었다. 시와 예를 공부하라고 한 것은 어느 제자에게나 똑같았다. 공자는 자기 아들이라고 하여 달리 가르친 바가 없었던 것이다.  
  맹자는 「이루(離婁)상」편 18에서 옛사람들은 서로 자식을 바꾸어서 가르쳤다고 하면서, 그 이유는 “가르치는 것은 바른 것으로써 하는 것인데, 바르게 행동하지 않으면 이어 노하게 되고, 노하게 되면 서로 사이가 나빠지게 된다. 아비가 자식에게는 바른 것으로써 가르치면서 자신은 바르게 행동하지 못한다면, 이것은 부자(父子) 사이를 서로 상하게 하는 것이요, 부자 사이가 서로 상한다면 이는 악(惡)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고 있다. 이어 말하길 “부자 사이에는 서로 선(善)을 질책하지 않으니, 선을 질책하면 사이가 벌어지게 되고, 사이가 벌어지게 되면 이보다 더 상서롭지 못한 것이 없다.”고 한다.
 
14, 邦君之妻 君稱之曰夫人. 夫人自稱曰小童. 邦人稱之曰君夫人. 稱諸異邦曰寡小君. 異邦人稱之亦曰君夫人.
  한 나라의 임금의 아내의 경우, 임금이 부를 때는 부인(夫人), 부인이 자신을 부를 때는 소동(小童), 그 나라 백성들이 부를 때는 군부인(君夫人),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말할 때는 과소군(寡小君), 다른 나라 사람들이 부를 때는 군부인(君夫人)이라고 한다.  

  <해설> 임금의 아내를 부르는 호칭에 관한 글이다.
  이 글이 논어에 실린 이유를 알 수 없다. 공자의 말인지 아니면 예(禮)의 한 규정인지도 불분명하다. 무언가 착오가 있었을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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